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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Feb 03. 2023

[블랙 팬서 : 와칸다 포에버] 흑인, 그리고 여성

그가 아니라면  누가?






요즘 마블 시리즈 작품들에 대한 평이 엇갈리고 있지만 나는 여전한 팬이다. 여성 히어로들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야 모두 사랑해 마지않으니 제외하고 남성 히어로가 주인공인 영화 중에서 얘기해 보자면 ‘닥터 스트레인지’와 ‘블랙 팬서’를 가장 좋아한다. 닥터 스트레인지로 말할 것 같으면 다른 대부분의 히어로들과 비교되지 않는 능력치와 지적이면서도 비꼬기가 수준 급인 화법 때문에 호감이다. ‘블랙 팬서’의 경우 반듯하기 그지없는 주인공 티찰라 자체보다는 영화 속 아프리카 느낌이 물씬 나는 분위기와 흥이 나는 음악, 그리고 티찰라와 동생 슈리 사이의 케미스트리가 가장 큰 이유이다.


2019년도에 마블의 첫 여성 히어로 솔로 무비인 ‘캡틴 마블’이 개봉하기 전, ‘블랙 팬서’가 상영할 당시 이미 온라인상에선 PC 주의 운운하며 조롱하던 반응들이 많이 보였다. 어쩌면 이러한 분위기 때문에 ‘블랙 팬서’라는 영화에 더 마음이 갔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안타깝게도 티찰라 역을 맡았던 채드윅 보스만이 세상을 떠났고, 이후 ‘블랙 팬서’ 시리즈가 어떻게 흘러갈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나 또한 팬으로서 걱정과 호기심 컸다. 그리고 4년 만에 후속편인 ‘블랙 팬서 : 와칸다 포에버’가 공개 됐다. 적어도 국내에서는 혹평이 좀 더 많아 보이며, 어느 정도 공감이 되는 내용들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반응들이 과연 오직 영화 자체에 대한 불호나 비판인지는 의문이다.



• 네가 누군지 보여


타노스와의 전투 이후 평화가 찾아오는 듯했지만, 와칸다는 블랙 팬서이자 국왕인 티찰라의 죽음으로 깊은 슬픔에 잠긴다. 특히나 과학자이자 동생인 슈리는 오빠를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라몬다 여왕은 블랙 팬서의 부재를 틈 타 비브라늄을 쟁탈하려는 강대국들을 상대로 강경하게 나가지만, 비브라늄을 손에 넣으려는 각국의 시도는 끊일 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바닷속에서 감지된 비브라늄을 캐내려던 미국의 함선이 공격을 당하고, 이를 두고 국제 사회는 와칸다를 의심한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라몬다 여왕과 슈리의 앞에 나타난 한 남자. 자신을 또 다른 비브라늄 소유국인 해저 왕국 탈로칸의 통치자 네이머라고 소개한 그는 국왕 모녀에게 비브라늄 탐색기를 개발한 미국인 과학자를 찾아내라며 협박에 가까운 요구를 한다.


티찰라의 장례를 치르는 슈리


원로들과의 회의 끝에 우선은 그 문제의 과학자를 찾아 나선 슈리와 오코예. 하지만 막상 발견한 과학자는 이제 고작 열아홉 살인 대학생 리리 윌리엄스이다. 차마 어린 리리를 네이머에게 보낼 수 없던 슈리는 결국 리리를 데리고 와칸다로 돌아가려 한다. 하지만 간신히 FBI까지 따돌린 그때, 어디선가 물 폭탄이 터지면서 탈로칸의 종족들이 등장한다. 오코예는 홀로 그들과 맞서 싸우지만, 결국 탈로칸의 사람들은 의식을 잃은 슈리와 리리를 데리고 떠나 버린다. 탈로칸에 도착한 슈리는 네이머에게 젊은 여성의 죽음을 좌시할 수 없다며 리리를 살려달라고 부탁한다. 그런 슈리에게 네이머는 자신의 탄생과 지금의 이름을 얻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슈리는 이를 통해 네이머가 지상 세계와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라몬다 여왕(왼쪽)과 네이머(오른쪽)



• 과연 공정한 평가일


나 개인적으로는 ‘블랙 팬서 : 와칸다 포에버’(이하 와칸다 포에버)가 무척 만족스러웠다. 역시나 잘 뽑힌 사운드 트랙에, 라몬다 여왕 역을 맡은 안젤라 버셋의 연기력, 아름답고 신보로운 연출이 돋보이던 탈로칸의 모습, 도라밀라제의 활약상, 그리고 블랙 팬서 시리즈의 새로운 주인공이 된 슈리의 서사까지 모두 감명 깊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취향과 가치관이 천차만별인 만큼 아무리 잘 만든 작품이라도 평가가 갈릴 수밖에 없다. 마블이 3년 넘게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는 이동진 평론가의 코멘트에도, 액션의 비중이 줄어들어 아쉽다거나 러닝타임이 너무 길어서 지루했다는 반응들도 모두 어느 정도 공감 가며, 이러한 평가들은 모두 공정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의아하게 느껴지는 비난과 혹평들도 많이 존재한다. 그중 내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내용은 ‘블랙만 있고 팬서는 없다’는 글이었다. 이 글쓴이는 심지어 안 그래도 배우들이 흑인인데 화면까지 어두워 얼굴이 잘 안 보였다는 말까지 곁들였다. 차라리 상욕을 박으며 별로라고 하는 것보다 더욱 감수성이 떨어져 보인다. 이 글은 마블의 최근 성적이나 평가와 관련 없이 첫 흑인 히어로인 ‘블랙 팬서’가 개봉했을 당시 보이던 부정적인 반응들과 맥락을 같이 한다. 이런 엇비슷한 비난 사이에서 못지않게 많이 보이는 내용이 있다. 왜 슈리가 차기 블랙 팬서냐고 의문을 표하는 반응들이 그것이다.


블랙 팬서로 각성하는 슈리


슈리가 오빠 티찰라의 뒤를 이으면 안 됐던 걸까? 세상을 떠난 킬몽거가 다시 돌아올 수도 없는 노릇이고, 블랙 팬서의 어머니인 라몬다 여왕이 이제야 나서는 것도 순서 상 안 맞지 않나 싶다. 그렇다고 왕족이 아닌 오코예가 이어받자니 애매하고, 음바쿠 역시 티찰라에게 호되게 당했던 터라 멋이 떨어진다. 그러다 결국 그 자리는 흑인자 여성인 슈리에게 돌아갔다. 요즘 해외 드라마나 영화들 중에서 젊은 흑인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이 제법 많이 보인다. 하다 못해 백인 주인공 다음으로 비중이 높은 캐릭터를 맡기도 한다. (와중에 그런 흑인 여성의 로맨스 상대는 대부분 백인 남성이라는 점은 헛웃음이 터지는 포인트다) 이러한 최근의 경향을 마블을 소유한 디즈니에서 놓칠 리 없다.


여러 가지 이유로 특정 캐릭터를 선호하지 않을 수 있다. 마블 팬이라고 자부하는 나조차도 모든 히어로가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누구는 너무 꽉 막힌 것 같아서, 또 누구는 감정적이어서, 그리고 또 누군가는 요란스럽다는 이유로 나올 때마다 흐린 눈을 한다. 그렇기에 새로운 블랙 팬서인 슈리에 대한 비선호 또한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다만 최근 마블에 여성 히어로의 비중이 늘었다면서 이러다 ‘걸벤져스’가 되겠다는 조롱이나, ‘인어 공주’ 실사화 작품과 ‘캡틴 마블’ 캐스팅에 대한 무지막지 했던 비난들이 겹쳐 보이면서 블랙 팬서로서의 슈리에 대한 불호가 과연 단순히 개인적인 불호일까 의심스럽다. 최근 온라인상에서 종종 보이기 시작한 ‘앰흑’ 즉 네 엄마는 흑인이라는 충격적이고도 천박한 유행어가 이러한 나의 의심을 더욱 부추긴다.


리리 윌리엄스 / 도라 밀라제 / 탈로칸 종족


누군가 본인들의 편협한 시야와 옹졸한 이유 때문에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비난하겠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곧 죽어도 특정 조건의 주인공은 싫다는데 억지로 떠먹여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나는 누군가가 뿔이 난 와중에 열렬히 응원하고 좋아할 예정이다. 백인 남성이라는 전형성에서 벗어난 다양한 모습의 히어로들과 그들이 활약할 작품들을.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33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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