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인 Nov 11. 2022

[버즈 라이트이어]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변화가 달갑지 않은 사람들






2010년, 가족들과 ‘토이 스토리 3’를 극장에서 보고 눈물 콧물을 쏟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영화 자체가 감동적이고 재밌는 것도 물론 한몫했지만 내가 유난히 인형과 장난감들을 좋아했기에 영화의 내용이 더욱 깊이 다가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 보니 영화 속 앤디를 보며 나도 더 나이가 들면 결국 내가 아끼는 솜뭉치와 플라스틱 친구들을 버리거나, 어린 동생들에게 보내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서글퍼졌다. 그래서인지 이 시리즈의 이름을 떠올릴 때면 마음이 조금은 아련해진다.


그랬던 토이 스토리 시리즈의 주인공 중 한 명인 버즈의, 정확히는 장난감 버즈의 모델인 버즈 라이트이어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개봉했다. 영화의 제목은 주인공의 이름과 동일한 ‘버즈 라이트이어’. 장난감 버즈의 실사(?) 모델이 주인공인 것만도 호기심을 유발하는데, 토이 스토리의 극 중 앤디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라는 설정까지 더해져 극장에 가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디즈니 픽사의 작품답게 전 연령을 아우르는 애니메이션인 만큼 별로 심각하지 않은 마음으로 극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영화는 잔잔한 감동과 은근한 유머 코드가 어우러진, 너무 무겁지 않은 산뜻한 작품이었다.


영화 '버즈 라이트이어'의 한 장면


영화를 보고 나면 구글에 해당 영화를 검색해 보는 습관이 있다. 주로 출연진들과 작품의 ‘좋아요’ 비율, 혹은 실관람객들의 반응을 살펴보기 위함이다. ‘버즈 라이트이어’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고 상영에서 나오기 무섭게 ‘버즈 라이트이어’를 검색해본 나는 예상보다 훨씬 낮은 ‘좋아요’ 비율을 보고 놀랐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시점, 좋아요 비율은 고작 55 퍼센트이다. 내 기준에 영화는 대단히 박진감 넘친다거나 토이 스토리에 비견할 정도의 감동까지는 아니더라도 픽사의 작품답게 '무난함' 이상의 결과물은 보여주었다. 게다가 웬만한 프랜차이즈 영화나 대형 제작사의 애니메이션 작품은 좋아요 비율이 80 퍼센트 후반 밑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잘 없다. 그런데 이 낮은 수치는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관람객들의 평을 좀 더 자세히 찾아볼 수밖에 없었다.



• Infinity and Beyond


우주비행사 버즈 라이트(이하 버즈)는 대원들과 함께 인류에게 필요한 자원을 탐사하기 위해 미지의 행성에 도착한다. 앞으로의 희망찬 미래를 꿈꾼 것도 잠시, 버즈와 동료들이 도착한 곳은 적대적인 외계 생명체만 가득한 삭막한 행성이었다. 그나마도 버즈의 고집으로 탈출 과정에서 우주선의 동력원인 하이퍼 크리스털을 망가뜨린다. 결국 그 행성에 고립된 대원들. 1년 동안 대체 동력원을 찾으려 애쓰는 와중에 대원들은 결국 하나둘 그 행성에 적응 및 정착해 살아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고 싶던 버즈는 결국 대체 동력원을 모아 하이퍼 크리스털을 만들어 내고, 행성을 탈출을 위한 시범 주행을 떠난다. 하지만 결국 시범 주행은 실패로 끝나고, 놀랍게도 기지에 다시 돌아오니 4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즈는 무거운 책임감을 벗어던지지 못한 채 실험을 이어간다. 시범 주행 실패가 반복되는 동안 사령관이자 가까웠던 동료 알리시아는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아이 엄마가 되더니 어느새 점점 나이가 들어 세상을 떠난다.


버즈와 알리시아


또 한 번 미션에 실패하고 돌아온 버즈. 새로운 사령관 번사이드는 더 이상의 실험을 허용치 않는다. 그러나 다시 지구로 돌아갈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내고 싶던 버즈는 자신이 없는 동안 연료 배합의 실마리를 풀어낸 ㅡ 과거 알리시아가 선물해 주었던 ㅡ 로봇 고양이 삭스를 데리고 기지를 탈출한다. 삭스 덕분에 버즈는 드디어 테스트에 성공하고 돌아오지만 기지는 로봇 부대 저그의 습격 아래 놓여 있다. 그러던 중 버즈는 알리시아와 똑 닮은 손녀 이지를 마주치고, 이지는 버즈에게 그동안의 자초지종을 설명해 준다. 하필 하나뿐인 하이퍼 크리스털을 저그 로봇에게 빼앗겨 버린 버즈는 이지와 그의 동료들과 함께 저그의 본부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버즈는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버즈와 이지의 일행들



• 이입의 대상, 그 창피한 이유


아마 2030 남성들에게 요즘의 디즈니, 마블, 픽사(이하 디즈니) 작품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PC를 묻었다’라는 답변을 제법 많이 들을 것이다. 이는 결코 긍정적인 뉘앙스의 말이 아니지만, 엄밀히 얘기해서 틀린 소리도 아니다. 실제로도 디즈니는 유색 인종 캐스팅 비중을 늘리고 있다. 내용 면에서는 여성이 남성에게, 그리고 유색 인종 등장인물이 백인 등장인물에게 본인들이 사회적 약자로서 겪는 차별에 대해 호소하는 장면이 많이 늘었다. 성소수자 캐릭터가 늘어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디즈니뿐만 아니라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에서도 레즈비언, 게이 등을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의 비중이 꽤 높아졌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현상이 반갑다. 반가우면서도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느낀다. 페미니즘을 주제로 하는 작품들의 경우 대부분 백인 여성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고, 성소수자 등장인물들의 경우 캐릭터 자체의 입체성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동양인 등장인물은 여전히 찾아보기 어렵다. 장애우 캐릭터는 그마저도 더 드물다. 그래도 예전에는 백인 남성 이성애자 천지였던 작품들만 넘쳤던 것을 고려하면 요즘의 추세는 분명 긍정적이며 앞으로의 더 큰 변화를 기대하게 만든다.


그런데 나와 달리 이러한 변화에 앞장서는 (듯 보이지만 실은 구색 맞추기 정도인) ‘PC 묻은’ 디즈니의 변화에 대해 앞서 언급한 2030 남성들은 대부분 못마땅 듯하다. ‘버즈 라이트이어’의 유난히 낮은 ‘좋아요’ 비율 역시 이를 반증한다. 가장 결정적인 장면은 당연히 버즈의 동료인 흑인 알리시아가 같은 여성과 결혼해 아이를 낳아 가정을 꾸린 부분일 것이다. 내가 찾아본, 그 동성 임신 장면에 대한 남초 커뮤니티의 반응은 이러했다. 디즈니 새 X들이 작정을 했다, 저런 걸 왜 애들이 보는 데 넣느냐, 인류가 망할 때가 됐다, 역하다 등. 반 농담으로 하는 말이지만 이 중에서 내가 동의하는 의견은 인류가 망할 때가 됐다는 부분밖에 없다. 물론 그 댓글주인공이 뜻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말이다.


버즈와 고양이 로봇 삭스의 첫만남


여기서 두 번째 의문이 생겼다. 그들 또한 제1 세계 백인들에게 한때 ‘제3세계’라고 부르며 깎아내려지던 국가에 속하는 람들이 아닌가. 그럼에도 그들이 다른 국가에 사는 유색인종들이 사는 차별 문제에 공감을 못 하고, 그나마도 미디어에서나 겨우 행해지는 PC를 못마땅해하는 이유는 그들이 적어도 한국에서만큼은 제1 세계 백인들과 같은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온오프 가릴 것 없이 PC나 여타 사회 변화에 관대한 쪽은 여성들이다. 젊은 여성들, 특히 20대 여성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 하는 비율이 높다. 뿐만 아니라 환경을 위해 일회용품을 사용을 자제하자고 촉구하거나, 탄소 배출을 위해 채식을 생활화하자고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쪽도 여성의 비율 높다. 반면 남성들은 디즈니 식 PC 뿐만 아니라, 채식이나 환경 정책에도 반감을 보인다. 채식과 관련된 게시글이 올라오면 그래도 고기가 최고라거나, 일회용품 사용을 규제 정책과 관련된 글에는 인구수가 많은 다른 국가의 머리채를 잡으며 우리만 노력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거나, 빨대 없이 커피를 마시면 이가 너무 시리다는 투정을 부리는 식이다. 결론적으로 많은 남성들은 사회 변화가 싫은 것이다. 자신들은 지금 이대로가 편하고 좋기 때문에.


딱히 없는 말을 한 것은 아지만 여기까지 너무 신랄한 감이 없지 않다. 이쯤에서 분위기를 바꾸어 보려고 한다. 당연히 모든 남성들이 이러한 것은 아니다. 내가 구독하고 있는 시사 주간지에서 한동안 친환경이라는 모토로 사업을 시작한 스타트업 기업들이 소개되었다. 플라스틱을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나, 자연에서 구한 친화경 소재를 개발하는 식이다. 그리고 여기에 소개된 CEO들 중 많은 이들이 남성이었다. 채식의 중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남성 기자들의 글도 심심치 않게 접했다. 뭇남성들을 적으로 돌리면서까지 꾸준히 여성 인권 관련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위근우 기자는 그 꾸준함과 글빨로 항상 나의 감탄을 자아낸다. 내 남동생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비록 한때는 영화 ‘부산행’이 여성 캐릭터들이 모두 수동적으로 그려져 보고 싶지 않다던 나에게, 그럼 자신은 여성판 ‘고스트 버스터즈’를 안 보면 되는 거냐고 응수하던 내 남동생은 이제 여성 인권 관련한 내 의견에 기꺼이 수긍하고, 본인이 일하는 곳에 페미니스트 작가들을 초대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다. 어둠이 아무리 짙어 보일지라도 빛은 존재하는 법이니까.


영화 '버즈 라이트이어'의 한 장면


어느 한 곳에서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결국 견고해 보이는 성도 와르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 바로 이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누군가는 변화를 감지하고 재빨리 그 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튼튼한 성을 지을 것이고, 그곳에서 남들보다 호의호식하던 이들은 어떻게든 무너져가는 성을 붙들고 지키려 들 것이다. 두 무리 중 어느 쪽이 현명한 지는 길게 생각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55087

작가의 이전글 [코다] 가족의 의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