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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Nov 25. 2022

[점보] 조금 다른 사랑 이야기

다양한 사랑의 형태






일반적으로 사랑이라고 하면 연인 간의 사랑이나 가족 간의 사랑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사랑의 종류와 형태는 다양하다. 동성 간의 성애와 친구 간의 우정 또한 사랑이고, 반려 동물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 역시 사랑이다. 문득 올려다본 푸른 하늘, 초록빛의 무성한 나무와, 얼굴을 간질이는 기분 좋은 바람을 느끼며 품는 자연에 대한 경이 또한 사랑이라고 하겠다. 개인적으로는 불가지론자와 무신론자 사이의 어딘가에 있지만 종교인들의 신앙심 역시 사랑의 한 종류일 것이다. 연예인들에 대해 품는 팬심이나 애국심은 더 설명할 필요도 없으리라. 아마 이 외에도 내가 미처 알지 못한 형태의 사랑이 분명 있을 것이다.


이처럼 서로 다른 형태의 사랑들이 존재하기에 각각의 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들 또한 다양하다. 그중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기 힘든 종류의 사랑도 있다. 예를 들어 ‘그녀 (Her)’의 주인공이 테오도르가 허스키하고 섹시한 목소리의 인공지능 OS 사만다에게 느낀 감정 또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테오도르가 사만다가 자신뿐 아니라, 수많은 다른 사용자들에게도 똑같이 특별하고 다정하다는 사실에 실망했을지언정 그가 품었던 감정이 사랑에 가까운 무언가였음은 분명하다. 인공지능과의 신체 접촉은 불가능하지만 직접적인 소통만은 가능하다. 때문에 테오도르가 점차적으로 감정을 쌓아가는 과정이 아주 이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직접 만질 수는 있어도 대화는 불가능한 놀이기구와의 사랑은 어떨까?



• 우리 그냥 사랑하게 해 주세요


유난히 내성적이고 또래와 잘 어울리지 못하며 외롭게 지내는 잔. 그는 다른 사람을 만나고 외출하기보단 집에서 놀이기구 미니어처를 만들며 시간을 보낸다. 놀이공원의 야간 청소부로 일하던 잔은 얼마 뒤 새로 들어온 ‘무브 잇’이라는 놀이기구를 발견한다. ‘무브 잇’에 왠지 모를 끌림을 느낀 잔은 집에 돌아와 이를 본뜬 모형을 만들고 ‘점보’라는 이름까지 붙여준다. ‘무브 잇’에 대한 무어라 정확히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을 키워가던 잔은 자신의 상사인 마크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해주었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사물아 너도 우리 마음과 연결되고 사랑을 느끼는 영혼을 가졌니?’


놀이기구 '점보'를 마주 보는 잔


이 말에 깊은 울림을 느낀 잔. 그는 청소를 마치고 ‘무브 잇’에게 찾아가 자신의 미니어처와 같은 ‘점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이후 틈만 나면 점보를 찾아 함께 시간을 보내던 잔은 점보 위에서 엄마의 전화를 받다가 떨어질 뻔한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 점보가 저절로 아래로 기울더니 잔이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를 통해 잔은 점보가 자신의 말을 이해하며 교감할 수 있다고 믿게 된다.


밤늦은 시각, 아무도 없는 놀이공원에서 점보와 시간을 보내는 잔


점점 마음이 커진 잔은 마침내 엄마를 데리고 가 점보를 소개하지만 엄마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딸에게 문제가 있다고 믿은 엄마는 잔의 방에 있는 모형들까지 망가뜨리고, 그렇게 모녀간의 갈등은 깊어진다. 덕분에 혼란과 자기혐오를 느낀 잔은 충동적으로 마크와 잠자리를 가지지만 이내 후회하점보에게로 달려가 애정을 쏟아낸다. 이를 목격한 마크는 송년회 자리에서 점보를 다른 곳에 팔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알리고, 이후 집에만 틀어박혀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잔은 어느 순간 결심한다. 어떻게든 점보와의 사랑을 지키겠노고.



• 그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던 이유


영화 ‘점보’는 결국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주인공 커플이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는 그런 방식의 해피 엔딩으로. 즉 주인공 잔과 그의 ‘남자’ 점보는 부부가 된다. 물론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그려진 쿠션이라든가, 로봇과 결혼한 사람들은 각종 온라인 뉴스 등에서 종종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인간은 아닐지언정 적어도 인간과 비슷한 형상이라도 갖추었다. 조금 주제넘는 소리일지 모르나, 캐릭터 쿠션이나 로봇 등과 결혼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물건 (혹은 상대)에게서 보통 사람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장점은 취하면서 단점은 피하고 싶었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 말하자면 모니터 속 우상 혹은 이상형들과 달리 직접 언제든 만질 수 있으면서도, 일반적인 연인이나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은 피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인간의 행색을 닮아 있는 사물을 애인이나 배우자로 칭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어느 정도는 이해 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디가 눈코입인지 알 수 없는, 인간의 형상과는 전혀 닮지 않은 놀이기구라면 어떠한가. 상상이 일상인 나조차 나의 지인이 잔과 같은 사랑을 하고 있다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잔은 도대체 점보의 어떤 면을 사랑하게 된 것일까. 이해를 하고자 한다면 분석이 필요하다. 일단 잔은 또래들이나 다른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듯 보인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혼자서는 지낼 수 없기에 남들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이런 정의에 비해 무리에 잘 섞여들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배려는 그리 쉽게 찾아볼 수 다. 사실 이러한 양상은 나이가 어릴수록 좀 더 노골적이다. 아직 사회화 과정을 거치는 단계인지라 오히려 더 잔인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어른이 된 이후의 사정이 더 낫다고 보기도 힘들다. 아마 선량한 누군가는 겉도는 이를 적극적으로 배려할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쉽게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을 두고 하나라도 신경 써주어야 하는 사람을 더 가까이 두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잔은 어렸을 적부터 외로운 생활을 해왔을 다. 사회성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운이 좋다면 자신과 잘 맞는 친구를 만날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그에게는 그런 행운은 찾아오지 않은 것 같다. 그런 그는 방에 혼자 머물면서 자신이 만든 미니어처들과 친구가 되었으리라.


점보와 교감하는 잔


그렇다면 왜 하필 놀이기구인가. 놀이기구의 디자인은 보통 화려하다. 그렇다고 마냥 세련되게 화려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인지 조금은 유치하면서도 동화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자면 무해하다. (물론 속을 메스껍게 할 수 있는 기능을 떼어놓고 디자인만 두고 이야기했을 때만이다.) 그런 놀이기구의 이미지가 잔의 경계심을 풀어주지 않았을까. 또한 놀이기구는 대부분 큼직하다. 잔이 사랑에 빠진 점보 또한 예외가 아니다. 그 거대한 사이즈는 든든한 느낌을 자아낸다. 게다가 이처럼 육중한 크기 때문에 놀이기구는 큰 이변이 없는 한 항상 같은 자리를 지킨다. 안정감과 예측가능성. 사람에게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할 확률이 좀 더 높은 잔으로서는 엄청난 장점인 셈이다. 게다가 놀이기구는 말이 없다. 누군가 전원을 들어오게 하지 않는 이상 그 어떤 소음도 내지 않는다. 작동을 하더라도 귀여운 음악이 나오는 정도다. 잔의 입장에서 서술하자면 쓸데없는 말을, 정확히는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소리를 할 가능성이 없다. 잔의 상사처럼 성관계 도중 ‘좋아?’라고 물을 확률 같은 건 전혀 없는 것이다.


점보에 대한 잔의 사랑은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이 아니긴 하지만 결국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현대 사회는 여러 면에서 선택지가 많다 못해 차고 넘친다. 당장 우리 식탁에서만도 어느 나라에서 온 것인지 불분명한 이색적인 요리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해외 영화나 드라마를 현지 사람들보다 늦지 않게 감상하는 것도 이제 너무 당연해졌다.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학과라든가 직업이 생기고, 앞으로 또 어떤 것들이 새롭게 탄생할지 알 수 없다. 인터넷 덕분에 한때는 자신을 ‘비정상’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사람들과 연결되면서 ‘정상’의 범주를 넓히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는 지금 복잡하고 다층적인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인간이 아닌 사물과 사랑에 빠진들 뭐가 그리 해가 될까. (물론 예외는 있다. 예를 들어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그려진 캐릭터 쿠션이나 단순 자위도구가 아닌, 성관계 목적으로 제작된 인간 여성 형상의 인형이랄지.) 성관계를 인간의 기본 권리이자 반드시 충족되어야 할 본능으로 착각해 왜 안 만나주냐며 울분을 토하는 누군가의 사랑 방식보다는, 잔과 점보의 사랑이 훨씬 긍정적이고 무해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밤, 고양이의 얼굴을 한 나의 애착 인형을 끌어안고 잠들어야겠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37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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