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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Mar 03. 2023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진정한 현실 공포

스마트폰이라는 작은 세상, 그 안에 갇히다







작년 여름쯤 핸드폰을 잃어버린 적이 있다. 그날 나와 마찬 가지로 마블 팬인 친구를 만나 ‘토르 - 러브 앤 썬더’를 관람했더랬다. 같은 덕후끼리 만났으니 감상 후 대화 삼매경에 빠졌음은 물론이다. 게다가 작년 초부터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음식인 포케까지 배불리 먹었다. 그래서 너무 즐거운 나머지 내 손안에 있어야 할 무언가가 들려있지 않다는 사실을 곧장 알아채지 못했다. 핸드폰에 내장된 카드로 교통카드를 찍는 나는 친구와 지하철 역으로 향하던 길에서야 비로소 내가 핸드폰을 두고 왔음을 깨달았다. 고맙게도 아직 함께 있던 친구는 나 대신 내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고 마침내 되찾을 때까지 함께 있어 주었다. 마찬가지로 다행이었던 점은 바쁜 와중에도 매장 직원이 내 핸드폰을 발견해 보관 중이었다는 사실이다. 덕분에 분실했다고 말하기도 민망한 짧은 시간 안에 내 소중한 스마트폰을 되찾을 수 있었다.


비록 나와 스마트폰이 생이별한 시간은 고작 20여 분이기는 했지만, 당시의 당혹감은 꽤 강렬했다. 한 손에 쥘 수 있는 작은 물건일 뿐이지만 그 안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담겼다. 당장 카드를 들고 다니지 않는 나로서는 대중교통이나 그 외 결제 기능을 위해 핸드폰이 반드시 필요하다. 게다가 온갖 사이트의 아이디와 비밀번호 역시 핸드폰 안에 기록되어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가입한 계정들이 한둘이 아니고, 이를 다 기억할 수 없기에 메모장 어플에 적어 두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몇몇 계정은 사이트에 자동 저장이 되어 있다. 카톡과 사진첩도 빼놓을 수 없다. 그나마 SNS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다행을 따지기 전에  아예 분실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리라. 비록 잠깐일지라도 이처럼 나와 관련한 모든 중요한 정보가 저장된 스마트폰을 잃어버렸으니 놀랄 수밖에 없다.


나에 대한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스마트폰이 눈앞에서 사라진다는 상황만도 충분히 악몽 같지만 더 두려운 일도 가능하다. 가볍게는 카톡 등 메신저 목록에 있는 친구들에게 핸드폰의 주인인 척 짓궂은 장난을 칠 수 있다. 은행이나 주식 어플 등에 접근할 경우 그동안 눈을 질끈 감고 인내해 쌓아 온 전재산이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 갤러리에 저장된 사진들과 영상을 빼돌려 딥페이크 등 각종 디지털 성범죄에 이용될 가능성도 있다. 혹은 스파이웨어 등 악성 어플을 설치해 핸드폰의 주인을 실시간으로 감시할 할지 모른다.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이 작은 물건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끔찍한 일들이 가능한 것인지 한편으론 놀랍기까지 하다. 그리고 이러한 상상들보다 더 무서운 가정을 담은 영화가 공개 됐다. 바로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인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이다.



• 이것만 으면 다 알 수 있어


여느 현대인과 다를 바 없이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을 줄 모르는 평범한 직장인 나미. 그런 그는 금요일을 맞이해 친구들과 진탕 술을 마시다 막차를 타고 집에 돌아가던 중 깜빡 잠이 들어 그만 핸드폰을 떨어뜨린 채 그대로 버스에서 내린다. 다음 날 나미는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우왕좌왕하지만 다행히 핸드폰을 주운 여성과 연락이 닿고, 두 사람은 나미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는다. 그런데 약속 시간이 다가와 카페로 연락해 온 상대방은 오는 길에 핸드폰을 떨어뜨려 액정이 깨지는 바람에 수리를 맡겼으니 수리점에서 직접 핸드폰을 찾아가라고 알려준다.


핸드폰을 잃어 버린 나미 / 수리점 직원인 척 하는 준영


나미는 어쩔 수 없이 수리점으로 찾아가고, 빨리 핸드폰을 되찾고 싶은 마음에 직원이 내민 수리 동의서에 별생각 없이 잠금 화면 비밀번호를 비롯한 필요한 모든 정보를 적어 낸다. 하지만 핸드폰을 주운 여자와 수리점의 남직원은 사실 동일 인물로, 그는 다름 아닌 연쇄살인범 준영이다. 준영은 그동안 나미처럼 스마트폰을 떨어뜨린 사람들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질러 왔다. 마침내 비밀 번호를 획득한 준영은 스마트폰에 담긴 모든 정보에 접근하고, 나미를 살해하기 위한 치밀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나미를 고립시키려는 준영


준영은 나미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사이버 보안 회사의 직원으로서 접근함과 동시에, 나미를 수월하게 제거할 요량으로 그의 아버지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과 나미의 사이를 이간질한다. 일상이 완전히 망가진 다음에야 준영을 의심하게 된 나미는 뒤늦게 자신이 핸드폰을 찾았던 수리점을 다시 찾아 신고하기에 이른다. 마침 최근의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이 다름 아닌 자신의 아들 준영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던 강력계 형사 지만도 수리점을 찾아오고, 이곳에서 만난 둘은 준영을 체포하기 위해 그를 유인할 작전을 세운다.



• 스마트폰, 이것이 의 


연쇄 살인범이 나를 목표물 삼아 숨통을 조여 오는 상황은 잠깐 머릿속에 문자로만 입력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등골이 서늘해진다. 포식자에 쫓기는 초식 동물과 같은 이 가정은 무섭지 않은 게 이상하니 넘어가려 한다. 이 영화가 연쇄 살인마가 등장하는 여타 스릴러 공포물과 다른 점은 다름 아닌 스마트폰을 떨어뜨린 그 상황 자체에서 오는 공포이다. 영화 초반에 화면을 빠르게 지나가는, 주인공이 사용하는 각종 어플들과 기능들은 굳이 M과 Z세대(둘을 한데 묶는 건 옳지 못하다)가 아니라도 첨단 기술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익숙하다 못해 과장 조금 보태 공기와도 같다.


스마트폰은 이처럼 일상을 구성하는 어플들이 모두 모여 있어 나조차도 글을 쓰는 이 순간마저 수시로 찾게 된다. 일반 폴더폰을 사용했던 까마득한 과거에만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눈앞에 없으면 불안하진 않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현대인이 사용하는 스마트폰은 다르다. 이름처럼 똑똑한 스마트폰은 우리의 일상을 편리하고 즐겁게 만들어준다. 스마트폰 덕분에 크고 작은 업무들을 위해 귀찮게 서류를 들고 다닐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해당 기관에 방문할 필요조차 없어졌다. 본래 정체성은 전화기이긴 하지만 통화 공포증이 있는 사람들로서는 감사하게도 메시지를 통해 상대와 수시로 연락이 가능하다.


나미와 강력계 형사 지만


어디 이뿐이랴. 컴퓨터로써는 무안하게도 언제 어디서든 모바일 게임과 인터넷 검색이 가능하며, 영화관들로서는 못마땅하게도 스마트폰 덕에 영화 감상 역시 더는 시간 장소의 구애받지 않게 됐다. 이처럼 일상을 더욱 간편하고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스마트폰의 똑똑한 기능들 덕분일까. 어느 순간부터 별달리 쓸 일이 없음에도 핸드폰을 손에서 놓기 힘들어졌다. 가끔은 내가 스마트폰의 주인인지, 아니면 스마트폰이 나의 주인인지 헷갈릴 정도다. 어떤 면에선 비관적으로 비치는 상황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각 시대의 삶의 방식은 계속해서 변해왔다. 석기시대에는 각기 다른 용도의 돌을 손에 쥐고 다녔다면 이제 스마트폰이 그 역할을 대신한 셈이다.


또한 인류 사회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복잡해지기만 할 뿐, 아직까진 반대로 단순해지길 택한 적이 없다. 이처럼 다변화된 시대에 뇌의 용량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고, 바쁘게 사느라 즐기지 못하는 현대인을 좀 더 편하고 즉각적으로 재밌게 해 줄 수 있는 스마트폰이라는 물건이 있다는 사실은 어쩌면 다행일지 모른다. 또 한편으로는 이러한 기술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더 복잡해진지도 모르지만 선후 관계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스마트폰에 대한 우리의 의존도는 이미 엄청나다. 어차피 이젠 없이 못 사는 거, 중요한 건 누가 누구에게 속한 것인지 망각하지 않고 '스마트'하게 사용하는 것이리라. 이렇게 결론을 내리는 와중에도 좀처럼 스마트폰에서 손을 떼어 놓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 멋쩍기는 하지만.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49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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