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인 Jun 10. 2022

[엔칸토] 나 혼자만 특별하지 않은 것 같을 때

나만의 평범함이 완성하는 고유함






남들은 과거로, 특히나 학창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들을 종종 하는데 나는 그 시절만 생각하면 입맛이 쓰다. 다들 그 시기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할 거리도 많아 보이건만 나는 별 게 없다. 굳이 뽑자면 나의 이십 대를 지독하게 괴롭힌 외모 콤플렉스가 그 시절쯤 생겼다는 것 정도일까. 달리 말하면 나는 과거보다 현재의 삶에 훨씬 더 만족한다는 의미이리라. 확실히 십 대 시절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느끼지만, 이는 지금의 내가 대단히 잘난 사람이 되었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여리고 연약한 마음의 소유자로서 하루하루를 지내다 보니 내 뜻대로 되는 일은 많이 없다는 진리를 받아들이게 됐고, 경험이 늘면서 처세술이 늘어나 적당히 타협하면서 조금이라도 빨리 곤란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법을 배웠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준대로 돌려받기 마련이라는 말에는 아직 공감을 못하지만, 차라리 기대를 안 하면 편하다는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열심히 살자는, 꿈을 포기하지 말자는 답 없는 낙천주의만은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거의 나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울적했을까. 내가 겪은 외모 콤플렉스는 예사로운 수준이 아니었지만 그 이유 때문만은 결코 아니다. 돌이켜 보면 지금의 나와 다르게 학창 시절의 나는 끊임없이 나 자신을 다른 누군가와 비교했다. 외모 콤플렉스 역시 같은 맥락일 것이다. 비교 대상이 꼭 내 또래의 여자 아이들이었던 것만도 아니었다. 이 사람과 비교하면 A가 부족하고, 저 사람이랑 비교하면 B가 모자란 식이었다. 나의 타고난 조건으로는 도저히 바꾸고 발전할 길 없는 것들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다들 무언가 하나씩은 잘나고 멋진 것 같은데 나만 내세울 게 하나도 없는 듯 보였다. 요약하자면 지극히 평범한 나의 모습에서 느끼는 불만족, 그것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었다.



• 마법의 축복을 은 마드리갈 가족들, 그리고 미라


콜롬비아의 깊은 숲 속 마을 엔칸토. 그곳에는 특별한 마법의 힘을 지닌 마드리갈 가족들이 살고 있다. 집안의 큰 어른인 알마(아부엘라)는 엔칸토의 마법을 가져온 장본인으로 신비한 힘의 근원인 촛불을 돌보고 있다. 알마의 쌍둥이 삼 남매 중 페파는 기분에 따라 날씨가 바뀌게 만들며, 훌리에타는 음식으로 사람을 치료한다. 브루노는 미래를 예언하는 능력을 가졌지만, 어느 날 홀연히 집을 떠난 이후 가족들은 그에 대한 이야기를 결코 하지 않는다. 페파와 훌리에타의 아이들 역시 모두 마법의 축복을 받았다. 훌리에타의 막내딸이자 우리의 주인공 미라벨만 제외하고.


마드리갈 패밀리


마법의 힘이 없는 탓에 미라벨은 항상 가족들을 자랑스럽게 해주고 싶다는 강한 열망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다 찾아온 사촌 남동생 안토니오가 마법 의식을 받는 날이 찾아오고, 하필 그날 미라벨은 마드리갈 가족들의 집 까시타에 균열이 생기고 신비의 촛불의 빛이 흔들리는 모습을 목격한다. 그러나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알린 후 모두를 데리고 현장으로 돌아와 보니 까시타와 촛불은 원래 모습을 되찾은 상태. 결국 미라벨의 경고는 무시당하지만 다음 날 그는 언니 루이사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미라벨이 까시타의 벽에 금이 간 것을 목격한 순간 루이사는 자신의 힘이 약해졌음을 느껴졌으며, 가족들을 떠난 브루노 삼촌 역시 과거 비슷한 환영을 본 적이 있다는 것.


'엔칸토'의 주인공 미라벨


더불어 루이사는 마드리갈 가족의 마법의 힘이 걱정된다면 브루노 삼촌의 탑에 가 볼 것을 조언한다. 우여곡절 끝에 브루노 삼촌의 방에서 그가 남기고 간 환영의 조각들을 찾아내 맞춰본 미라벨은 무너져 내린 까시타 앞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 의미를 찾아 헤매던 중 미라벨은 집안에 숨겨진 밀실에서 마침내 브루노 삼촌까지 만나게 되고, 까시타와 마법의 힘을 지키기 위해 삼촌에게 한 번 더 예언을 부탁한다. 브루노 삼촌의 예언에서조차 뚜렷한 해답을 찾지 못한 미라벨은 마드리갈 가족을 구하고 말겠다는 일념으로 직접 행동에 나선다.



• 저마다 견디고 는 무게


십 대 시절의 나는 나만 빼고 모두 한 가지씩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 듯한 느낌 때문에 울적해했다. 그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큰 열등감을 준 장본인은 다름 아닌 한 살 터울의 남동생이다. 남동생은 일단 아들로 태어나 집안의 대를 이을 장손이라며 가족 및 친인척 어른들이 은근히 추켜세워 나에게 박탈감을 안겨주었다. 이것만도 얄미웠지만 내 동생은 이목구비도 시원시원하고 반듯한 덕에 친척 모임을 나갈 때마다 외모 칭찬을 꼭 듣고는 했다. 게다가 어느 순간부터 야식을 자제하기 시작한 나와 달리 체격 또한 타고나길 날씬한 체질이다. 야속하게도 동생은 공부마저 나보다 잘했다. 그런 동생에게 누나는 고3인데 매일 컴퓨터를 한다며 팩트 폭력을 당했던 순간은 아직도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다.


문제는 나의 비교 대상이 동생 한 명에서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내 기억 속 사촌들은 대부분 나보다 날씬하고 성적도 좋은 편이었다.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하고, 간식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못하던 나로서는 썩 즐겁지만은 않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나보다 생일이 두 달 빠른, 친척들 중에서 나와 가장 많이 비교된 한 여자 사촌은 항상 환히 웃는 얼굴에 성격까지 싹싹해 (의도치 않게) 무뚝뚝한 얼굴만 하고 있던 나의 속을 더욱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 외에도 나의 남동생과 사촌들은 장점들이 많아 보였지만, 나 자신은 내세울만한 점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 마음이 괴로웠다.


미라벨과 그를 위로하는 어머니 훌리에타


아마 집안사람들 모두 마법이 있는데 혼자만 마법을 못 쓰던 미라벨의 기분이 십 대 시절 나의 심정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성인이 되고도 한참 지난 지금 과거의 나를 되돌아보면 안쓰러운 마음부터 든다. 특별해지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자괴감을 느끼던 나를 위로해 주고 싶다. 마침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단순히 내가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 아닌, 비로소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거나 남들의 특별함을 좇아가는 것은 무의미하며, 미라벨의 엄마 훌리에타의 말처럼 누구나 있는 그대로 각자의 방식대로 특별하다는 사실을 마침내 알게 된 것이다.


한편으로는 나의 부족한 부분과 남들의 좋은 점에만 집중하느라 다른 사람들의 고충은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건 아닐까 싶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나 아닌 다른 이들의 사정을 일일이 글로 옮길 수는 없지만, 알고 보니 저마다의 고민과 걱정을 끌어안고 있었고 누구의 것이 더 가볍고 무겁다고 논하기도 어려웠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내 기분을 미라벨에 대입해 설명하자면 마냥 부러워만 했던 언니들이 실은 365일 완벽해 보여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고, 자신에게 의지하고 있는 가족들로 인해 부담을 느낀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감정과 비슷할 것이다. (그런 두 언니의 심정을 대변하는 테마곡 ‘What else Can I Do?’와 ‘Surface Pressure’는 요즘 내 최애 곡이다)


'엔칸토'의 한 장면


개인의 장점과 단점, 습관과 취향, 고민과 걱정들이 모두 모여 오직 그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고유한 모습을 완성한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얼핏 잘나거나 특출 난 것도 없이 고만고만 비슷해 보일지라도 결국 동일한 모습은, 똑같은 색은 없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더욱 발전시키고 키워나가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지만, 방향이 엇나가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고 자신의 위치가 어디쯤인지 계산하면서 상대적 박탈감이나 우월감을 느끼는 것, 혹은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기 위해 애쓰는 행동은 궁극적으로 무의미하다. 이제라도 이 세상에 나와 같은 사람은 오직 나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다행이다. 앞으로는 십 대 시절의 나를 보듬어 주고 싶은 바로 그 마음으로, 나만의 고유함을 더욱 사랑해줄 생각이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52081

IMDB : https://m.imdb.com/title/tt2953050/

작가의 이전글 [올란도] 버지니아 울프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