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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May 26. 2023

[클로버필드 10번지] If I were her

그의 탈출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






장르를 불문하고 영화 내 나의 근원적인 공포를 야기하는 요소가 있다. 바로 주인공의 의지나 자유가 억압 혹은 박탈당한 상황이 그것이다. 예전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신체강탈자의 침입’이나 ‘스켈레톤 키’에서처럼 내 몸이 내 것이 아니게 되는 설정이 그중 한 가지라 하겠다. 아마 나의 육신은 빼앗겼으되, 나의 정신은 사라지지 않고 강탈자의 영혼과 공존하고 있다면 더욱 끔찍할 것 같다. 마치 영화 ‘겟 아웃’에서처럼 백인들에 의해 몸을 빼앗기고 의식은 잠재워졌다가 특정 트리거에 의해 잠깐잠깐 정신이 돌아오는 것처럼.


비슷한 이유로 나에게 공포를 유발하는 설정은 바로 주인공이 감금을 당했을 때이다. 이 경우 적어도 내 몸이 내 것이라는 데서 좀 더 사정이 낫긴 하다. 그러나 주인공의 탈출이 번번이 실패하다면 단순히 답답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단전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묵직한 불안과 초조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마저도 주인공이 끝끝내 눈앞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구체적인 내용에 따라 다르겠지만 영화가 끝난 이후 주인공에게 무슨 일이 벗어날지 상상하면서 한동안 찝찝해하리라. 이 때문에 영화 ‘디센트’도 미리 줄거리를 알아보고 감상을 피하는 중이다.


앞서 예시를 든 영화들의 경우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주인공들이 두 번 고민할 것도 없이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탈출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만약에 주인공이 자유를 박탈당한 환경이나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막상 벗어나더라도 자유다운 자유를 보장받지 못한다면 어떨까. 더 나아가 다른 요인으로 인해 오히려 더 위험해질지도 모른다면? 정확히 이와 같은 딜레마에 빠진 인물이 있다. 영화 ‘클로버필드 10번지’의 미셸이 그 주인공이다.



지하 커 속 VS 지상펼쳐지의


남자 친구와의 다툼 이후 그를 떠나 무작정 어딘가로 향하던 미셸은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한 뒤 낯선 공간에서 눈을 뜬다. 그런 미셸의 앞에 나타나 자신이 그를 구해주었다고 주장하는 하워드. 자신을 해치지 말아 달라고 제발 보내달라고 애원하는 미셸에게 하워드는 말한다. 이곳은 자신이 지은 벙커이며, 이미 지구는 외계인의 침공으로 공기가 오염되어 밖으로 나갔다간 목숨이 위험해질 거라고. 하워드는 미셸을 해치기는커녕 사고로 다친 그의 다리를 치료해 주고, 꼬박꼬박 끼니도 챙겨 준다. 하지만 미셸은 하워드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다. 마침내 미셸은 외부에 구원 요청을 하고자 통풍구를 통해 연기를 피우지만 금세 하워드에게 들킨다.


하워드(왼쪽)와 미셸(오른쪽)


하워드의 협박에 일단은 얌전히 지내던 미셸은 곧 벙커의 또 다른 거주자 에밋을 만나게 된다. 에밋은 바로 이 지하 벙커를 짓는 걸 도왔으며, 번쩍이는 빛을 보고 도망치던 중 하워드 덕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에밋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미셸은 하워드에 대한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더구나 천장에선 종종 자동차가 이동하는 듯한 소리까지 들려온다. 결국 미셸은 에밋을 설득해 하워드에게서 벙커 열쇠를 뺏어 밖으로 빠져나갈 계획을 세운다. 운이 좋게도 미셸의 작전은 성공하고 지상으로 통하는 문으로 달려든 순간, 그는 오염된 공기로 인해 죽어가는 여자와 마주친다.


하워드와 대치하는 미셸과 에밋


이 일로 미셸은 어느 정도 하워드를 믿기 시작하지만 그것도 잠시. 미셸은 그동안 하워드가 자신의 딸이라며 사진까지 보여준 메건에 대한 이야기가 모두 거짓임을 알게 된다. 하워드가 그 소녀를 살해했다고 확신한 미셸은 방호복까지 만들며 다시 한번 에밋과 벙커를 탈출할 계획을 세운다. 하워드와의 쫓고 쫓기는 추격 끝에 마침내 탈출에 성공한 미셸. 하워드의 경고와 달리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들을 발견한 미셸은 허탈함과 안도감에 눈물을 흘리며 방독면을 벗는다. 이제 모든 게 끝났다고 안심한 바로 그때, 미셸은 보고도 믿기 힘든 광경을 목격한다.



공포심을 이겨낸 자유의지


꽤 오래전 남동생으로부터 시리즈의 첫 편인 ‘클로버필드’를 강력 추천받았었다. 동생의 안목을 신뢰함에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감상을 미루다 결국 완전히 잊고 지냈다. 그러다 문득 긴장감이 짙은 작품을 보고 싶어 넷플릭스를 둘러보던 중 발견한 작품이 ‘클로버필드 10번지’였다. 제목을 확인하고는 그냥 ‘클로버필드’도 있던 것 같은데, 하면서 시리즈 순서를 검색하니 총 세 작품이 나왔다. 공개 순서대로 각각 ‘클로버필드’, ‘클로버필드 10번지’, ‘클로퍼필드 패러독스’이다. 모두 같은 괴수를 다루었으되 서로 연결되는 내용도 아니겠다, ‘버즈 오브 프레이’의 헌트리스 역할로 내 마음에 들어온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가 주연을 맡은 ‘클로버필드 10번지’부터 감상했다.


결국 이틀 동안 도장 깨기를 했고, 진작 동생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시리즈의 세 작품 모두 추천할 만 하지만 같은 외계 괴물이 등장하는 것 치고 모두 분위기가 다르다. 오리지널인 ‘클로버필드’가 좀 더 기발하고 박진감 넘치는 쪽이라면 ‘클로버필드 패러독스’는 SF 느낌이 물씬 나는 영화로 호불호는 강하게 갈릴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공포나 SF는 일종의 시즈닝일 뿐, 스릴러 장르에 가까운 ‘클로버필드 10번지’가 가장 취향에 가까웠다.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한 것도 한몫했겠지만 이 영화가 매력적으로 다가온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감상 내내 ‘내가 미셸이었다면?’ 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게 만들었다는 것.


끊임없이 탈출을 계획하는 미셸


눈앞의 강압적이고 낯선 남자는 신뢰가 가지 않고, 벙커 바깥 상황은 어떨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최악의 경우 납치 살인범일지도 모를 남자와 같은 공간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끔찍하지만, 지상에서는 외계인들이 인간을 공격하고 있다니. 상상만으로도 공포스러운 와중에 직접 눈으로 보지 못했으니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믿어야 좋을지 알 수 없다. 충분한 식량과 웬만한 시설이 갖추어진 지하 벙커에서 불안하지만 안전한 나날을 보내느냐, 아니면 위압적인 남자에게서 해방되어 정체 모를 위험과 맞서느냐. 그것이 미셸이 시종일관 겪었을 딜레마다. 영문 포스터의 문구 (Monsters come in many fomrs)가 이러한 그의 갈등을 대변한다. 지하에 있는 남자와 지상에 있는 미지의 존재 중 누가 진짜 괴물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치열한 고민 끝에 미셸은 결국 탈출을 선택한다.


미셸이 일련의 해프닝과 하워드의 지속적인 위협에도 불구하고 탈출을 감행한 데는 한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다름 아닌 자유의지. 바로 이것이 미셸의 탈출을 도운 원동력이다. 관점에 따라선 이러한 미셸의 선택이 미련하게 보일 수 있다. 간신히 위압적이고 괴팍한 인간 남자에게서 벗어났더니 기껏 대면한 것이 하필 외계인이라니. 1편을 먼저 감상한 덕에 반전을 미리 예상하고 있었다면 미셸의 결정이 더욱 딱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벙커에 남는 쪽이 외계인과 대면하는 것보단 살아남을 확률이 높 테니.


그러나 우리가 인생을 ‘산다’라고 얘기할 때는 단순히 목숨만 부지한 상태를 뜻하지는 않는다. 자유의지에 따라 필요한 선택을 하고, 좋든 나쁘든 이에 따른 결과를 받아들이고 감당하는 것, 이것이 한 사람이 살아가는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미셸은 삶다운 삶을 살고자 엄청난 위험을 무릅쓴 셈이다. 만약 내가 그와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외계인과 맞서 싸울 기지나 신체 능력 모두 없는 나로서는 상상만으로 마른침을 삼키고 싶어 지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 적어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으리라는 것.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72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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