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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Jun 09. 2023

[더 하우스] 집이란 무엇인가

열망에 조소로 답하다






온라인 국어사전에 ‘의식주’를 검색하면 ‘옷과 음식과 집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는 설명 뒤에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기본 요소’라는 추가 정의가 따라붙는다. 현시대의 옷부터 말할 것 같으면 차고 넘친다고 하겠다. 1년에 100억 점의 옷이 만들어지며, 80억 벌이 소비 된다고 한다. 환경 파괴에 지대한 공을 세우고 있는 패션 업계에 진심 어린 야유를 보내는 바이다. 음식으로 넘어가 보자. 정말 안타까운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한민국 사람 중 끼니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고생하는 비율은 그리 높지 않다. 다른 많은 국가들도 극심한 양극화에 시달리고는 있지만, 평균만 놓고 보자면 그 이전 시대에 비해 말 그대로 먹을 게 없어 못 먹는 경우는 많이 줄었다.


그렇다면 집은 어떠한가. 모르긴 몰라도 집이라는 말만 나와도 아랫에서부터 깊은 한숨이 올라오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인간의 기본 권리라는데, 왜 이 땅에 내 집 하나 없는 것인지. 왜 때마다 이사를 다니느라 고생해야 하고, 월세가 오를까 봐 걱정을 해야 하는 것인지. 주‘住’는 이제 더는 인간의 기본 권리가 아닌 있는 자들의 특권인 것일까. 덕분에 평생의 소원이 ‘내 집 마련’인 사람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얼마 전 ‘알라딘’의 지니처럼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정령이 등장하는 ‘3000년의 기다림’이라는 영화를 감상했다. 나라면 어떤 소원을 빌까 생각해 보았다. 나와 가족, 친구들이 죽을 때까지 건강하기, 5개 국어를 원어민 문학 교수만큼 구사하기, 전 세계 사람들이 높은 수준의 인권 의식과 도덕성 갖추기 같은 근사한 소원보다 앞서 떠오른 건 다름 아닌 평생 소유할 수 있는, 여러 의미에서 안전하고 만족스러운 나만의 집 갖기였다.



필요, 집착, 그리고 광기


1) 거짓의 속삭임 (And heard within, a lie is spun)

가난하지만 행복한 메이블네 네 식구. 하지만 오랜만에 방문한 친척들은 그들에게 온갖 모욕을 주고, 이에 분을 이기지 못한 메이블의 아버지 레이몬드는 밤늦게까지 술을 마신다. 술에 취해 숲을 방황하던 레이몬드는 한 낯선 남자와 마주치고, 홀린 듯 그의 마차에 오른다. 그리고 다음 날, 놀랍게도 네 식구는 레이몬드 아버지의 친구이자 명망 높은 건축가인 밴 슌비크의 도움으로 마을의 거대한 저택으로 이사하게 된다. 이에 기뻐한 것도 잠시, 하루아침에 1층으로 내려다는 계단이 없어지는 등 잔 기괴한 일들이 일어나고, 레이몬드는 벽난로에, 그리고 부인 페니는 재봉틀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안 그래도 옛 집이 그리웠던 메이블은 점점 더 불안에 빠지지만, 상황은 더욱더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한 후 기이한 일들을 겪기 시작하는 메이블의 가족들



2) 아무도 모르는 진실 (Then lost is truth that can’t be won)

은행의 독촉 전화에 시달리는 부동산 개발업자 생쥐. 그는 인부(혹은 서부鼠夫)를 부릴 돈도 없어 홀로 리모델링을 해 집을 매각하려 한다. 혼자서 고군분투하는 것만도 버거운데 어느 순간부턴 벌레가 쏟아져 나오고, 손님 접대용으로 주문한 고급 음료와 다과는 싸구려 음식으로 잘못 배송된다. 어떻게든 상황을 해결하려 고군분투하던 차에 찾아온 디데이. 여러 손님들이 찾아온 가운데 주인공은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애쓰지만 녹록지 않다. 결국 모든 손님이 떠나가고 주인공이 낙담을 하려는데, 어떤 부부 손님이 다가와 집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다. 덕분에 다시 희망이 생긴 것도 잠시, 뻔뻔한 이들 부부는 정작 집 계약은 안중에도 없이 마치 제 집인 양 눌러앉으려 든다.


고객들을 초대해 리모델링한 집을 선보이는 주인공, 그리고 수상한 부부 손님


3) 귀 기울이면 행복해요 (Listen again and seek the sun)

엄청난 홍수로 인해 주민들이 모두 떠났지만 로사(고양이)만은 여전히 자신의 집에 남아있다. 그런 그는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은, 행복한 추억이 깃든 저택을 성공적으로 수리해 새로운 세입자를 받겠다는 계획을 품고 있다. 그러자면 그나마 있는 두 세입자 젠과 일라이어스에게서 집세를 제때 받아야 하건만. 이들은 돈을 꼬박꼬박 내기는커녕 생선이나 다른 물건으로 때우기 일쑤이고, 흙탕물이 나오는 수도에 대해 불평하기 바쁘다. 그렇게 로사가 희망과 불안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동안, 젠의 친구 코스모스가 찾아온다. 얼핏 보기에도 돈이라곤 전혀 없고, 이상한 아우라만 풍기는 코스모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 로사. 이런 로사의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듯, 코스모스가 도착하기 무섭게 두 세입자는 로사의 집을 떠날 준비를 한다. 로사는 안개 낀 바깥은 위험하다고, 여길 떠나 더 좋은 집은 찾기 힘들 거라고 설득해 보지만, 오히려 그들은 말한다. 로사 역시 떠나야 한다고.


홍수로 물에 잠긴 집을 수리하려는 로사



욕망의 집합


썸네일과 포스터만 봐서는 조금 묘하긴 해도 전반적으로 귀여운 느낌을 자아내는 넷플릭스의 애니메이션 ‘더 하우스’는 착한 얼굴에 그렇지 못한 씁쓸한 여운과 메시지를 전달한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모두 집과 관련된 문제에 맞닥뜨린다. 정확히는 집에 대한 필요와 집착, 열망이 자아낸 문제라고 하겠다. 조금 더 깊이 파고들자면 이 영화에서 다루는 집의 개념은 단순히 주거 공간이 아닌 소유물이나 재산 또는 재화, 그리고 본인의 사회적 위치를 나타내 주는 대상으로서의 집이다. 놀랍지 않게도 세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그 방식은 각기 다르지만 그들이 집에 대해 기대했던 가치를 끝끝내 획득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러한 우화와도 같은 이야기를 통해 반성을 하거나, 새로운 마음가짐을 품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는 내가 작품 내 어떤 도덕적 메시지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나이가 든 탓일 수도 있고, 영화 속 공통된 욕망의 대상이 하필 집인 탓일 수도 있다.


영화 '더 하우스'의 장면들


 어쩌다 의식주 중에서도 집이 이렇게 문제가 된 걸까. 누군가는 몇 백억 대 건물을 척척 매입하는데 다른 한 편에서는 당장 나갈 월세에 부담을 느낀다. 미취학 아동 건물주가 있는가 하면 집주인이 계약 연장을 안 해줄까 봐 전전긍긍하는 세입자도 존재한다. 이런 양극화 문제도 모자라서 전세 사기까지 횡행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쯤 되면 조금 극단적으로 얘기해 없는 사람은 그냥 죽으란 얘기인가 싶어 진다. (그러나 집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출생률이 오를 것이라 보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더 하우스’의 등장인물들에게서 한 발자국 떨어진 채, 무신경한 상태로 그들의 바람이 한 줌 재가 되어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불가능하다. 나를 비롯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입장에선 주인공들의 욕망이 불순하긴커녕, 그들이 맞이한 결말이 되레 잔혹하게만 느껴진다. 어쩌다 이지경이 되었을까. 그나마 ‘귀 기울이면 행복해요’의 주인공 로사는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 적어도 그 정도의 희망만큼은 모두가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사진 출처 : IMDB

https://m.imdb.com/title/tt11703050/?ref_=tt_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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