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흑단 호수 숲의 늑대 왕

6화 호수의 물속에서

by 태수련

“숲 속에 이질적인 존재가 들어왔어.”

수리부엉이가 말했다.

“정말이야?”

붉은 사슴이 말했다. 그는 상당히 놀란 듯, 검은 눈을 크게 떴다.

“그거 놀랍군. 도대체 어떤 종족이지?”

“인간 종족이야. 인간 여자.”

“호오... 지금도 살아있는 건가?”

“아마 그런 것 같아. 숨도 붙어있고 걷고 뛰고 잘 움직이더군. 정신도 멀쩡했어.”

“별일이군. 늑대 왕이 인간을 대하는 태도를 생각하면.”

붉은 사슴이 말했다.

“왕이 죽음이 코 앞에 닥치니 유해진 모양이야.

이번 겨울이 오기 전에 후계가 정해지면 왕은 사라질 테니까...”

“그렇군. 그래서 왕의 심경에 변화가 생긴 거군.”

“... 늑대 왕의 후계자 말인데...”

수리부엉이가 붉은 사슴에게 말했다.

“솔직히 이번 결투 의식, 굳이 치르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상황 아니야? 누가 최종 승자가 될지 너무 뻔하잖아.”

“그렇긴 하지만, 언제나 의외의 변수가 있어.”

붉은 사슴이 대답했다.

“이번에도 이변이 있었어. 어젯밤에 벌어진 결투 의식에서, 막내아들이 이겼다더군.”

“은빛 털의 늑대가? 호오~”

수리부엉이는 놀란 듯했다.

“붉은 털 늑대가 이길 줄 알았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그러니까 말했잖아, 변수가 있다고. 누가 다음번 늑대 왕이 될지 지금으로서는 몰라.”

“그리고 결과가 뻔하다고 해도...”

붉은 사슴이 말을 이었다.

“‘결투 의식’을 치르지 않는 것은 불가능해. 그건 늑대 왕조차 지켜야 하는 규칙이거든.”

“규칙...”

수리부엉이가 규칙이란 말을 곱씹었다.

“규칙이라니까 생각났는데, 남색털 늑대가 요즘 좀 괴상한 행동을 하는 거 같아.”

“그 겁쟁이 여섯 번째 아들 말이야?”

“맞아. 그 녀석. 요새 숲 바깥으로 자주 나가. 이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결투 의식이 눈앞에 다가오니까 수시로 산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것 같아.”

“숲 바깥에서 얻을 게 뭐가 있다는 거지? 그 척박한 곳에서?”

“한번 먼발치에서 본 적이 있는데, 인간들하고 접촉하는 거 같았어.”

...!!! 그런 행동은 위험하다. 흑단 숲에 사는 모든 존재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늑대 왕은 숲의 존재들이 인간 종족과 연을 맺는 것을 싫어한다.

왜냐하면 ‘오만’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남색털 늑대도 막내 늑대처럼 인간 여자한테서 태어났잖아. 그러면서 알게 모르게 인간들의 타락한 지식을 흡수한 거 같더군.”

“그래봤자 그게 뭐? 남색털 늑대도 이번 의식에서 죽을 걸. 솔직히, 살아남을 아들은 큰아들인 검정털 늑대야. 틀림없어.”

“남색털 늑대도 자신이 약하다는 걸 잘 알고 있어. 발버둥 쳐봤자 어차피 죽을 거라는 걸. 하지만, 죽고 싶지 않겠지. 분명히”

“그게 인간 종족을 찾아가는 것과 무슨 상관이야?”

“인간 종족은 잡동사니를 만드는 재주가 있잖아. 그걸 노리는 거 아닐까.”

“... 그건 위험해.”

붉은 사슴이 살짝 몸을 떨면서 말했다. 인간이 만든 잡동사니를 설마 신성한 ‘결투 의식’에 끌어들일 생각은 아니겠지?

하지만...

욕심에 눈이 멀어 위험을 읽지 못하고 결국은 목숨을 버리는 종족, 그게 인간이었다.

그런 인간 종족의 여자에게서 태어났다, 남색털 늑대는.

수리부엉이와 붉은 사슴은 똑같은 생각을 떠올리며, 입을 다물었다.

그날 저녁이었다.

루이는 인간 모습을 한 채로 흑단 호수 근방에 몸을 누이고 있었다. 흑단 호수는 무시무시한 곳이지만, 재미있는 점은 가까이 있으면 마음이 가라앉는다는 거였다. 루이는 호수 쪽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을 느끼며 어젯밤의 여러 일들로 흥분한 신경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그때 루이는 누군가가 다른 방향에서 이 호수로 걸어오고 있다는 것을 냄새를 통해 알아차렸다. 다른 형제들처럼 루이도 후각이 대단히 뛰어나서, 신경을 고도로 집중시킬 때는 이 산꼭대기에 있으면서도 산 아래쪽의 인간 마을 사람들의 움직임까지 모두 파악할 수 있을 정도였다.

루이가 그 방향을 바라보자, 숲에서 앞서의 그 기이한 소녀가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소녀는 좌우도 살피지 않고 호수 쪽으로 똑바로 걸어갔다. 그녀는 가까이에 은발의 소년이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호숫가에 선 그녀는 입고 있던 덧옷을 여민 끈을 풀기 시작했다.

덧옷이 스르륵 발치로 내려오자, 이번에는 덧옷 안쪽에 입고 있던 얇은 옷도 벗기 시작했다.

루이는 소녀의 그 모습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소녀는 그대로 속옷도 모두 벗더니 알몸이 되었다.

뛰어난 시각 덕분에 루이는 소녀의 벗은 몸을 아주 잘 볼 수 있었다. 소녀의 몸은 아주 가냘팠다. 하지만 목과 어깨, 그리고 팔꿈치 게에서 쏙 들어가는 가느다란 허리, 그리고 엉덩이와 다리의 선이 아주 우아했다.

루이는 인간 마을에서 여자들 알몸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루이는 인간이란 정말 볼품없는 외모의 종족이라고 생각했었다. 칙칙한 피부, 울퉁불퉁한 몸뚱이, 거기에 하나 같이 등뼈는 구부정하고... 인간 따위는, 들쥐보다도 아름답지 못해.

하지만 이 소녀는 다르다. 점차 옅어지는 저녁 햇살 아래에서 소녀의 몸은 희뿌옇게 빛이 나는 듯하고, 사뿐사뿐 걸으면서 흔들리는 가슴, 가는 손목과 발목, 그리고 피부 위에서 찰랑거리는 흑발은 루이를 긴장시켰다.

그렇게 루이가 그녀를 바라보는 사이에, 소녀는 그대로 흑단 호수의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루이는 화들짝 놀랐다. 아니 저 계집애가 지금 제정신인가?!

루이는 늑대 모습으로 변신한 다음, 그대로 몸을 던져 흑단 호수로 뛰어들었다. 첨벙~!!

물결이 요동치는 가운데, 루이는 재빨리 호수 속의 소녀에게 헤엄쳐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의 팔을 세지 않게 물었다.

소녀가 루이를 힐끗 돌아보았다. 루이는 물었던 팔을 놓아준 다음, 인간 모습으로 외양을 바꾸고 그녀에게 소리쳤다,

“너 죽고 싶어?!”

소녀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눈으로 루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 뜻? 무슨.”

“이 호수는 위험하다고!!”

“위험...?... 아아... 달라. 나한테는. 나는. 하지만.”

소녀는 말을 이었다.

“오늘은. 조금 전에. 안온하다... 는 걸. 점을. 점괘를.”

당황하는 루이에게 소녀가 말을 계속했다.

“그리고... 가르쳐줬어. 따뜻해. 수영도. 안개들이. 할 수 있다고.”

... 들을 때마다 느끼지만 괴상한 말투군. 루이는 이렇게 생각했다. 어쨌든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었다. 그러는 중에 소녀는 호수 속을 여유롭게 헤엄치기 시작했다. 소녀는 수영을 아주 잘해서, 물속을 자유자재로 미끄러지듯이 헤엄쳤다. 검은 물속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하얀 몸을, 루이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렇게 마음껏 물속에서 즐기다가, 어느 순간 소녀가 수면 밖으로 푸하면서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면서 생긴 물의 파동이 넘실대면서 루이의 몸을 간지럽혔다. 루이는 찌릿하는 느낌과 함께 자신이 긴장하는 것을 느꼈다. 그런 루이를 향해 물을 찰랑거리며 소녀가 헤엄치면서 다가왔고, 두 사람은 물속에 둥둥 뜬 채로 서로 마주 보았다.

온통 젖은 소녀의 몸이 저무는 햇살 속에서 반짝반짝 빛을 냈다. 루이는 소녀가 물로 만들어진 아주 관능적인 옷을 한 겹 더 입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소녀의 턱에 맺혀있던 물방울이 턱을 따라 미끄러지면서 소리 없이 소녀의 쇄골에 떨어졌다가, 그대로 주르륵 흘러내리며 소녀의 가슴골 사이로 사라졌다.

여기에 소녀를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낯선 풀내음이 루이의 코를 마비시킬 듯이 강하게 느껴졌다. 루이는 온몸이 마비된 것 같았다. 동시에 심장이 굉장히 크게 뛰는 듯한데, 왜 이러는 거지?

그런 루이에게 소녀가 팔을 쓱 뻗더니, 루이의 어깨를 만졌다.

루이는 또 깜짝 놀랐다. 그러나 루이가 놀라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소녀는 얼굴을 바싹 들이대고 루이의 어깨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깨의 피부에 그녀의 숨결이 닿고, 물에 젖은 풍성한 머리카락이 가슴팍을 간지럽히자 루이는 더욱 마비되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심장이 글자 그대로 두 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잘. 그 상처. 아물었네.”

어, 상처를 살펴본 거였어? 루이는 자신의 어깨를 더듬던 소녀의 손목을 쥐었다.

쥐어보니, 정말 가느다란 손목이었다. 인간 상태인 루이의 힘으로도 으스러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왠지 그러고 싶지는 않다. 루이가 소녀의 손목을 쥔 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하는 사이, 루이의 손 위로, 소녀가 자신의 손을 겹쳤다.

그 순간, 루이는 늑대 모습으로 외양을 바꾸고 그대로 호수 밖을 향해 헤엄치기 시작했다. 맹렬하게 헤엄친 루이는 호수 밖으로 빠져나오자마자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늑대 왕의 아들은 도움닫기 실력이 굉장해서, 달리다가 몸을 구부리고 펼치는 그 순간 하늘 높이 튕겨 올랐다. 그리고 그대로 호수 근방을 감싼 숲으로 뛰어내렸다. 착지하면서 발이 땅에 닿자마자, 루이는 지체 없이 질풍처럼 내달려 숲 속 깊숙이 사라져 버렸다.

소녀, 마레네는 그런 루이가 사라진 방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흠, 너무 빨리 진행했나.

하지만 나도 좀 이상하네. 왜 이렇게 서두르는 거지?

마레네는 호수 밖으로 나오며 루이의 손을 잡았던 순간을 떠올렸다.

사실 그때, 그녀도 미칠 듯이 가슴을 두근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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