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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Jul 08. 2022

[썸원 그레이트] 나만의 그 사람, 이미 곁에 있었음을

아픔 뒤에 찾아오는 성장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일은 분명 근사한 일이다. 그때의 설렘을 아무 때나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보기 위해 탄생한 장르가 로맨스가 아닌가 싶다. 이와 반대로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누군가와 완전한 남으로 갈라서 각자의 길을 떠나는 과정은 고통스럽다. 이러한 이별의 아픔을 달래주기 위해 존재하는 영화 역시 로맨스이다. 개인적인 로맨스 영화의 취향은 전자에 더 가깝다. 꼭 설레고 싶어서라기보단 주인공 둘이서 티격태격하다가 뻔하게도 해피 엔딩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복잡하던 머릿속이 비워지는 듯해 기분이 좋아진다. 다른 모든 장르와 마찬가지로 로맨스 역시 얼마간은 말도 안 되는 설정들을 보이곤 하지만, 우연히 만난 누군가와 연인으로 발전할 확률이 머글로만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영국에 있는 마법 학교에서 입학 통지서를 받을 확률보다는 월등히 높다는 점에서 좀 더 현실적인 장르임에는 분명하다. 게다가 연인 간의 사랑은 장르를 불문하고 재미를 더해주기 위해 소환되는 요소라는 점에서 일상적이다.


이처럼 현실과 어느 정도 연결이 된다는 점에서 새드 엔딩인 로맨스 영화는 좋아하지 않는다. 열렬히 사랑했으나 결국에는 끝을 맞이한 영화 속 연인들을 보며 자동적으로 나의 아픈 기억을 곱씹게 되는 상황은 썩 즐겁지만은 않다. 차라리 유치하지만 덮어놓고 잘 풀리는 연인을 구경하는 쪽이 차라리 마음도 편하고 더 재밌다. 그래서 이러한 생각과 취향을 기반으로 선택한 영화가 있었으니, 바로 넷플릭스 영화 ‘썸원 그레이트’이다. 누군가 좋은 사람. 밝아 보이는 썸네일을 보고는 제목처럼 주인공이 자신에게 꼭 맞는 남자를 만나는 뻔하디 뻔한, 그러나 아무 생각 없이 웃으며 볼 수 있을만한 영화인 줄 알고 감상을 시작했다. 그러나 영화는 초반부터 내가 애초에 예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다. 주인공 제니가 무려 9년을 만난 남자 친구에게 차인 것이다. 그러나 영화든 책이든 보다가 중간에 관두는 것은 내키지 않아 일단 끝까지 보기로 했고, 결국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으로 감상을 마칠 수 있었다.


네이트에게 이별을 통보받는 제니



• 9년 애의 끝


파티에서 우연히 만난 네이트와 사랑에 빠지고, 뉴욕에서 9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낸 제니. 제니가 꿈의 직장인 롤링스톤즈에 합격하고 샌프란시스코로 떠날 수밖에 없게 되자, 그의 간절한 설득에도 불구하고 네이트는 장거리 연애는 싫다며 이별을 택한다. 그렇게 9년 동안의 연애가 막을 내리고, 제니는 다음 날 제일 친한 친구들 에린과 블레어에게 연락해 신나는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제니는 친구들과 함께 대낮 길거리에서 대마를 피우고, 근사한 곳에서 식사도 하고, 멋지게 차려 입고, 가고 싶었지만 한동안 기회가 없었던 네온 클래식 음악 파티에 갈 준비도 하지만 구멍 뚫린 마음속에 문득문득 네이트의 존재가, 그리고 그와의 추억들이 떠오르는 것까진 어쩌지 못한다. 무려 9년이라는 시간 동안 뉴욕에서 함께 살며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었으니, 뉴욕 어디를 가든 네이트를 떠올리지 않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제니와 친구들


그래도 불쑥불쑥 떠오르는 아련한 기억과 그로 인한 먹먹한 감정들을 애써 떨쳐내며 친구들과 바쁘게 시간을 보내던 제니는 하필 네이트의 얄미운 사촌 해나와 마주친다. 상냥한 척 은근히 제니를 깎아내리고 자기 자랑을 하던 해나는 오늘 밤 열리는 네온 클래식 파티에 네이트도 온다는 이야기를 꺼낸다. 그 소식을 들은 에린과 블레어는 제니를 걱정하지만, 그는 상관없다며 파티에 갈 계획을 밀어붙인다. 우연히 들어간 편의점에서 하필 네이트와의 추억이 깃든 곡이 나오는 바람에 저도 몰래 노래를 따라 부르던 제니. 덕분에 야박한 편의점 주인과 실랑이까지 벌이고, 우여곡절 끝에 그와 친구들은 마침내 파티에 도착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제니는 파티에 온 네이트를 발견한다.


제니와 네이트의 행복했던 한때


제니는 어떻게든 네이트에게 다가가려 하고 에린과 블레어는 당연히 그런 제니를 뜯어말리지만, 네이트와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제니는 결국 친구들을 따돌리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제니는 마침내 네이트와 마주하게 되지만 무슨 말이라도 하려던 마음과 달리 고작 몇 걸음 떨어진 거리에서 입모양으로만 사랑한다는 말을 중얼거리고, 네이트 역시 사랑한다는 말을 되돌려주기 무섭게 제니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그리고 제니는 마지막 마무리를 위해 네이트와의 추억의 장소로 향한다. 네이트와의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며 귀여운 낙서까지 남겼던 분수대에 앉아, 제니는 이제 더는 두 사람의 여행이 아닌 자기 혼자만의 여행을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 한 음 앞으로 나아가


일상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공유하던 누군가를 끊어내는 것은 분명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 기간이 길든 짧든, 좋게 헤어졌건 나쁘게 헤어졌건, 각자의 만남과 이별의 형태와는 상관없이 모두 어느 정도는 가슴이 아플 수밖에 없다.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당했다면 배신감에 힘들 수도 있고, 좋게 헤어졌다면 결국 끝나버린 소중한 관계에 서러움과 아쉬움이 밀려올 수 있다. 정 때문에 억지로 지난한 연애를 이어오다 끝을 맞이했다면 본인이 미련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혹은 본인이 먼저 이별을 고했다면 상대에 대한 죄책감에 밤을 새우게 될지도 모른다. 그 모양새가 어찌 되었든 결론적으로 이별이라는 것은 모두 힘들다. 그러니 큰 트러블 없이 9년이라는 시간 동안 열과 성을 다해 사랑하며 결혼까지 생각했던 네이트와의 이별을 겪은 제니가 감당했을 고통이 어떠했을지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나 역시 이별이라는 것을 몇 번 경험해 보았고, 상대방을 얼마큼 좋아했고 얼마나 만났는지와는 무관하게 이별에 이르는 과정이 수월하거나 후련하게 느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이별 당시의 중심 감정이 분노, 슬픔, 미안함, 무엇이든 하나같이 불편하고 버거웠다. 그러나 이별을 맞이하게 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게 마련이고, 헤어질 당시에는 괴로울지언정 결국 각자의 길을 가는 편이 장기적으로는 더 나은 선택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연애의 경험이 쌓이다 보면 당장의 괴로움을 피하고자 문제를 덮어두었다가 나중에 더 큰 문제가 되어 돌아와 몇 배는 더 괴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기에 떠나가는 연인에게 질척이는 일도, 이별에 눈물을 쏟는 시간도, 만약에라는 가정을 해보거나 두 번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겠다는 치기 어린 다짐을 하는 일도 점점 줄어드는 것이리라. 


'썸원 그레이트'의 한 장면


이별의 또 한 가지 특징은 그래도 무언가 한 가지는 배우게 된다는 점이다. 단순히 나에게 더 잘 맞는 사람이 누구인지, 다음번엔 어떤 연애를 하고 싶은지 같은 앞으로의 만남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이별은 성장을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다. 내가 가장 최근 겪은 이별을 예를 들어 보겠다. 그 상대방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겪기 전의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표현이 부족하고 나를 비롯한 모든 것에 비판적인 시각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비록 결국 끝이 나긴 했지만 그와의 시간에 영향을 받은 덕분인지 나는 어느 순간부터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예전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자제하던 애정과 친근함의 표현들을 비교적 쉽게 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주변 사람들에 대한 시선과 생각 역시 관대해진 것이 나 스스로도 느껴졌다. 과거에는 도대체 왜 저럴까 싶었던 것이 이제는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네이트와의 추억의 장소에 찾아온 제니, 그런 그를 찾아온 친구들


썸원 그레이트. 나에게 딱 맞는 소울메이트 같은 상대방을 만나 영원히 사랑하는 일. 정말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새로운 사람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과 별개로, 자신이 바라는 그런 사람은 이미 곁에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경우 이별 후 얼마 뒤 맞이한 생일에 잊지 않고 축하해 준 친구들이 바로 그 썸원 그레이트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별로 인한 상실을 겪었지만 가진 것에 대한 감사함을 느낀 계기도 되었다. 혹은 나 자신이 썸원 그레이트가 될 수도 있다. 누구보다 나 자신을 잘 이해해주고 응원하며 항상 발전하고 언제나 행복하길 바라는 존재. 그런 사람이 나타나 주길 기다리기보다 내가 스스로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주는 것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해 준다면 누군가 곁에 있든 없든 언제나 완전하게 느껴질 것이고, 혹은 또 한 번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낸다 해도 후회나 아쉬움을 남기는 대신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사진 출처 : IMDB

https://m.imdb.com/title/tt8075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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