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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Dec 09. 2022

[파워 오브 도그] 오직 한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누구를 위한 남성성인가






당장 눈앞에 거슬리는 무언가가 있다고 가정하자. 만약 발치에 굴러다니는 돌 정도라면 걷어 차면 그만이고, 옷 안쪽에서 피부를 긁어대는 라벨은 잘라내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 무언가가 사물이 아닌 사람이 될 때는 문제가 좀 더 복잡해진다. 장애물과 같은 존재는 자신의 계획이나 재능에 대해 찬물을 끼얹는 지인일 수도 있고, 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자꾸만 좌절시키는 교수나 상사가 될 수도 있다. 혹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가스라이팅 하는 연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예시들은 어디까지나 상대방과 내가 직접 엮인 상황들이다. 그런데 그 장애물 같은 사람이, 내가 아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가로막고 있다면 어떨까.


아마 많은 이들이 자기 자신보다 본인이 아끼는 사람이 피해를 받거나 괴롭힘을 당할 때 더 속상하고 화가 나리라 생각한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이라면 그저 미친 X 하고 넘길 일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겪는 상황이라면 왠지 더 분노가 치미는 것이다. 나만 하더라도 무례하게 굴거나 불편을 주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그 대상이 나일 때와 내게 소중한 사람일 때의 느낌이 꽤 다르다. 만약에 그런 부당한 일을 겪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성정이 유순해 속으로 삭이고 끝까지 당하기만 한다면? 그것도 모자라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점점 무너지는 모습까지 보인다면 어떨까. 이러한 가정에 딱 맞는 캐릭터와 설정이 등장하는 영화가 있었으니. 바로 2022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에 빛나는 작품, ‘파워 오브 도그’이다.



•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난 엄마가 행복하기만 바랐다. 엄마를 돕지 않으면 사내도 아니지. 엄마를 구할 수밖에.’


보스턴의 명문가의 형제 필과 조지는 부모님과 도시 생활에서 떨어져 물려받은 목장 일을 하며 지낸다. 필은 동생인 조지를 뚱보라 부르고 무시하기 일쑤이다. 다 같이 목장 일이 끝나고 로즈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가는 형제와 동료들. 함부로 대하는 것이 조지만은 아닌 듯 필은 얌전하고 곱상해 보이는 로즈의 아들 피터를 조롱하고 그가 만든 종이꽃도 망가뜨린다. 손님들이 모두 떠나고, 조지는 그날 일로 속상해진 로즈가 홀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발견한다. 이를 계기로 무척 가까워진 로즈와 조지. 필은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아 두 사람의 관계를 비꼬기 바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즈와 조지는 결국 결혼하고, 필은 여행에서 돌아온 로즈에게 꽃뱀(Cheap Schemer)이라며 모욕을 준다. 하지만 이는 시작일 뿐이다. 필은 기회만 있다 하면 로즈의 심기를 건드린다. 대놓고 따지지도 맞서지도 못하던 로즈는 필과의 생활에서 오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결국 술에 의존하기 시작한다. 얼마 뒤 여름 방학을 맞이해 로즈를 찾아온 그의 아들 피터 역시 이 사실을 금세 알아차린다. 피터는 혹시 필 때문이냐고 묻지만 로즈는 남자들은 원래 그렇다며 대수롭지 않은 척 넘기려 한다.


함께 목장을 운영하는 형제 필과 조지 (왼쪽) / 압박감에 시달리는 로즈 (오른쪽) 


그러던 어느 날 피터는 숲 속에서 홀로 목욕하는 필을 발견하고, 필은 마치 치부라도 들킨 것처럼 분노한다. 그러나 그 사건 이후 필은 오히려 피터에게 잘해주기 시작하고, 피터 역시 두 사람 사이에 아무런 유감도 없었다는 듯 필을 호의적으로 대한다. 피터가 필에게 밧줄을 엮는 법과 승마를 가르쳐 주는 등 두 사람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로즈의 불안감 역시 커져간다. 이러한 상황을 견디지 못한 로즈는 가죽을 사러 온 미국 원주민에게 필의 가죽을 돈도 받지 않고 줘 버린다.


당연하게도 이에 필은 폭발하고, 잔뜩 흥분한 그에게 피터는 자신의 가죽을 대신 건넨다. 필은 다친 손으로 밤새 피터가 준 가죽을 꼬아 밧줄을 만드는데, 어쩐 일인지 다음 날 필은 몸이 좋지 않아 병원으로 향한다. 집을 떠나기 직전 무언가를 깨달은 듯 필은 피터를 애타게 찾지만 그는 자신의 방 안에 숨은 채 끝까지 나오지 않는다. 결국 필이 사망하고, 그의 장례식에 찾아온 의사는 조지에게 아무래도 탄저병이 의심된다고 얘기한다. 이에 조지는 형은 단 한 번도 죽은 동물 사체를 건드린 적이 없다며 의아해 하지만 더 파고들지 않는다. 마침내 장례식이 끝나고, 피터는 장갑을 낀 채 필이 마지막으로 완성한 밧줄을 매만지다 침대 밑에 숨기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 두 남자의 대척점, 남성성


이처럼 복선이 촘촘하게, 곳곳에 심어진 영화도 실로 오랜만에 접하는 듯하다. 맨 처음 흘러나오는, 엄마의 행복만을 바란다는 피터의 대사를 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그저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에 무엇이든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 정도로 생각했다. 여기서 얘기하는 ‘무엇이든’ 역시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상식적인 수준의 일들이었고. 마침내 영화가 엔딩에 다다랐을 때 필이 했던 행동 하나하나, 그리고 그가 뱉은 말 한마디 한 마디가 모두 미래에 벌일 일을 염두에 둔 것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필의 커다란 눈망울이나 단정한 머리 모양과 옷차림, 호리호리한 체형은 (이 정의에 동의하진 않지만) 통상적으로 남자답다고 할 때의 모습과 거리가 있다. 이런 피터의 모습은 1920년대라는 극 중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면 ‘정상적인’ 남성성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아버지가 자신의 성격이 독해서(too strong) 걱정했다는 피터의 말에 필은 코웃음을 친다. 그러나 피터의 아버지의 말처럼 그에게는 분명 독한 면모들이 있다. 외과의로서 연습을 위해 사랑스럽고 겁먹은 토끼를 망설임 없이 해부하고, 다리가 다친 토끼에게 자비를 베풀고자 곧장 목숨을 끊어 버린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정확히 계산을 마친 후, 필에게 죽은 동물 가죽을 건넨다. 피터가 필에게서 보았을 여리고 어리숙한 외모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모습이다. 이러한 피터의 행동은 모두 어머니의 행복을 위한 것들이었다. 즉 피터의 ‘독한' 면은 감정을 분리할 수 있을 정도로 목표에 충실한 기질에서 기인한 것이다.


내면으로 파고들수록 단단해지는 피터와 달리 피터는 정반대 되는 캐릭터이다. 필은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카우보이 복장을 한 채 터프한 외모를 자랑하며, 동생 조지처럼 목욕을 하는 것이 남자답지 못하다고 여기는지 일부러 진흙으로 씻으며 청결하지 못한 모습으로 다닌다. 마치 자신의 힘을 과시하듯 남들을 깔보는 언행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외면과 달리 필의 마음속은 불안하다. 정확히는 누군가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될까 봐 불안한 것이다. 다소 간접적으로 표현이 되기는 했으나 필은 동성애자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의 부모님 역시 이 사실을 알았을 확률이 높다. 그래서 명문대 출신인 필이 부모님 성에 차지 않던 조지와 함께 외딴 목장으로 쫓겨나듯 보내진 것일 테고, 이 사건이 필에게 있어 큰 상처로 남았으리라는 건 어렵지 않게 추측 가능하다. 필이 피터에게 목욕하는 모습을 들킨 후 친절해진 것도 사실 둘은 '비슷한' 존재라는 사실을 공유했다는 친밀감에서 기인하는 것이리라. 결국 필의 철저한 사회적 남성성의 수행은 본인을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수행 과정에서 필은 타인을 다치게 하거나 모욕을 주는 데 거리낌이 없다. 로즈가 했던 말처럼 남자란 으레 그런 것이니까. 필은 그저 자신이 '정상적인' 남성임을 증명하고, 이를 통해 스스로를 지키는 데만 몰두한다. 자기부정까지 감수하며 수행해온 남성성이 자신에게 어떻게 부메랑이 되어 날아올지는 예상치 못한 채로.


영화 속 필(왼쪽)과 피터(오른쪽)의 모습


영화를 감상한 후 언제나처럼 온라인에서 다른 이들의 감상평을 찾아보았다. 조금 날것 그대로에 편협한 감이 있는 한 코멘트가 눈에 들어왔다. 그 댓글의 요지를 최대한 순화해 표현하자면 이러하다. 페미니스트 여성 감독이 남성 동성애자를 비판적으로 다루는 내용. 피터가 동성애자인 것도 맞고, 영화에 페미니즘적 메시지가 어느 정도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페미니즘을 근거로 남성 동성애자를 비난하는 내용은 결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이 영화가 비판하는 지점은 정확히는 이로울 것이 없는 사회적 남성성에 대한 강요와 집착이다. 


정상적인 남성으로 기능하기 위해 필은 자기 자신을 부정해야만 했고, 이 과정에서 로즈를 비롯한 남들에게 상처를 입혔다. 그 남성성에 눈이 먼 나머지 필 본인과 비슷한 줄로 착각했지만 실은 이러한 사회적 편견과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웠던 피터의 본질을 놓쳤다. 남성성이 곧 강인함을 뜻한다고 믿지 않지만, 과연 영화 속에서 그려진 필과 피터 중에 진정으로 강인한 '사내'는 누구인지 묻고 싶다. 남자다움이란 필이 믿고 수행했던 것들과는 관련이 없고, 이러한 요소들이 특정 생물학적 성별과 연결될 이유도 없다. 한 사람의 성별을 기준으로 외적 표현을 단속하고 내적 가치를 규정해선 안 된다. 정확히 동일한 논리를 사회적 여성성에도 적용할 수 있으리라. 이것이 영화 '파워 오브 도그'가 던지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사진 출처 :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39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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