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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Feb 17. 2023

[마더/안드로이드] 첨단과학 시대의 공포

재난 영화에서 다루어지는 것과 다루지 않는 것






지금은 귀찮아져서 쓰지 않지만 디스플레이가 박살이 나서 핸드폰을 바꾸기 전까지 ‘빅스비’ 기능을 사용했더랬다. 체감 상 또래 친구들은 '시리'가 상주하는 아이폰을 압도적으로 더 많이 쓰는 느낌이지만 꿋꿋하게 갤럭시만 사용 중이다. 처음에는 신기해서 이것저것 말을 붙여 봤다. 간단하게는 원하는 어플을 실행시켜 달라고 하고, 이것저것 검색을 시켜 보는 식으로. 그러다가 심심하면 나의 인생 목표를 얼버무린, 나를 찬양하는 멘트를 읊도록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다 질렸을 때쯤 빅스비의 성별과 언어를 바꾸어 사용해 보다가 고장 나기 직전까지는 외출 전 날씨를 물어보기 위해 주로 소환했다.


제법 오래전 언젠가는 ‘심심이’라는 것이 유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에는 단순한 질문을 던졌다가 점점 더 복잡한 대화를 시도하자 엉뚱한 대답이 날아왔다. 그러다 짓궂은 사용자들에게서 배운 엄하고 못된 말들 때문에 부적절한 답을 내놓는 지경까지 되었다. ‘빅스비’나 ‘심심이’의 공통점이라면 제법 놀라우면서도 결국 실망스러웠다는 점이다. 미국의 AI 연구 기관 오픈 AI가 공개한 챗GPT의 경우 한글이든 영문이든 질문만 입력하면 뭐든 해답을 찾아주고, 코딩을 할 줄 아는 것은 물론, 강의 리포트까지 대신 써줄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한다. 이세돌을 이겨 우리에게 놀라움을 안겨준 알파고 역시 알파코드로 진화했다.


심심이부터 빅스비, 혹은 시리까지는 그냥저냥 한 재미를 안겨준 수준이었을지 몰라도 인공 지능은 지금도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이 흔히 하는 상상이 있다. 이미 무수한 소설과 영화에서 그려진 설정, 바로 AI 로봇이 인간들을 말살하고 지구를 정복하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1980년대 첫 편이 개봉한 터미네이터를 비롯한 여타 비슷한 설정의 영화들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온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체력적으로 한계가 있고 노화를 피할 수 없는 육신과 제한적인 양의 정보만을 다룰 수 있는 인간과 달리 인공 지능의 경우 형태에 따라 연료만 공급이 된다면 에너지에 한계가 없고, 습득할 수 있는 지식 또한 무궁무진하다. 이러한 인공 지능들이 일정 수준에 도달해 유한한 인간의 우위에 서는 일이 아주 불가능하진 않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바로 그 이유들 중 하나가 아닐까.



• 이기적인 사랑이 인간을 모두 일 


대학생 커플인 조지아와 샘. 둘은 조지아가 임신한 사실을 두고 언쟁을 벌이다 일단 친구들의 파티로 향한다. 조지아가 친구에게 자신의 상황을 털어놓은 것도 잠시, ‘래스터 로보틱스’의 AI들의 프로그램이 업데이트되는가 싶더니, 갑자기 가정용 안드로이드들이 인간을 공격할 수 없게끔 되어 있는 기본 설정을 무시하고 사람들을 무차별 살해하기 시작한다. 결국 뱃속의 아이에 대한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9개월 간 도피 생활을 이어간 조지아와 샘. 그들은 안전한 한국으로 이동할 수 있는 배를 타기 위해 보스턴으로 이동하기 전, 한 군부대의 기지에 도착하지만 샘이 순찰대원과 싸움을 벌이는 바람에 둘은 쫓겨나고 만다.


피신 중인 조지아와 샘


다행히 빈 집을 발견한 둘. 조지아는 그곳에서 출산을 하고 생활을 이어가자고 제안하지만, 샘은 보스턴까지 가야 한다고 주장하며 근처에서 발견한 오토바이를 타고 가보자고 설득한다. 보스턴까지는 총 32km. 이동 수단이 확보되었기에 그렇게 멀지 않은 거리이지만 절반쯤 도착했을 때, 둘은 무인지대에 들어오기 무섭게 안드로이드들에게 들키고 만다. 샘은 조지아를 안전하게 대피시키고 안드로이드들을 따돌리려다 결국 붙잡히고, 조지아는 혼자 남아 방황하던 중 그는 운 좋게도 AI 프로그래머 출신인 아서를 만나 그의 트럭으로 피신한다.


위장 알고리즘 복장을 착용한 조지아


조지아를 구해준 아서는 안드로이드들의 심리를 잘 알기에 살아남았다며 얘기한다. 안드로이드들은 자기 보호 본능이 없어 자기 자신이나 남을 희생해서라도 목표를 이루려 하지만, 인간의 사랑은 이기적이기에 그 사랑이 인간을 모두 죽일 것이라고. 안드로이드의 공격으로 가족을 잃은 듯한 아서의 자조적인 말을 들은 조지아는 그럼에도 샘 없이 떠날 수 없다고 대답한다. 조지아는 운 좋게도 아서가 몇 년 전에 개발한 위장 알고리즘 복장 덕분에 무사히 샘을 구출하고, 출산 직전 아서의 트럭을 타고 마침내 보스턴에 도착한다. 이제 모든 게 잘 풀릴 거라고 믿었건만. 경찰에게 보스턴까지의 도착 경위를 설명하던 조지아는 무언가 잘못됐음을 깨닫는다.



 가시적인 여성의 신, 쉬쉬하는 여성의 


인공 지능 로봇의 공격으로부터 피신하며 고군분투하는 ‘마더/안드로이드’의 소름 끼치는 점은 터미네티어 시리즈의 로봇들처럼 겉으로는 인간과 전혀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완벽하게 인간과 동일한 모습을 하고서 철저하게 같은 외형의 인간에게 대답마다 끝에 ‘ma’am’이나 ‘sir’을 붙이는 모습이 기이했다. 비록 업데이트 전까지는 인간을 공격할 수 없다는 설정에 묶여 있긴 해도 안드로이드들이 (적어도 평균적으로는) 더욱 우월한 지능과 신체 능력을 지녔을 것이라는 사실이 더욱 묘한 기분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다 갑자기 돌변해 그들의 원형이지만 훨씬 더 나약하고 감정이라는 약점까지 지닌 인간들을 공격하는 모습은 꽤 공포스러웠다.


마찬가지로 평균적인 능력치의 인간이기 때문일까. 마냥 해피 엔딩도 새드 엔딩도 아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선 감독이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뭘까 의아해졌다. 얼마간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가 느껴지면서도, 부모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한 것 같긴 했다. 여담이지만 영화 속에서 등장한 ‘안전한’ 한국이 분명 남한일 텐데도, 보스턴 항구에서 대기 중이던 한국인들의 차림새가 북한 군인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은 반쯤 농담이지만 당혹스러웠다. 개인적으론 엔딩만큼이나 썩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영화였지만, 구글 페이지 상에선 ‘좋아요’보다 ‘싫어요’ 비율이 좀 더 높다는 점에서 쉽게 추천할 만한 영화는 아니다.


영화를 보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마더/안드로이드’는 인공 지능 로봇들이 인간 말살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SF 영화이자 재난 영화라고 볼 수 있다. ‘마더/안드로이드’처럼 인공 지능이든, 자연재해나 여타 크리처든 여러 원인으로 인한 재난 영화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영화들에서 종종 등장하는 것이 바로 주인공 조지아와 같은 임산부다. 물론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도 임산부는 당연히 존재할 수 있다. ‘콰이어트 플레이스’처럼 괴물이 설치고 다니는 데다 이미 아이가 둘이나 있는 조건 속에서 굳이 임신을 시도하는(?) 설정은 황당하기는 하지만, 조지아와 샘처럼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사랑을 나누다 임신이 되는 설정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그리고 의문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여성의 임신 이전에, 훨씬 더 흔하게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바로 여성의 생리이다. 그러나 웬일인지 영화 속 임신에 비해 생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마더/안드로이드'의 한 장면


국어사전에 ‘생리’를 검색하면 각각 첫 번째와 두 번째로 등장하는 의미는 이러하다. ‘생물체의 생물학적 기능과 작용 또는 그 원리’와 ‘생활하는 습성이나 본능’이 그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에야 ‘성숙한 여성의 자궁에서 주기적으로 출혈하는 생리 현상’이라는 의미가 뒤따른다. 그래도 세 번째에라도 등장했으니 사전에서의 여성의 생리가 차지하는 위치가 영화에서보다는 나은 셈이다. 영화 속 여성의 생리가 다루어지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이다. 여성 감독에 의해 의도적이고도 날 것 그대로 언급되거나, 영화 ‘캐리’와 같은 작품처럼 간접적이고도 비유적으로, 그리고 신비로운 무언가로 묘사되거나. 둘 중에선 후자의 방식이 훨씬 흔하다.


어떤 면에서 영화보다 현실 속 여성의 생리가 처지가 더욱 좋지 못하다. 마치 해리포터 시리즈의 마법사들이 볼드모트의 이름을 입에도 올리지 못한 것처럼, 직접적으로 생리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조차 꺼린다. 덕분에 다양한 대체어가 새겨났다. 당장 생각나는 것은 ‘마법’이나 ‘그날’ 정도다. 여성의 생리가 홍길동도 아니건만, 왜 생리를 생리라고 부르지 못하는 걸까. 똑같이 여성의 신체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임신과 생리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한 가지 있다. 바로 남성의 개입 여부이다. 여성이 임신하기 위해서는 남성이 직간접적으로 필요하지만 생리는 온전히 여성 혼자 겪어내는 과정이다. 이 사실이 남성들로 하여금 임신은 무작정 아름다운 것으로, 생리는 좋게 말하면 신비롭지만 한편으론 굳이 알고 싶지 않은 무언가로 인식하게 만든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생리대 광고들은 여성의 생리혈을 빨간색이 아닌 파란색으로 묘사했다. 어디선가 파란 피를 흘리는 인공 지능 로봇을 본 것도 같다. 남성들에게 있어 여성은 인공 지능 로봇만큼이나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존재인 걸까. 다행히 최근 들어 이러한 경향이 바뀌고 있다. 어디서 나오는 피든 피는 모두 빨간색에 가깝다. 또한 젊은 여성들은 이제 생리에 대해 쉬쉬하는 데 의문을 갖는 것은 물론, ‘월경’이나 ‘정혈’ 같은 그들이 겪는 현상을 좀 더 정확히 표현해 줄 대체어도 찾아냈다. 나 또한 생리라는 단어가 어딘지 아쉬운 감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별개로, 여성들이 매 달 경험하는 그 현상은 몸의 주인마저도 어쩌지 못하는 내부 장기에서 알아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점에서 생리 현상이기는 한 것 같다. 적어도 ‘마법’이니 ‘그날’이니 하는 민망함을 감추려는 단어들보다는 훨씬 낫다. (만약 여성의 생리가 마법이라면, 이에 수반되는 고통의 정도를 감안했을 때 저주를 동반한 흑마법이라고 하겠다.)


여성의 생리에 대해 쉬쉬하지 않고 그저 일상적이고 당연한 무언가로 인식하기 위해선 여성의 몸을 그저 사람의 몸으로, 더 나아가 여성을 그냥 사람으로 보는 것부터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언젠가는 여성의 생리가 홍길동이나 볼드모트가 아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길 바라본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55754

IMDB : https://m.imdb.com/title/tt13029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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