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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Mar 17. 2023

[낫 오케이] 그가 괜찮을 수 없는 이유

마음의 병, 우리 모두에게 있었음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혼자서는 살 수 없는, 남들과의 교류가 필요한 존재라는 의미이다. 이는 법이나 제도에서 기인한 부분도 얼마간 있겠지만, 개인의 감정과 필요 또한 중요한 원인이다. 둘째가라면 서러운 집순이인 나의 경우 돈벌이는 모두 집에서 가능한 일만 하고 있고, 주말 약속도 가능하면 일주일에 한 번만 잡으려 한다. 어쩔 수 없이 이틀 모두 나가야 되는 상황이 생기면 며칠 전부터 은은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평일동안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안 나가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내게 주변 사람들은 종종 집에만 있으면 심심하지 않으냐고 묻곤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집이야 말로 모든 재미가 깃든 곳이다.


이런 나조차도 얼음 성을 짓고 칩거하려던 엘사처럼 살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대답이 망설여진다. 세상에는 다른 사람과 함께 해야 더 좋은 것들이 있다. 바로 맛집 가기. 물론 혼밥을 못 할 것도 없다. 하지만 둘 이상 모인다면 여러 메뉴를 시켜다 나눠 먹을 수 있다. 안타깝게도 나는 대식가는 아니다. 대화의 욕구도 빼놓을 수 없다. 평상시에는 이러한 욕구가 별로 없다 보니 전화 통화마저 즐기지 않지만 가끔 이럴 때가 있다. 귀여운 강아지를 보니 동물을 좋아하는 친구가 생각나고, 멋진 미술품을 보니 미술사학과인 친구가 떠오르는 식이다. 그럼 다른 목적 없이 사진을 찍어 보내며 겸사겸사 안부를 묻는다. 그러다 내친김에 약속도 잡고.


아마 정도와 빈도에 차이가 있을 뿐 대부분의 사람들이 친구나 지인들과 근황을 주고받고, 서로 간의 애정을 확인하고 싶어 할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현대 사회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손쉽게 남들과 교류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다름 아닌 SNS를 통해서. 이 SNS라는 것 덕분에 언제 어디서나 다른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넘치는 이미지 속에선 좀 더 자극적이고 화려한 것에만 눈이 가게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모두 얼마간은 꾸며낸 모습일 거라는 사실을 잊은 채 가장된 남들과 현실의 나를 비교하게 된다. 이쯤에서 SNS 앱을 닫고 현실의 나에게 집중한다면 아무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끝끝내 핸드폰을 붙들고 있다 보면 문득 이러한 욕구가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될지 모른다. 나도 관심받고 싶다.



• 관심과 사랑이 고팠을 뿐인데


잡지사 디프라비티에서 사진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 대니는 작가로 업무를 변경하고 싶다. 하지만 대니의 상사는 9.11 테러 당시 가족들과 여행을 가는 바람에 또래들과 공유할 부분이 적다는 이유를 들며 그 사건이 그립다고 호소하는 대니의 글에 감수성이 부족하다며 퇴짜를 놓는다. 그렇게 고배를 마신 대니의 눈에 들어온 이가 있었으니. 바로 회사 동료이자 인플루언서인 콜린. 콜린의 관심을 끌고 싶은 마음에 대니는 자신이 다음 주에 작가 휴양(Writer Retreat) 프로그램에 초대를 받아 파리로 떠난다고 거짓말을 하게 된다.


우울해 하는 대니 / 파리에 간 척 사진을 찍기 시작하는 대니


하지만 실제로 파리로 떠날 여유 따위 없던 대니는 포토샵으로 합성한 사진들을 SNS에 올려 파리에 간 척 연기를 시작한다. 여느 때처럼 합성 사진을 올린 다음 날, 배터리가 나간 핸드폰을 충전해 다시 켠 그는 전에 없이 가족과 지인 그리고 SNS의 팔로워들에게서 연락이 쏟아진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심지어는 심남, 콜린을 포함해서. 알고 보니 전 날 대니가 트윗을 올리고 5분 뒤 파리의 관광지에서 테러가 발생한 것.


총기 난사 사건의 생존자 로완 / 대니가 좋아하는 남자 콜린 / 대니를 의심하는 동료 하퍼


이쯤에서 거짓말을 관뒀다면 좋으련만. 갑작스레 많은 관심과 걱정을 받게 된 대니는 내친김에 상사에게 테러와 관련한 자신의 경험을 글로 써보겠다고 제안한다. 대니는 마침내 허락을 받아내지만 실제로 경험한 일이 아니기에 글은 금방 막히고 만다. 그러다 글의 소재를 얻을 작정으로 어머니에게서 소개받은 생존자 모임에 나간 대니는 그곳에서 총기 난사 사건의 생존자이자 십 대 인플루언서 로완을 만난다. 로완에게서 힌트를 얻은 대니의 글은 엄청난 반응을 이끌어내고, 마침내 그 역시 명실상부 인플루언서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동료 작가 하퍼가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거짓말로 쌓은 대니의 명성에 서서히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 혐오와 분노를 쏟아낼 대상을 찾아서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새까만 화면에 흰색 글씨로 경고 문구가 나온다. 일반적인 경고 메시지 이후 인상적인 내용이 뒤따른다. 비호감인 여자 캐릭터가 등장할 것이라는 경고다. 영화의 경고처럼 주인공 대니가 호감을 가지기엔 어려움이 많은 캐릭터인 것은 확실하다. 상사가 지적한 대로 감수성이 떨어지고, 바른생활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남자에게 잘 보이려 애쓰는 모습도 모두 보기 안 좋지만 대니의 진짜 문제는 거짓말을 했다는 점이다. 그것도 무척 심각한 거짓말을.


SNS에서 큰 반응을 얻자 기뻐하는 대니


대니에게 직접적으로 상처와 피해를 입은 로완, 대니의 가족들과 동료들의 반응은 충분히 이해되며, 이는 모두 대니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니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는, 온라인상의 반응들은 어떨까. 대니도 사람이냐는 질문은 양반이다. 그의 어머니가 낙태하기엔 너무 늦었냐는 멘션에, 대니의 집 주소를 공개하며 직접 쏴 죽이겠다는 경고, 심지어는 언젠가 태어날지 모를 그의 아이들이 총에 맞기를 바란다는 트윗까지 등장한다.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려 한다. 분명 대니는 잘못을 저질렀다. 하지만 얼굴도 모르는 생판 남들에게 이런 말까지 들어야 할까? 로완과 비슷한 사건의 생존자라면 이해할 수 있지만, 과연 대니는 물론 그의 미래의 자식까지 죽기를 바라던 이들이 모두 로완과 같은 케이스일지 미지수다.


함께 퍼포먼스에 나선 로완과 대니


영화를 보며 한때 온라인상에서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여자 연예인들의 일이 떠올랐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부족한 역사의식을 보여준, 콘서트 직후 SNS에 부적절한 이모티콘을 올렸다가 황급히 지운, 그리고 갑질 논란으로 뜨거운 감자가 됐던 여자 연예인들. 당시 이들을 두고 쏟아지던 각종 기사들과 이에 따른 온라인상에서의 반응들을 잊지 못한다. 기사들의 제목은 어서 와서 이 여성을 욕하는 데 동참하라는 듯 자극적이었다. 익명이라는 방패 뒤에 숨은 네티즌들과 SNS, 각종 커뮤니티의 반응들은 본인의 이름을 걸고 기사를 내는 기자들보다 노골적이었다. 그중에서도 특정 장기를 운운하며 해당 연예인을 모욕했던 댓글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잊지 못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당시 논란이 되었던 여자 연예인들에게 보였던 사람들의 반응은 과했다. 대니의 돌이킬 수 없는 거짓말과 마찬가지로 이들 역시 잘했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내 눈엔 각각 지식이 다소 부족하고, 성급한 손놀림에 실수를 저질렀을 뿐이며, 깊은 반성과 함께 상대방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끝내면 될 일처럼 보인다. 물론 연예인이라는 직업 특성상 대중의 인정과 사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똑같은 언행도 연예인이 했을 때와 주변 지인들이 했을 때 그 경중은 다르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이들이 범죄나 학폭을 저지른 것도 아닌 데다, 설령 장난일지라도 살해 위협에 가까운 코멘트를 받거나 인성에 대한 ‘궁예’까지 당하는 것이 과연 당연한 일인지 의문이다.


연예인들의 실수나 잘못에 지나치게 격한 반응을 보이는 이들은 겉으로 드러난 양상은 다르지만 근본적으로는 대니와 비슷한 심리를 지녔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고, SNS나 TV 속 유명인사들 부럽지 않은 화려한 삶을 누리고 싶은 것이다. 안타깝지만 당연하게도 이런 삶은 모두의 것이 아니다. 멘탈이 건강한 사람이라면 가진 것에 만족하거나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쉬운 선택은 아니다. 그렇다 보니 마음속 울분만 계속 쌓여 가고 때마침 분노를 쏟아낼 핑계 좋은 먹잇감을 발견했을 때 폭발하고 만다. 앞서 언급한 여자 연예인들과 같은.


당연하게도 분노의 감정은 사람을 가린다. 자신이 생각했을 때 그만한 지위와 부를 누릴 자격이 없어 보이거나 상대적 약자일 경우, 같은 잘못이나 실수를 저질렀어도 더 큰 분노를 불러일으키곤 한다. 그래서 더 심각한 잘못을 저지른, 심지어는 범죄에 가담한 남자 연예인들에 대한 반응은 상대적으로 싱거운 것이리라. 이들에 대한 반응은 보통 적나라한 공격보단 조롱에 가깝다. 건강한 마음가짐과 정신을 위해 SNS를 관두라거나 남들과 비교하지 말라는 말은 이제 너무 상투적이고 심지어는 공허하다. 그래도 한 번 자세히 들여다보면 좋을 것 같다. 직접 대면하지 않아도 되는 상대나 비교적 만만한 대상에게 감정을 쏟아내기 전에, 분노로 뭉뚱그린 자신의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를.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6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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