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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Apr 15. 2022

[스크림 2022] 공포 영화 광, 돌아오다

그래서 속편은요?






덕후, 어떤 대상을 열렬히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단어이다. 덕후의 기원은 일본의 ‘오타쿠’이지만 꽤 부정적인 뉘앙스의 오타쿠와 달리 덕후는 이제 ‘마니아’ 정도의 대중적인 단어로 자리 잡았다. 오타쿠는 어떨지 몰라도 덕후는 이제 그냥 한국어라고 봐도 무방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덕후 기질이 다분한 사람이다. 그 분야를 다 밝힐 수는 없지만 영화를 한정해 이야기하자면 명백한 히어로물 덕후이다. 가장 좋아하는 히어로의 작품은 극장에서만 무려 일곱 번까지 감상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망작이라고 이야기하는 DC의 몇몇 작품들도 극장에서 최소 두세 번은 보았다. 하지만 내가 히어로물에만 꽂혀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제법 빠져 있는 또 한 가지 장르는 다름 아닌 호러. 히어로물에 비해서 자랑스레 덕후라고 말하고 다니기에는 열정 면에서 다소 애매하지만 적어도 내 주변에는 나만큼 공포 영화를 즐겨 보는 사람은 없는 듯하다. 부끄럽게도 4년 전 아리 애스터 감독의 ‘유전’을 감히 극장에서 보고 난 후 사흘 동안 불을 켜고 잠을 청해야 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공포 영화를 좋아한다. 대학생 시절까지만 하더라도 공포 영화라고 하면 예고편조차도 가능한 한 안 보고 피할 정도로 겁쟁이였고, 그런 면에서는 지금도 크게 다를 바 없지만 어쩐 일인지 어느 순간부터 나는 호러 장르를 일부러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공포 영화 덕후의 길로 접어든 나는 비교적 최근 개봉작들을 위주로 끌리는 작품들을 하나둘씩 섭렵했다. 그러다 21세기(!)의 작품들 중 더 이상 볼만한 것이 없어졌을 때에야 예전 영화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발견한 작품이 다름 아닌 스크림 시리즈이다. 안 그래도 그즈음에 넷플릭스의 3부작 공포 영화 ‘피어 스트리트’를 재밌게 감상하고, 어쩌면 나의 공포 영화 취향이 슬래셔물이 아닐까 싶던 차였다. ‘유전’이 내게 미친 영향력을 생각했을 때, 그리고 여전히 컨저링 시리즈는 볼 엄두도 안 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초자연적인 존재는 취향과 관계없이 내가 감당하기 힘든 무언가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게 해서 현재 웨스 크레이븐 감독의 네 편은 물론이고, 올해 개봉한 ‘스크림 2022’까지 모두 개봉을 마친 상태이다.



어김없이 또, 시드


우즈보로 마을에서의 충격적인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25년 후. 10대 청소년 태라는 집에서 혼자 친구 앰버를 기다리던 중 수상한 남자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주로 ‘유전’이나 ‘바바둑’처럼 생각할 거리가 있는 수준 높은(elevated) 공포 영화들을 좋아한다는 태라에게, 전화기 너머의 남자는 슬래셔 영화 ‘스탭’에 대한 문제를 내기 시작한다. 만약 문제를 맞히지 못할 경우 앰버를 죽일 거라는 협박과 함께. ‘스탭’은 다름 아닌 우즈보로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을 기반으로 한 영화로, 스크림 시리즈를 실화인 셈 치고 만든 영화 속의 영화이다. 안타깝게도 마지막 문제를 틀린 태라는 결국 고스트페이스를 한 괴한에게 격당한다.


태라와 고스트페이스


도망치듯 우즈보로를 떠났던 태라의 언니 샘은 동생이 중태에 빠졌단 소식을 듣고 남자 친구 리치와 함께 두 번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던 고향으로 향한다. 그날 저녁 태라가 입원한 병원에 도착한 샘. 그는 병원 휴게실에서 쉬던 중 마치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한 고스트페이스 가면을 쓴 괴한에게 습격을 당한다. 다행히 주변에 보안관이 있어서 큰 사고는 면했지만 샘은 괴한이 자신의 출생의 비밀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샘은 다름 아닌 우즈보로에서 벌어진 연쇄 살인 사건의 시초, 살인마 빌리 루미스의 딸이었던 것. 그리고 얼마 뒤 태라의 친구들이 모여 있던 바에서 난동을 피우다 쫓겨난 빈스가 고스트페이스의 첫 번째 희생자가 된다.


태라의 언니이자 주인공인 샘


결국 첫 번째 살인이 벌어지자 샘은 누군가, 정확히는 우즈보로 연쇄 살인 사건에 대해 잘 아는 누군가의 움을 받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해서 샘은 리치를 데리고 고스트페이스에 관한 한 베테랑(?)인 듀이를 찾아가고, 자신을 찾아온 샘에게 듀이는 세 가지 조언을 한다. 첫 번째, 애인을 가장 먼저 의심할 것. 두 번째, 살인자는 희생자들의 과거와 연관이 있다는 점을 명심할 것. 세 번째, 범인은 친구들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것. 듀이에게 의심을 당하자 불쾌함을 감추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린 리치는 자신을 뒤따라온 샘에게 그가 어떤 과거를 지녔든 변함없이 사랑하겠다는 다정한 말을 속삭인다.


한편 듀이는 함께 사건을 겪었던 시드니와, 이제는 전부인이 된 게일에게 고스트페이스가 돌아왔으며 결코 우즈보로로 돌아오지 말라며 경고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살인. 경찰 인력이 모두 살인 현장에 출동하는 바람에 태라가 병원에 홀로 남겨졌음을 깨달은 샘과 듀이는 다급히 병원으로 출발한다. 마침 리치가 먼저 병원에 도착하지만 고스트페이스의 공격에 맥없이 쓰러지고, 고스트페이스는 샘에게 전화를 걸어 태라와 리치 둘 중에서 누구를 살리고 죽일지 선택하라며 몰아세운다. 다행히 태라와 리치 모두 목숨을 부지했지만 결국 희생자가 발생하고, 샘은 두 사람을 데리고 당장 우즈보로를 떠날 결심을 한다. 그리고 결국 다시 우즈보로로 돌아오게 된 시드니와 게일. 살인자가 어떻게든 샘을 끝까지 따라갈 것임을 알고 있는 시드니와 게일은 샘의 차에 위치추적기를 설치해 그를 뒤쫓는다.


(왼쪽부터) 시드니, 게일, 듀이



지킨 법, 어


시리즈의 첫 편 초반부의 긴장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첫 희생자인 금발의 케이시 역을 맡은 드류 배리모어가 1편 개봉 당시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없으나 시리즈에 대한 별다른 정보 없이, 하지만 그가 지금은 분명 톱스타라는 사실만은 잘 알고 있는 상태에서 영화를 본 입장에선 케이시라는 캐릭터가 그렇게 금방 죽을 것이라곤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대신 그만큼 강렬한 임팩트를 남겼으며 이는 일종의 시그니처 장면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2편과 4편에서도 케이시와 같은 금발 백인 여성이 괴한의 전화를 받고 살해당하는 장면이 반복된다. 3편에서는 비록 남편이 전화를 받고 집에서 함께 희생당하는 식으로 전개가 되지만, 마찬가지로 금발 백인 여성의 죽음으로 영화의 포문을 연다. 덕분에 크레이븐 감독이 젊은 시절 금발의 여성에게 거절당한 경험이라도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러나 할리우드 영화를 자주 보다 보면 모르려야 모를 수 없는, 금발 여성이 다루어지는 방식이나 그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생각했을 때, 감독 개인 차원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그러다 2022년이 되어서야 이 규칙은 깨진다. 처음으로 괴한의 전화를 받은 태라는 비백인 흑발 여성이다. 게다가 중상을 입긴 해도 잔인한 죽음을 맞이하진 않는다. 이는 태라가 언니이자 주인공인 샘을 우즈보로로 불러들이기 위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대신 시드니처럼 태라 역시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온갖 위기 상황을 겪는 처지가 된다. 최신 시리즈의 연쇄 살인 사건 역시 시드니와 연결되기는 해도 살인마들의 우선 목표가 그가 아닌 새로운 주인공 샘이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대신 시드니는 다른 원년 멤버 게일, 듀이와 함께 처지가 딱하게 됐지만 생존 욕구만은 강한 젊은 친구들을 기꺼이 도우며 위험 속으로, 그리고 필요 이상으로 깊게 뛰어든다.


범인은 (당연히) 이 안에 있다!


이번 작품에서도 공포 영화 마니아로서의 정체성은 유지되고 있다. 스크림이라는 영화 속 영화 ‘스탭’을 비롯해 역시나 각종 공포 영화 이름과 시리즈가 언급되면서 셀프 까기, 돌려 까기, 모두 까기를 서슴지 않는다. 지금 내가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영화를 상대로 토론을 하고 있는 것인지 헷갈리는 듯한 기분 역시 여전하다. 이전 시리즈까지는 이러한 토론(?)을 주도한 공포 영화광들은 대부분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이 규칙 역시 이번 2022년 버전에서는 예외가 적용됐다. 스크림 시리즈의 그 어떤 공포 영화 마니아들보다도 더욱 열심히 떠드는 한 캐릭터로 인해 내내 불안했지만 결국 괜한 걱정으로 판명 났다. 해당 등장인물의 여러 특성상 제발 죽지만은 않기를 바랐던 나로서는 안심이었다.


2022년 스크림의 또 한 가지 인상 깊은 부분은 인종 구성이다. 일단 주인공 자매 중 언니 샘을 맡은 배우는 멕시코인이며, 동생 태라 역의 배우는 멕시코와 푸에르토리코 혼혈이다. 1, 2편의 공포 영화 박사 랜디의 조카인 두 남매를 맡은 배우들은 흑인으로 보인다. 1편에서는 유색인종이 전무했고, 2편에서는 공포 영화의 흑인 배제에 대해 비판하던 두 흑인 커플이 영화의 초반에 무참히 살해당했으며, 3편과 4편에서 큰 비중이 없던 흑인 배우는 소모적인 죽임을 맞이했다. 이러한 전적을 고려했을 때 장족의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시리즈의 다른 편보다도 여자 캐릭터들이 유난히 많이 죽어나갔던 4편처럼, 관객의 눈요기를 위해 몸매 자랑을 하다 개죽음을 당하는 백치미 캐릭터도 등장하지 않아 두 배로 마음이 편안했다.


스크림 2022의 한 장면


‘스크림 2022’는 1, 2편의 임팩트에는 못 미치는 것이 사실이지만, 3, 4편에 비해선 볼만했다는 것이 개인적인 감상평이다. 특히나 4편의 경우 범인의 살인 동기도 납득이 가지 않고 긴장감이 느껴지기는커녕 늘어진 데다, 장르의 특성을 감안해도 개연성이 떨어져 차라리 건너뛰고 '스크림 2022'로 바로 넘어가도 감상이나 내용 이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듯하다. 그래도 총 다섯 편의 영화를 모두 챙겨 보면서 스크림이 장수 시리즈로 잡을만했음을 확실히 깨달았다. 시리즈의 새로운 히로인이 등장한 지금, 또 한 편의 속편이 나오기를 조심스레 기대해 본다.









사진 출처 : IMDB

https://m.imdb.com/title/tt11245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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