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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Apr 28. 2023

[아델라인 : 멈춰진 시간] If I were her

영원은 낭만적인가






뱀파이어 로맨스 판타지 작품인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책과 영화 모두 큰 흥행을 거두었다.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어린 나이 덕에 유치하다는 생각도 못 하고 푹 빠져서 봤던 기억이 난다. 해당 시리즈의 매력은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첫 째, 당연히 비주얼이다. 특히나 시리즈의 첫 번째 편인 ‘트와일라잇’은 특유의 신비롭고도 서늘한 연출 덕분에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후속편들부터는 감독이 바뀌는 바람에 그 특유의 분위기 살지 않아 아쉬웠다. 배우들의 외모 또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벨라 역의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인형보다는 조각 같은 느낌에 가까운 아름다운 외모는 그땐 거의 충격적이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당시 에드워드 역의 로버트 패티슨 역시 환상 속 매혹적인 뱀파이어로서 손색이 없었다.


두 번째 매력은 바로 뱀파이어만이 누릴 수 있는 영생과 영원한 젊음이다. 영화 설정 상 뱀파이어들은 특정 방식으로 살해당하지 않는 한 영원히 살 수 있다. 게다가 그들은 뱀파이어가 된 시점부터 노화를 겪지 않는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영화 속에는 나의 할머니 뻘은 고사하고 부모님 또래의 뱀파이어조차 없었다. 아마 늙지 않는 뱀파이어의 특성을 강조하기 위한, 특히나 영 어덜트를 타깃으로 한 작품으로서 필요한 설정이었으리라. 이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벨라가 부럽기도 했다. 결코 늙거나 죽지 않고, 멋진 뱀파이어 동반자와 영원히 사랑하며 산다니! 심지어 뱀파이어는 한 번 서로에게 각인되면 영원히 마음이 변치 않는다는 설정까지 있었다.


그러다 벨라와 에드워드, 그리고 또 다른 주인공인 제이콥이 아주 그냥 난리 부르스를 떠는구나 생각하기 시작한 건, 전 시리즈를 다 보고 난 이후였다. 그로부터 또 시간이 흘렀으니, 영화 속 설정들에 대해서도 관점이 제법 바뀌었다. 한때는 영원히 늙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게 낭만적이라고 믿었다. 무수히 쏟아지는 안티 에이징 제품들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노화를 두려워하는지 말해 준다. 미래가 영원히 허락된다는 건 언제든 새롭게 시작하고 무엇이든 마음껏 도전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혼자서만 영원히 지속되는 시간 동안 무수한 이별 또한 감당해야 한다. 당장 트와일라잇의 벨라 또한 고작 열아홉의 나이에 아버지와 생이별을 하지 않던가.



• 같이 늙어갈 미래가 없는 사랑은 아픔일 뿐이야


1908년 생인 스물아홉 살의 아델라인은 부모님에게 맡겨둔 딸을 데리러 비 오는 밤 길을 운전하던 도중 차가 미끄러져 강물에 빠지는 사고를 당한다. 그대로 숨이 멎으려는 순간 그의 차에 번개가 내리친다. 덕분에 2035년에야 밝혀질 전자 압축 원리가 아델라인의 DNA에 적용되고, 그날 이후부터 시간의 흐름은 그를 비켜간다. 마흔다섯 살이 될 때까지 아델라인은 그저 건강한 식습관과 운동 때문에 노화가 늦는 것뿐이라고 믿는다.



새해 전야 파티에서 엘리스를 만나게 된 아델라인


그러다 FBI가 기이할 정도로 나이에 비해 어려 보이는 아델라인을 찾아와 실험대상이 될 위기에 처하고, 다행히 달아난 그는 자신과 딸의 안전을 위해 이후 10년마다 신분과 거주지를 바꾸며 지낸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나고 제니퍼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던 어느 날, 아델라인은 친구의 초대로 참석한 새해 전야 파티에서 근사한 사업가 엘리스와 만난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강렬히 이끌리지만, 아델라인은 자신의 처지 때문에 엘리스를 받아들일 수 없어 그를 밀어낸다. 같이 늙어갈 미래가 없는 사랑은 아픔일 뿐이기에.


아델라인이 한때 사랑했던 남자 윌리엄


그러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다시 사랑을 시작해 보라는 딸의 설득에 아델라인은 결국 엘리스와 인연을 이어나가기로 결심한다. 마침내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이후 엘리스는 곧 있을 자신의 부모님의 결혼 40주년 파티에 아델라인을 초대한다. 들뜬 마음으로 엘리스의 부모님을 찾아간 . 그곳에서 아델라인은 엘리스의 아버지이자, 과거 유일하게 규칙을 깨고 사랑했던 남자 윌리엄과 재회하게 된다.



• 낭만이라기엔 잔인한


영화 속 설정이 제법 강렬했는지 영화를 감상한 바로 그날 밤 아델라인에 빙의한 꿈을 꾸었다. 안타깝게도 꿈을 꾸었다 하면 누군가에게 쫓기거나 억울한 상황에 처하는 것이 대부분이기에 꿈속에서 아델라인이 된 나는 그의 인생에서 낭만적인 순간은 전혀 즐기지 못한 채 누군가에게 정체를 들킬 위기에 처해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영화 ‘아델라인 : 멈춰진 시간’은 내게 상상할 거리를 많이 안겨주었다.


아델라인이 자신이 남들과 무언가 다르다고 느낀 시기는 마흔다섯 살 때부터다. 그나마도 타인에 의해서. 미디어 속 연예인들의 비현실적인 외모에 익숙해진 나 역시, 아델라인과 같은 상황이었어도 사십 대 중반까지는 내가 운이 좋나 보다 생각하며 넘길 것 같다. 그러다 점점 더 오십에 가까운 나이가 되어가고, 그제야 단순히 동안이라는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상태에 의문을 품기 시작하리라. 아마 한국에 사는 내가 FBI에 잡혀갈 일은 없을 듯 하지만, 요즘처럼 SNS가 발달한 세상에선 누가 몰래 내 사진을 찍어다 공유할 수도 있으니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다.


과거와 지금의 딸 플레밍


유난히 늦은 노화, 남 부럽지 않은 체력과 건강, 그리고 언제나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긍정적인 성격. 이런 것들은 분명 축복이라고 부를 만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모두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긴 상태에서 나 혼자만 특정 시간대에 갇힌 듯, 겉모습이 변하지도 남은 시간이 줄어줄지도 않는 것은 마냥 유쾌한 일은 아닐 것이다. 늙지 않는 외모로 매번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고, 무한한 시간을 믿고 언제든 새롭게 시작하거나 배움을 지속하는 일도 어느 순간부터는 무의미해지지 않을까. 우리가 열정을 가지고 하는 모든 것들은 오직 제한된 시간 동안만,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나 아쉬움이 뒤따르기에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델라인 : 멈춰진 시간'의 한 장면


가장 두려운 일은 역시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만 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내가 더 오래 살아서 아끼는 사람들을 앞세우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앞으로 얼마나 더 긴 고독의 시간을 견뎌야 할지 장담할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아델라인이 애써 새로운 인연을 맺지 않으려 했던 것일 테다. 자신보다 딸이 먼저 세상을 떠날 거라는 사실에 이미 충분히 가슴이 아팠을 테니까.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랑하고 평범하게 늙어가다 자연스럽게 이별할 수 있기를. 그것이 시간이 멈춰 버린 아델라인이 간절히 바랐을 한 가지가 아니었을까. 나 역시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평범하게 나이 들어가고 싶다. 어쩌면 영원이란 아름답고 낭만적이기보다는 잔인한 일일지 모르겠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9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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