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는 것은 중요하다. 외모지상주의는 비판해야 마땅하지만 때와 장소에 맞는 옷차림을 갖추고, 최소한의 깔끔함과 위생적으로 보이는 외형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외형을 갖추기 위해 꼭 고가의 시계를 차거나 명품백을 들어야 할까? 언젠가 개인적으로 쓰고 있던 소설 때문에 출판사의 담당자를 만난 적이 있었다. 때는 무더운 여름이었고,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옷들 중 가장 편한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에, 작은 핸드백을 들고나갔다. 면접 자리도 아니었고, 이미 그저 앞으로 서로 잘 부탁한다는 취지로 짧게 식사를 하러 나간 자리일 뿐이었기에 친구들을 만나러 나갈 때와 별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만난 담당자와, 어색한 티를 최대한 감추며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을 때였다. 그 순간 당당자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지더니 내 다리 위에 올려둔 가방으로 옮겨졌다. 내 기분 탓이었다고, 착각일 뿐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의 안경 너머 예리한 시선을 따라간 곳에는 분명 내 핸드백이 있었다. 유유상종이라고 했던가. 당장 친한 친구들 중에는 이런 식으로 남들이 무엇을 들고, 끌고, 착용하는지를 두고 평가하는 이가 없었기에 어떤 의미에서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상대방의 몸에 얹어진 것들로 판단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는 물론 온라인상에서는 수도 없이 접했다. 그리고 궁금해진다. 이러한 지표들로 과연 무엇을 파악할 수 있는지, 그렇게 파악한 정보들은 도대체 어디에 써먹으려는 것인지.
•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추악함
언제나 평화로운 마을 서버비콘. 그러던 어느 날 백인들로만 모여 살고 있는 이곳에 흑인인 메이어스 가족이 이사를 온다.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꾸리고 싶은 백인 주민들은 개선위원회를 소집하고, 탄원서도 제출하는 등 유일한 흑인 이웃에 대한 불만을 표시한다. 한편 부모님, 그리고 이모 매기와 함께 살고 있는 니키는 메이어스 부부의 아들인 앤디와 야구를 하며 친해진다.
가드너 / 로즈(왼쪽)와 매기(오른쪽)
흑인 가족들이 이사를 와 혼란을 야기했다는 사실 외에는 평범하게 흘러갈 뻔한 그날 밤. 니키 가족의 집에 2인 강도가 들고, 그날 강도들에 의해 클로로폼을 다량 흡입한 니키의 엄마 로즈는 결국 사망하고 만다. 장례식 이후 니키의 가족에게는 동정 어린 시선과 걱정 어린 인사말들이 쏟아지지만 니키로서는 의아하게도 아빠 가드너와 이모 매기는 아무렇지 않아 보인다. 실은 가드너와 매기가 보험금을 목적으로 로즈를 살해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것.
용의자를 확인하는 가드너와 매기 / 보험 조사관 로저
하지만 가드너는 사기극을 위해 강도 역할을 했던 일당들에게 돈을 제때 지급하지 않고, 두 일당은 가드너에게 본보기 삼아 매기와 니키를 죽이기로 마음먹는다. 한편 가드너가 출근한 사이 보험 조사원 로저가 방문하고, 메이어스 가족의 집 앞에서는백인 주민들의 폭동이 일어난다.
• 화려한 눈속임으로는 감출 수 없기에
앞서 나의 가방을 스캔했던 출판사 담당자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아마 상대방의 차나 백으로 그의 경제력 정도는 가늠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를 통해 옆에 둘 만한 사람과 굳이 애써서 친해질 필요가 없는 사람으로 나눌 목적이라면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이기에 존중하겠지만 공감이 가지는 않는다. 상대적으로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높은 이들의 갑질에 관한 일화나 기사는 이제 인터넷에 짧은 키워드만 넣어 검색해도 많이 접할 수 있다. 물론 부유한 사람들을 일반화할 수는 없다. 다만 경제력이란 이를 갖춘 본인이 누리는 즐거움일 뿐이지, 그 사람의 인격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물론 그런 사람들 옆에서 콩고물이라도 떨어지기를 기대하는것 또한 개인의 선택이자 자유이리라.
흑인 메이어스 가족의 집 앞에서 행패를 부리는 백인 주민들
그나마도 요즘에는 단순히 상대가 걸치고 즐기는 것들로 그들의 경제력을 추측하기도 힘들다. 온라인상에서 유명한 단어 중 ‘카푸어’라는 말이 있다. 자동차를 뜻하는 car와 가난함을 뜻하는 poor의 합성어로, 자동차의 구매 및 유지 비용의 부담으로 인해 나머지 생활이 어려운 사람을 뜻한다. 이외에도 스포츠 브랜드의 한정판 운동화를 수도 없이 수집하거나, 할부를 해서라도 무리하게 명품 시계나 백을 사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특히나 한국은 명품 소비 세계 1위 국가라고 하니, 가히 명품 사랑국답다. 어느 순간 나만 빼고 모두 부자가 된 건가 싶지만 그럴 리 없다.
니키와 앤디
영화 ‘서버비콘’의 주민들은 흑인인 메이어스 가족들이 이사를 오기 전까지는 고상하고 우아한 생활을 해왔으리라. 그러나 피부색이 다른 이웃이 등장하기 무섭게 그들은 여유롭고 행복해 보이는 가면을 벗어던지고 기꺼이 추악함을 드러낸다. 그저 위선일 뿐이었던 그들의 외형적 완벽함은 한 번 고삐가 풀리더니 마치 폭죽처럼 폭력과 욕망, 그리고 차별 의식 등을 걷잡을 수 없이 마구 폭발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합리적 판단이 아닌 남들을 의식해서 이루어진 소비와 그로 인해 획득한 화려함은 내면의 공허함을 감추기 위한 수단일지 모른다. 그렇기에 오직 소비로서 자기 자신을 표현하거나 혹은 남들을 평가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 화려한 눈속임 아래 감추어진 민낯이야 말로 그 사람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영화 ‘서버비콘’의 추한 백인 어른들의 끝은 별로 아름답지 못하다. 이웃들의 온갖 추태에도 불구하고 우아한 ‘태도’로 일관한 메이어스 가족과, 아직 순수한 니키만이 마침내 평화를 맞이할 수 있었다.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