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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Apr 14. 2023

[멘]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

Not all men, but…







초등학교 생활에 대한 기억 중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 몇몇 장면들이 있다. 어머니가 사정사정해서 나에게는 거의 연례행사 복장과도 같았던 원피스를 입고 등교한 날이었다. 그날은 학급 전체가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러다 한 남학생이 나의 치마를 들췄다. 나는 놀라고 분해 곧장 담임 선생님께 그 남학생이 한 짓을 고해바쳤다. 그러자 선생님은 진지한 기색이라고는 없이, 그저 조금 친절한 미소와 함께 말씀하셨다. 그 남학생이 나를 좋아해서 그런 것이라고. 선생님의 대답을 듣고 나의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가득해졌다. 그 남학생이 나를 좋아한다는 느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좋아하는 사람한테 그런 불쾌한 짓을 한다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고. 결국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와 같은 상황은 비단 나겪은 것은 아니리라.


친근한 마음에 던진 농담 혹은 조금 짓궂은 장난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납득하기 힘든 것은 이러한 것들이다. 나의 경우처럼 치마를 들춘다거나, 괜히 한 번 툭 치거나 발을 걸고, 물건을 빼앗아 도망치는 일. 남학생들이 축구를 한답시고 운동장을 다 차지한 상황에서 여학생들끼리 구석에서 조용히 고무줄놀이를 하는데 굳이 와서 줄을 끊거나 방해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교복을 입던 시기부턴 괜히 등뒤로 다가와 속옷 끈을 건드리는 남학생들도 제법 많았다. 알고 보니 이런 을 한 남학생이 상대 여학생을 좋아한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래놓고 마음을 몰라 주면 장난을 가장한 괴롭힘의 강도는 더욱 심해졌다. 그나마 성인이 된 이후부턴 이처럼 유치한 방식은 잘 볼 수 없게 됐다. 그러나 한 남성이 ‘네가 좋아서’라든가 ‘네가 너무 예뻐서’ 같은 이유로 한 여성에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해놓고, 왜 내 마음을 몰라 주느냐며 원망하는 경우는 여전히 드물지 않다.



여성의 타자화, 그리


차를 몰고 혼자 어딘가로 떠나는 하퍼. 오랜 시간 차를 몰고 이동한 끝에 그는 한 근사한 시골 저택에 도착한다. 고풍스럽고 아늑한 택에 마음을 빼앗긴 것도 잠시. 그곳의 주인 제프리가 하퍼를 말로위 부인라고 부르며 남편은 어디 있느냐고 묻자 는 당황한다. 하퍼는 그냥 이름으로 불러달라며 남편에 대해서는 얼버무리지만, 제프리의 사적이고 불편한 질문들은 계속 이어진다. 마침내 제프리를 돌려보낸 하퍼는 얼마 전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 기억 속 하퍼는 자신의 인생을 살고 싶다며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고, 남편은 이혼은 결코 안 된다며 자꾸 이러면 자살을 하겠다며 협박한다.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는 하퍼


마침내 제프리에게서 벗어난 하퍼는 저택 근처 숲을 산책하다 더는 사용하지 않는 철로 하나를 발견하고, 그곳을 향해 조심스레 자신의 이름을 외쳐 본다. 왠지 기분이 좋아진 하퍼는 좀 더 안으로 들어가 마치 화음을 맞추듯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부른다. 그러다 하퍼는 맞은편 입구에서 한 남자의 실루엣을 발견하고, 그가 갑자기 자신을 향해 뛰어오자 서둘러 발걸음을 돌린다. 간신히 저택 근처에 도착한 하퍼는 한숨을 돌린 후 멋진 경관을 사진에 담지만, 이내 카메라에 들어온 나체의 남자를 발견하고, 그가 다름 아닌 철로에서 목격한 남성임을 깨닫는다. 저택 안서조차 하퍼는 마음이 편치 않다. 결국 자살한, 게다가 끔찍하고 기괴한 모습으로 죽은 남편의 모습이 머릿속에 자꾸만 떠오르기 때문이다.  사이 나체의 성은 저택의 정원까지 찾아오기에 이른다.


터널 맞은편 입구에서 누군가를 목격한 하퍼


참으로 빈약한 핑계, 사


영화 ‘멘’을 일차원적으로 정의하자면 ‘82년생 김지영’의 매운맛 버전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만 ‘82년생 김지영’에서는 구조적, 제도적 차별로 인한 개인의 고충을 그렸다면, ‘멘’에서는 남성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압박과 불안, 더 나아가 분노를 은유하고 있다. 영화에서 특히 인상적인 설정은 하퍼의 남편 외에 등장하는 모든 남성 캐릭터를 한 배우가 연기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한 배우가 다른 직업, 연령대와 성격 등을 표현한 때문인지, ‘모든 남자가 그런 건 아니야’라는 반박이 오히려 맥을 못 추는 느낌이다. 로리 키니어가 훌륭하게 표현해 낸 다수의 남성 캐릭터들은 일상에서 종종 접해 봤음직한 느낌을 자아낸다.


아직 연애 경험이 별로 없던 순진했던 시절, 그 당시 내가 인식하던 나의 몸은 마치 고양이 앞에 매달린 생선과도 같았다. 조금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그냥 가만히 있는데도 웬일인지 상대 남성은 알아서 자극을 받는 듯 느껴졌다. 이는 내가 유달리 예쁘다거나, 성적 매력이 넘쳐서는 결코 아니다. (이런 해명은 내키지 않지만) 불편한 옷을 워낙 싫어해 노출이 심한 옷 또한 즐기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렇다고 나의 남자 친구들이 나를 깊이 사랑하고 푹 빠져서 그랬던 것 또한 아니다. 그들은 굳이 내가 아니라 다른 여자가 연인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눈앞에 있었어도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과거의 나는 이 모든 것들이 그저 남자는 성욕이 넘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가부장제가 여성을 통제하기 위해 그들의 신체 부위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성적 함의를 부여했는지는 미처 깨닫지 못한 채. 결국 나의 행동이나 나라는 사람 자체보다, 내가 지닌 (그리고 모든 여성이 공유한) 여성임을 나타내는 일종의 기호들만이 중요했을 뿐이다. 그리고 남자 친구들이 그처럼 본인의 욕구에 어쩔 줄 몰라하는 상황에서, 나의 입장이나 기분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영화 속 하퍼


자신이 준비하던 공부가 잘 되지 않자 스트레스가 심해져 시도 때도 없이 내게 전화해 울분을 쏟아내던 남자 친구가 있었다. 결국 참다못한 내가 그만 하라고 얘기하자, 그는 말했다. 나 아니면 누구한테 이런 말을 하겠느냐고. 나 때문은 아니었으나 그는 툭하면 죽고 싶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나를 괴롭히고자 한 말과 행동들은 아닐 것이다. 나에 대한 그의 마음을 의심하는 것도 아니다. 영화 특성상 조금 극단적인 설정 이긴 하지만, 하퍼의 남편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어떤 이유 인가로 하퍼를 지치게 만들었고, 폭력까지 휘둘렀지만 분명 그를 사랑했을 것이다. 게다가 남편은 영화의 말미에 직접적으로 고백한다. 자신이 바랐던 건 하퍼의 사랑이라고. 그러나 사랑 역시 남편의 언행들을 정당화해주진 못한다. 많은 여성들이 본인의 기억들과 얼마간 연관 지을 수 있을 법한 하퍼의 불행 앞에 모든 남자가 그렇지 않다(Not all men)는 반박은 힘을 잃는다. 결국은 항상 남자에 의한 것들이니까(But always men).






사진 출처 :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57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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