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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Dec 23. 2022

[타미페이의 눈] 사랑을 좇는 눈

그리고 잘못된 길로 들어서다






나는 종교가 없다. 무신론자인지, 아니면 불가지론자인지는 약간 애매하다. 이신론자 또한 아니다. 위대한 자연에 누군가 개입했다는 생각 자체를 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종교를 믿지 않는 이유는 그동안 접해온 모든 종교에서 성차별적인 지점을 발견한 탓도 있겠지만, 이는 성인이 된 이후부터 인식한 부분이니 근본적인 이유는 아닐 것이다. 종교를 ‘믿는다’라는 말에서 믿는 행위는 내가 가족을, 친구를 믿는다는 것과는 다르게 느껴진다. 종교에서의 믿음의 개념은 단순한 신뢰의 개념이 아니다. 전지전능한 절대자에 대한 복종과 의존이 전제되어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믿는다고 해서 그들의 말이 무조건 맞는다고 여기진 않는다. 흔들림 없는 사랑과는 별개로 도대체 저런 소리나 생각을 왜 하나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기에. 아마 그들도 내게 제법 자주 같은 마음을 품었으리라. 그러나 신에 대해서는 이런 마음가짐을 품어선 안 된다. 이처럼 절대자에 대한 한 치의 의문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를 본능적으로 불편하게 만든 것 같다. (물론 좀 더 열린 태도를 지닌 종교인들도 있다.) 어렸을 적부터 집안 어른들 말에 오류나 불합리한 부분이 보이면 따지고 들기 바빴던 나였기에 종교에 거리를 두고 살아온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나는 무언가 문제가 생기면 최대한 스스로 방법을 찾으려는 편이다. 조금 화나거나 짜증 나는 일에 대해선 가까운 친구에게 짧게 푸념하는 정도이지, 아프고 힘들거나 고민이 있을 때 공감이나 걱정을 바라는 편도 아니다. 아예 문제가 모두 해결된 이후에 통보만 하는 경우도 많다. 연애에 대한 이야기도 연인과 헤어지거나 헤어지기 직전이 아닌 이상 자랑도 상담도 즐기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듣는 것도 달갑지는 않다) 결론적으로 최소한의 소통 기회만 보장된다면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호소하고 싶은 욕구가 적은 편이다. 이러한 기질 또한 종교의 세계에서 나를 멀어지게 했을 것이다. 누군가 내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고, 나를 보살펴 주길 기대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종교를 믿지 않는 내게 이유가 있듯 종교인들 또한 각자의 이유가 존재할 것이다. 영화 ‘타미페이의 눈’의 주인공 타미 또한 마찬가지였을 테고.


방송 중인 타미



• Misguided Love


‘저도 구원받고 싶어요.’


타미는 엄마를 따라 교회에 가고 싶지만 그의 존재는 교회인들로 하여금 엄마의 이혼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나머지 가족들이 교회에 간 동안 타미는 홀로 시간을 보내야 한다. 하지만 결국 그는 어머니 몰래 교회에 찾아가고, 목사가 건넨 성수를 마시고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쓰러진다. 그 모습을 보고 어머니는 당황하지만 목사와 신자들은 기적을 발견한 듯 찬양한다. 이후 성인이 된 타미는 기독교 학교에 입학하고, 그곳에서 짐 베이커를 만난다. 주님을 사랑하면서도 돈을 마음껏 벌어도 된다는 짐. 타미는 성경을 자기식대로 해석하는 짐에게 호감을 느끼고, 두 사람은 학생끼리는 결혼을 금지한다는 교칙까지 깨고 부부가 된다. 이후 짐은 타미에게 의논도 없이 은행 대출을 받아 차를 구매하고, 타미는 이에 마음이 불편해지지만 짐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 적당히 상황을 넘긴다. 이동 수단이 생긴 부부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설교를 하고, 타미는 ‘수지 모펫’이라는 인형으로 인형극을 선보여 많은 아이들을 끌어모은다.


타미와 짐


인형극의 인기 덕에 TV 전도 프로그램의 유명 목사 팻 로버트슨과 연이 닿게 되고, 이를 계기로 부부는 CBN 방송국에서 어린이 전도 프로그램을 맡아 큰 호응을 얻는다. 이후 두 사람은 그들만의 전도 프로그램 PTL 클럽을 설립하기에 이르고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그들은 전 세계를 돌며 전도 활동을 하고 기부금을 받으며 타미는 가스펠 앨범까지 발매한다. 이렇게 마냥 주님의 사랑 아래서 행복할 줄만 알았건만. 타미의 어머니는 타미와 짐이 목회 기금으로 새 건물을 짓는다는 옵저버 지의 기사를 보여주며 신앙심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딸 부부에게 의문을 표한다. 타미는 다 괜찮다고 답하면서도 내심 불안해진다. 그러는 동안 짐은 자꾸만 재정 상황에 대해 숨기고, 혼자서 이런저런 사업에 손을 댄다. 부부의 사이마저 소원해진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타미는 점점 진정제에 점점 의존하기 시작한다.


타미의 대기실에 찾아온 어머니



• 결국 사랑을 주고받고 싶었을 뿐인 한 사람


타미가 짐의 금융 사기에 얼마나 관여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두 부부의 사기극에 대해서도 영화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러나 영화에서 그려지는 면만 놓고 보자면 짐과 달리 타미에게는 조금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타미의 서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의 선택들은 모두 외로움, 더 나아가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에서 비롯됐다. 어렸을 때부터 소외감을 느꼈던 타미는 어른이 되어서도 어머니로부터의 인정 욕구에 시달린다. 남편 짐의 어리석은 행동을 보며 어렴풋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차마 그에게 냉정한 말 한마디 못한 채 눈과 귀를 막았던 것 또한 같은 이유 때문이다.


신에 대한 믿음 역시 같은 맥락이다. 신에 대한 묘사에 따르면 신은 전지전능하다. 무엇이든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신은 모두를 사랑한다. 그렇다면 신의 사랑은 고정불변한 성격을 지니며 무한히 확장 가능하다. 자신의 신도가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신은 언제나 그들을 사랑한다. 어느 하나 안정적으로 마음을 붙이고 의지하지 못했던 타미가 이처럼 변함없이, 그리고 조건 없이 모두를 사랑해주는 신의 존재를 믿고 의지하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타미가 신앙심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이를 통해 사치를 누렸던 점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어쩌면 그에게 있어서 이 또한 신과 남편 짐을 사랑하는 한 가지 방식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가스펠 앨범을 녹음 중인 타미


흔히 기독교는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알려져 있다. 21세기에 들어 관련 성경 구절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등장하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전반적인 분위기 자체는 동성애에 대해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다. 굳이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이들이 많으니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신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타미는 놀랍게도 동성애자들을 옹호했다. 그가 한창 활동하던 시기를 감안하면 더더욱 놀랍다. 심지어 타미는 그의 방송이 한창 잘 나가던 시절 성소수자 목사와의 인터뷰까지 진행하며 모두를 사랑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짐의 재판으로 여러 사건을 겪고, 다시금 목회 일을 시작한 이후 사망할 때까지 타미는 계속해서 성소수자 및 도움이 필요한 모두를 포용했다. 이런 점에서 타미와 남편이 방송을 운용한 방식에는 문제가 있었을지언정, 그가 사랑의 정의에 대해 제대로 이해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이쯤에서 드는 한 가지 의문. 타미처럼 사랑에 목말라하는 어린양을 이처럼 길을 잃은 채 내버려 둔다면, 전지전능하고 모두를 사랑하는 신이라는 개념이 과연 성립이 가능한 걸까? 신은 원래 인간의 일에 개입하지 않는 법이라면 정말 모두를 사랑하긴 하는 걸까? 나로서는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이가 홀로 고통받고 외로워하게 내버려 두는 일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특히나 내가 그 상대를 도울 능력이 충분하다면 더더욱. 감히 신의 뜻을 다 알 리 없는 한낱 인간으로서 드는 의문이다.





사진 출처 :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51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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