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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May 17. 2024

[악마와의 토크쇼] 욕망이라는 이름의 불씨

물질만능주의라는 기름을 들이붓다






자매나 형제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하교를 하고 집에 와 보니 냉장고 속에 유혹적인 자태로 간식이 기다리고 있다. 장소는 꼭 냉장고가 아니어도 좋다. 부엌 서랍장 어딘가일 수도, 혈육의 방의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책상 위일 수도 있다. 그 간식은 당신과 눈이 마주친(?) 순간 유혹을 해댄다. 나에게 오라고, 어서 빨리 포장을 벗겨 나를 입안 가득 음미하라고. 어찌 이를 거부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당신은 그동안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이대로 간식의 유혹에 넘어간다면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를. 하지만 간식과 당신의 거리가 좁혀질수록 이런 이성의 영역은 힘을 못 쓰게 되며, 당신은 오로지 간식을 쟁취해 마침내 합 입 베어 문 순간 입안 가득 퍼질 즐거움에만 집착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혈육과의 싸움이라는, 머지않아 닥칠지 모르는 미래는 완전히 잊은 채 간식에 손을 뻗게 되는 것이다.


위의 예시는 사후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 대단한 일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어린 나이에는 당연히 큰 일처럼 여겨지겠지만 자매나 형제의 간식을 뺏어 먹고 말다툼을 좀 한다고 해서 인생이 뒤바뀔 일은 없다. 그러나 점점 나이를 먹고, 더 많은 경험을 하게 됨에 따라 혈육의 간식보다 훨씬 유혹적이고 그만큼 위험 부담과 파급력 역시 더 큰 일들을 마주 하게 된다. 가령 영화 ‘악마와의 토크쇼’에서 주인공 잭이 처한 상황처럼 말이다.



• 할로윈의 밤, 시청률 1위를 위하여


한때는 승승장구하던 심야 방송 '올빼미 쇼'의 진행자 잭 델로이. 그는 사랑하던 아내 매들린을 떠나보내고 한 달 후 방송에 복귀했으나 시청률은 계속 떨어지기만 한다. 그렇게 계약 만료를 앞두고 시청률 집계 주간이 다가온다. 마침 할로윈이겠다, 시청률 반등을 노린 잭은 특집 방송을 위해 영매 크리스투, 전직 마술사이자 초능력 사냥꾼 카마이클, 그리고 초심리학 전문가 미첼 박사와 그가 후견인으로서 돌보는 소녀 릴리를 초대한다. 릴리는 한때 악마를 숭배하는 종교 단체에서 지냈으며, 불행한 사고 이후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때의 사고 이후 악마에 빙의되기 시작했다.


'올빼미 쇼'의 진행자 잭 델로이


그렇게 시작된 생방송. 많은 팬들은 보유한 영매 크리스투는 자신만만하게 본인의 능력을 뽐내려 하지만, 어설픈 모습만을 연이어 보여준다. 그러다 광고 시간이 다가올 즈음 그는 돌연 '미니'라는 이름을 울부짖더니 숨을 헐떡이기 시작하고, 이에 잭은 미니는 다름 아닌 자신이 아내 매들린을 부르던 애칭이라고 밝힌다. 곧이어 크리스투는 피처럼 보이는 검은 물질을 입에서 쏟아내고, 결국 병원으로 이송되는 와중에 사망한다. 이후로도 어쩐지 불길한 현상들이 계속되지만, 잭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방송을 이어 간다.


잭과 할로윈 특집 방송의 게스트들


이어서 미첼 박사와 릴리의 순서. 잭은 시청률 폭발을 꾀하며 미첼에게 릴리 안에 잠든 악마를 소환해 달라고 부탁한다. 미첼 박사는 상황 통제가 힘든 생방송 도중에 그런 위험한 일은 할 수 없다며 거절하지만, 카마이클이 박사를 비난하기 시작하자, 보다 못한 잭과 릴 리가 박사를 설득한다. 결국 미첼 박사는 애원하는 둘을 거절하지 못하고 악마 소환을 위해 릴리와 마주 앉는다. 이제 정말 시청률 대박이라는 꿈이 실현되는 줄 알았건만. 박사의 지시에 릴리가 의식을 잃은 후 낯설고 기괴한 목소리가 들린 순간, 방송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 눈앞에서 매혹하는 욕망, 손을 뻗지 않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영화 ‘악마와의 토크쇼’에서 잭이 마주한 유혹과 갈등은 확실히 혈육의 간식을 뺏어 먹느냐 마느냐보다 스케일이 훨씬 크다. 게다가 공포라는 장르적 특성을 고려하면 영화의 끝이 파국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예상 가능하다. 이와 별개로 잭이 비극을 맞이하게 된 맥락은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 잭의 프로그램은 한창 잘 나가던 시절에도 만년 2위에 머물렀는데, 그나마도 아내의 사망 이후 복귀한 다음부터는 더 맥을 못 추고 있다. 온갖 자극적인 주제로 시청률 반등을 노렸으나 녹록지 않다. 그러다 계약 만료 시점과 시청률 집계 주간이 다가왔으니 그가 얼마나 절박했을지 감이 온다. 그런 상황에서 주변의 만류나 걱정 같은 게 귀에 들어올 리 없다.


누구나 잭처럼 욕망하는 대상이 있을 것이다. 특히나 우리가 살고 있는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그 욕망이란 무언가 선하다거나, 대의를 위한 것이거나, 영적인 무언가일 확률은 낮다. 지금과 같은 때에 우리에게 주입되는 욕망이란 결국 남들에게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외적인 요소들에 가깝다. 잭처럼 물질적인 성공과 명성을 원하든, 아름다운 외모를 꿈꾸든, 안락한 공간이나 서비스를 바라든, 결국 남의 시선에 얽매이거나 우리의 지갑을 열어야 하는 것들이다. 이러한 욕망을 품는 것은 단순히 개개인이 나약하거나 피상적이기 때문은 아니다. 인터넷에 접속하고 TV를 켜는 순간부터 우리는 특정 욕망을 지속적으로 주입받게 된다.


랄리에게서 악마를 소환 중인 미첼 박사


그런 의미에서 영화 ‘악마와의 토크쇼’에서 잭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이 맞이한 결말이 마냥 징벌적인 의미라고 보고 싶지는 않다. 혼란스러운 시대, 부와 유명세 같은 것들만이 등불처럼 선명하게 빛을 내는 상황에서 그들이 그밖에 무엇을 좇을 수 있었을까. 텔레비전이라는 매체가 본격적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한 70년대의 혼돈은 또 다른 매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난 21세기로 옮겨 놓아도 어색함이 없다. 그러는 동안 물질적이며 가시적인 것들에 대한 우리의 욕망은 한풀 꺾이기는커녕 더욱 깊고 세분화되었고, 그만큼 또 새로운 욕구들에 의해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현대인의 필수적인 요소랄 수 있는 우울과 공허, 그리고 망가져 가는 환경이 그 증거다.


영화 속에서 그 어떤 위험 부담도 마다하지 않은 채, 오직 시청률에 집착하던 잭이 마침내 비극을 맞이하리란 것이 명백해 보였듯, 물질만능주의에 불붙은 욕망이라는 폭주기관차에 오른 우리의 최후 역시 눈앞에 선하다. 누구나 저마다의 욕구와 이를 실현하고 싶은 열의가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고 싶지 않다. 나 또한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고, 커리어에서 성공하고 싶다. 그러나 수단과 방법은 분명 고려 대상이고, 내가 여전히 주도권을 쥐고 있는지 아니면 욕망에게 운전대를 내어주었는지는 중요한 문제이다. 그 욕망이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주입된 것인지, 아니면 나라는 사람에게서 출발한 고유한 것인지 역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악마를 불러낸 이후, 잭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사진 출처 : IMDB

https://m.imdb.com/title/tt14966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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