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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Mar 31. 2023

[나는 거인들을 죽인다] 지독하고 아련한 성장통

아름답지만은 않지만 소중한







돌아보면 십 대의 나와 성인이 된 지금의 나는 거의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학창 시절 주로 느꼈던 감각을 표현하자면 마치 태풍 한가운데, 지진으로 흔들리는 땅 위, 혹은 휘몰아치는 파도 위 떠다니는 나룻배에 있는 것만 같았다. 따지고 보면 청소년기 때보다 오히려 성인이 된 이후 더 다사다난했지만 둘 중 언제가 더 힘들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고민 없이 오직 학교와 집만 오가던 십 대 시절이라고 답하겠다.


당시의 내 마음속은 언제 와르르 무너지고 산산조각이 나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거울 속 내 모습은 점점 더 못나 보이기 시작하고, 반 친구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괜히 내 흉을 보는 것 같았다. 집에선 부모님이 언제 잔소리를 할지 몰라 신경을 곤두세웠으며, 남동생의 행동 하나하나가 거슬렸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딱히 예쁜 것도 아닌데, 성격마저 모난 것 같았다. 도대체 나는 왜 이럴까? 이것이 당시 나 스스로 나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다. 그렇다 보니 누가 좀만 뭐라고 해도 억울하고 눈물부터 터져 나왔다. 그 누구도 나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돌아보면 그 시기를 어떻게 거쳐왔나 싶다.


정작 이런저런 사건들은 성인이 된 이후부터 쏟아졌다. 외부 조건만 따지고 보면 학창 시절에는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다만 마음속은 언제나 전쟁통이었다. 아마 그때 내가 겪었던 이런 격정적인 심리 상태가 바로 흔한 말로 성장통일 것이다. 아직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근본적으로는 나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을 때. 이 중요한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느라 그다지도 흔들리고 부딪혔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때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이처럼 무던해질 수 있었던 것이리라.



거인은 증오예요. 모든 걸 다 빼앗아 가요.


가장으로서 생계를 꾸리는 언니, 까칠한 오빠, 그리고 남다른 비밀을 간직한 주인공인 막내 바버라. 바버라는 남몰래 거인들로부터 자신의 마을을 지키고 있다. 미끼 용액도 만들고, 함정도 설치하고, 심지어는 거인을 무찌를 수 있는 성스러운 무기를 담은 ‘코벨레스키’ 가방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닌다. 그는 거인을 무찔러야 한다는 사명감에 가족들은 물론 또래 친구들과도 겉돈다. 런던에서 온 소피아는 그런 바버라와 친해지고 싶으면서도 그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바버라는 심상치 않은 조짐을 느끼고, 지금까지의 그저 그런 거인들과는 다른 엄청난 위험이 다가오고 있음을 확신한다.


거인을 무찌를 계획을 세우는 바버라


언제 거인이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바버라는 안절부절못하며 거인 사냥 준비를 하지만 주변의 상황은 그의 뜻대로 흘러 거지 않는다. 테일러를 비롯한 불량 학생 무리의 괴롭힘은 점점 더 심해지고, 유일한 친구 소피아는 거인들이 진짜가 아니라고 호소하며, 상담 선생님인 몰레는 또래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바버라가 걱정이 되는지 자꾸만 그를 상담실로 불러낸다. 설상가상으로 ‘코벨레스키’ 가방은 신성한 빛을 잃는다. 그리고 곧, 바버라의 마을에는 드물게도 엄청난 태풍이 몰려오고, 그는 마침내 바다를 가르고 나타난 가장 최악의 거인 타이탄과 마주하게 된다.


버버라와 소피아 / 상담 선생님 몰레



구르는 낙엽짓다가 또 눈물짓다가


십 대 중후반 시기에는 왠지 같은 일도 더 크게 느껴졌던 것 같다. 친구들과 나눈 시답잖은 농담 하나에도 몇 분 동안 숨도 못 쉴 정도로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부모님이 무심결에 건넨 한 마디에 몇 시간 동안 방에 틀어박혀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기력이 없거나 감흥이 덜 해져 즐거움도 서러움도 분출하는 데 한계가 있는 성인들과는 다르다. 청소년기는 이보다 더 어린 유아기 때와 마찬가지로 스펀지에 가까운 뭐든 흡수할 수 있는 상태이기는 하지만, 마냥 백지상태 또한 아니다. 덕분에 이때쯤 본격적으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자각과 정립이 이루어지고, 본인만의 세계가 강해지며 그만큼 또 혼란을 느낀다. 그래서 청소년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부르는 것이리라. 자매품으로는 잘 알려진 '중2병'이 있다.


영화 ‘나는 거인들을 죽인다’의 스토리 상에서 정말 거인이 존재하는지, 아니면 단순히 바버라의 상상인지는 나로선 확언하기 힘들다. 아마 누군가는 고민 없이 그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상상 속 무언가라고 결론 내릴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영화 속 바버라가 그 누구보다 절박했고 진지했다는 점에서 거인이 그저 가짜라고 단정 짓고 싶지 않다. 바버라에게는 그 거인이 분명 진짜처럼, 그리고 무엇보다 거대하게 느껴졌을 테니까. 다만 영화 속 거인이 실제이든 아니든 무언가를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거인은 다름 아닌 그가 지닌 가장 큰 두려움, 즉 엄마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상징한다. 극 중 바버라가 감당해야 하는, 다가오는 엄마의 죽음은 나이와 사랑의 크기와 무관하게 감당하기 버거운 일이다. 그런데다 바버라는 고작 십 대 청소년이고, 그를 둘러싼 상황들 마저 마냥 수월하진 않다.


'나는 거인을 죽인다'의 한 장면


영화 속 바버라는 말한다.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걸 두려워한다고. 여기서 말하는 이해받지 못하는 대상은 당연히 그 자신이다. 이런 상황은 사교적이지 않고 또래 친구들과는 다른 것에 몰입하는 바버라의 타고난 기질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남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며, 어쩐지 혼자 외따로 떨어진 섬 같은 기분은 그 혼자만의 감각은 아니다. 학교 친구들은 왜 나를 별종 취급을 하는지, 왜 언니에게조차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는지, 유일한 친구인 소피아와는 왜 자꾸 갈등만 생기는지, 친절한 마음으로 다가와 주는 몰레 선생님은 왜 이리 미운지. 바버라는 자신의 마음 같지 않은 다른 사람들은 물론,  스스로의 내면조차 이해할 수 없다. 그는 이처럼 어머니와의 이별을 준비하는 동안에, 여느 십 대와 마찬가지로 자아 탐색을 위한 모험을 하고 있다.


나만 그런 걸까? 바버라가 겪고 있는, 그리고 내가 겪었던 이러한 과정들이 내 인생의 그 어느 시기보다도 지난하고 버거웠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타인은 물론 나조차도 나를 제대로 알지 못하던 시절,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도 외로웠고 막연한 기대와 불안에 마음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가 금세 풍선에 바람 빠지듯 축 처졌던 그때. 과연 두 번 그 시절보다 격렬한 시간이 앞으로 또 찾아올지 미지수다. 설령 다시 한번 이에 못지않은 격동기가 찾아온다 한들, 모든 게 새롭고 낯설었던 그 시절과는 같지 않을 것이다. 더 많은 시간과 더 어린 나이를 누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때로는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다. 분명 가장 가능성 많고 제일 반짝반짝할 시기이긴 하지만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았으니까. 그래도 그만큼 또 소중하고 그 어느 때보다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음에 분명하다. 그런 만큼 딱 한 번이면 족하리라.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15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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