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흑단 호수 숲의 늑대 왕

7화 늑대의 습격

by 태수련

루이는 질주하고 있었다.

흑단 호수 숲 아래쪽에 있는 인간 마을을 향해서 달리는 중이었다.

초봄의 아직 추운 날씨, 그리고 해가 완전히 저문 어두컴컴한 시간도 늑대 모습을 한 루이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은 보름달이 떠 있는 상태이므로 숲 바깥에서도 늑대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다.

루이는 일전의 첫 번째 결투 의식에서는 이겼지만, 얼마 후에 의식을 또 치르게 될 것이다. 언제, 누구와 맞붙게 될지를 모를 뿐이다. 그 의식에 앞서서 지금 루이는 힘과 영력을 한껏 키울 생각이었다.

인간 한 명을 잡아먹는 걸로.

산등성이를 기세 좋게 달려 내려가고 있는 루이는 평소보다 훨씬 흥분한 상태였다. 루이는 지금 가슴이 엄청나게 두근거리는 건 곧 피를 한껏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것도 맞았다. 그러나 루이가 열에 들뜬 이유가 또 있다는 것을, 루이 자신은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흑단 호수에서 산 아래쪽에 자리 잡은 인간 마을까지는 건강한 성인 남자 걸음으로 간다면 대략 3일 정도가 걸리는 먼 거리였지만, 지금 루이는 숲을 나선 지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마을에 닿았다. 비록 인간과 혼혈이고, 형제들 중에 체구가 가장 작은 루이도, 인간 종족과 비교하면 무시무시한 체력을 가지고 있었다.

보름달이 머리 위에 높이 뜬 한밤중, 루이는 드디어 인간 마을에 도착했다. 늘 보던 그대로였다. 나무와 흙 같은 것들로 얼기설기 만들어놓은 인간들의 추레한 집과 울타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 울타리는 도대체 왜 쳐놓은 걸까? 루이는 볼 때마다 궁금했다. 있으나 마나 한 거 아닌가. 저까짓 나무막대기, 입으로 한 번 물어버리면 바로 작살나버리는데.

마을의 풍경을 한껏 비웃으며, 루이는 몸을 날려 사뿐하게 들어서는 입구에 착지했다. 한 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이었지만, 루이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에게는 뛰어난 오감이 있으니까.

어둠 속에서, 루이는 일단 주위의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가능한 한 신선한 고기, 열 살이 안된 어린애나 갓난아기를 잡아먹는 것이 루이의 취향이었다. 솔직히, 인간 종족은 겉모습도 볼품 없었지만, 잡아먹었을 때 맛도 끔찍했다. 인간의 살덩어리를 씹을 때의 그 질긴 느낌이라니...

그나마 식감이 나은 것이 어린애들이었다. 루이는 이 마을 어느 집에 몇 살의 어린애들이 몇 명이나 있는지 다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루이에게는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다. 난 사냥감을 고통 없이 단번에 죽인다고. 다른 형들처럼 비명을 즐기거나 하지 않아. 그러니까 나한테 사냥당한다는 건, 운이 매우 매우 매우 좋은 거지. 감사하라고.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루이는 마을 입구에서 여러 번 냄새를 맡았다. 그런데, 어디에 누가 있는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아무런 냄새도 느껴지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루이의 코가 지척에 있는 인간들의 냄새를 맡을 수 없다니. 아니, 혹시 뭔가 후각에 문제가 생겼나? 아니야, 마을로 내려오는 도중에는 후각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 그런데 지금은 아무런 냄새를 맡을 수가 없었다.

혹시 인간 놈들, 내가 내려올 걸 미리 알고 어디 다른 데로 피신한 건가? 하지만 그것도 이상했다. 인간들이 피신한다고 해봐야 어차피 이 근방 어딘가 일 테고, 그런 경우에도 루이는 후각으로 다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사방 어디에서도 전혀 아무런 냄새를 맡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냄새를 맡을 수가 없다니, 루이는 이런 상황은 난생처음이라 아주 당황스러웠다. 잠시 사방을 둘러보던 루이는 다른 감각들을 써보기로 했다. 그는 오감을 집중시켰다. 눈과 귀를 크게 뜨고, 촉각도 곤두세웠다. 이만큼 집중하면 땅 깊은 곳을 기어가는 개미 한 마리의 움직임까지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을 어디에 누가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순간 화가 난 루이는 고개를 한껏 뒤로 젖혀 울음을 토했다. 크고 우렁차고, 그리고 달까지 닿을 듯한 높은 울음소리였다. 그리고 듣는 순간 루이의 실망한 심정을 알 수 있는 울음소리였다. 루이는 목이 터질 듯이 울음소리를 냈다가 모든 울분을 토해냈다. 그런 후에, 문득 눈앞에 무언가가 다가온다는 것을 알아챘다.

인간의 냄새를 맡을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이 인간의 냄새는 느껴졌다. 풀 냄새. 그 이상한 소녀였다. 마레네가 마을 안쪽에서 자신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의 등 뒤로 예의 그 안개가 얕게 깔리는 것도 보였다.

루이는 이 시점에서 마레네가 인간이지만, 다른 인간들과 달리 비상한 재주를 갖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다른 인간이라면 산꼭대기에서 하루도 안되어 이 마을까지 내려오는 건 불가능하지만, 이 소녀는 거리에 대한 아무런 제약 없이 내키는 데로 어디든 마음껏 갈 수 있는 듯했다. 그래서 마레네가 갑자기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이 상황이 놀랍지는 않았다.

자신에게 시선을 주는 루이를 향해, 마레네는 소리 없이 걸어왔다. 루이는 온몸을 긴장시키고 털을 세워서 으르렁거렸다. 루이의 그 모습에도 서슴없이 다가온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없을 걸. 볼 수는. 지금은. 먹고 싶겠지만. 사람을.”

... 뭐야, 네가 한 짓이야? 루이는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여러 가지 이상한 재주를 가진 여자. 저 여자가 뭔가 술수를 부려서, 이 마을에 사는 인간들의 냄새나 기척을 느끼지 못하게 만든 것이구나.

이런 건방진 것이 있나! 앞으로 결투 의식이 있다고! 이 의식에는 사람을 먹어치워서 힘과 영력을 축적해 둬야 싸울 수가 있단 말이야!!

루이는 온몸의 털을 곤두세우고, 하얀 이빨을 한껏 드러낸 뒤 마레네를 향해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썩 비켜!!”

“인간. 이잖아. 반쪽은. 너도.”

...?! 이 계집애가 그걸 어떻게 알지?

마레네는 무섭게 으르렁거리는 루이에게 계속 말을 이었다.

“새기게 돼. 죄를. 경우에. 이런.”

“... 너 무슨 착각하는 모양인데, 어제 호수에서 널 살려둔 건 네가 불쌍해서 그런 게 아니야.”

“동족을. 너한테는. 인간은.”

“어서 비켜, 한 놈만 먹어치우고 갈 테니까.”

“내가. 너를. 해주는. 염려해서. 말.”

“에잇, 시끄러워!!”

주위가 흔들릴 듯이 포효한 루이는 득달같이 마레네에게 덤벼들었다. 루이가 인간 모습일 때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늑대 모습을 한 루이에게 마레네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쏜살같이 마레네의 코앞에 달려온 루이는 그대로 앞발로 그녀를 바닥에 쓰러트렸다. 마레네는 도망치려고 하지도 않고, 루이의 공격에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졌다. 그런 그녀를 향해 루이가 잽싸게 이를 드러냈고, 그다음에는 목을 물려고 했다.

순간, 루이의 머릿속으로 어제 본 마레네의 모습이 떠올랐다. 저녁의 노을빛 아래에서 드러낸 마레네의 맨몸. 희게 빛나던 피부, 둥근 가슴과 엉덩이, 물결처럼 근사하게 휘어진 등뼈, 그리고 물방울이 흘러내리던 목덜미...

그 광경이 떠오르자, 루이는 화들짝 놀라며 마레네의 뒤로 물러났다. 불에 덴 것 같은 모양으로, 루이는 몸을 뒤로 튕겨 뒷걸음질 치며 마레네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졌다.

당황스러운 상황 앞에 루이는 몹시 허둥댔다.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나는 루이를, 마레네는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우왕좌왕했던 루이가 침착해진 듯 하자, 마레네는 그에게 말했다.

“다른. 영력을. 높이는. 내가. 방법을. 알고 있어.”

...? 뭐라고?! 루이가 푸른 눈동자를 크게 떴다. 마레네는 말을 이었다.

“싸워서. 힘을. 다른. 이길. 형제들과. 갖고 싶지?”

당연하지. 난 죽고 싶지 않아. 나도 이 숲을 지배하는 왕이 되어보고 싶어. 저 티꺼운 다른 형제들을 모두 눌러 죽이고 산을 호령하는 위대한 존재가 되고 싶다고.

마레네는 루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두 아는 듯했다. 마레네는 땅바닥에서 몸을 일으킨 뒤, 사뿐히 루이 앞에 다가왔다. 그리고 손을 뻗어 루이의 가슴털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루이는 호수에서 느꼈던, 온몸이 마비되는 듯한 감각을 또 느꼈다. 마레네의 손길이 닿자 번개에 맞은 듯 찌릿했다. 내가, 왜 이러지?

그런 루이에게 더 바싹 다가온 마레네는, 루이의 가슴 쪽에 상체를 들이대더니 얼굴을 살짝 기댔다.

루이가 뻣뻣하게 굳어서 아무런 제지를 하지 못하는데, 마레네가 얼굴을 들어 올리며 루이에게 물었다.

“이름. 가르쳐줘. 네.”

“... 루이.”

“이름. 좋은.”

마레네가 이렇게 자신에게 기대고 있으니, 그녀 특유의 풀향기가 더욱 진해졌다. 루이는 그녀를 밀어낼 수도 없었고, 뻣뻣하게 굳어서 그저 가만히 있기만 했다.

루이는 강력한 주술에 걸린 거였다.

마레네가 이 산에 오기도 전에 만들었던 주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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