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흑단 호수 숲의 늑대 왕

10화 나를 안아.

by 태수련

승부는 예상대로였다.

흑단 호수 숲 속에 사는 대부분의 생명체들이 짐작한 그대로 승부가 났다. 다음번 늑대왕을 가리는 결투 의식. 첫째인 검은 털 늑대와 검은색과 하얀색 털을 가진 세 번째 늑대의 험악한 싸움은 첫 번째 늑대의 승리로 끝났다.

의식의 승패가 결정 난 지금, 검은 털 늑대의 모습은 매우 무시무시했다. 덩치가 산만하고 온통 짙은 검은 털로 뒤덮인 검은 털 늑대의 신체 곳곳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찢어지고 물어뜯긴 상처가 검은 털 늑대의 온몸에 가득했다. 거기에 덧붙여 아주 맹렬하게 싸운 덕분에, 검은 털 늑대는 거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러나 검은 털 늑대와 맞붙어 싸운 세 번째 늑대의 모습은 더 참혹했다. 흰 바탕에 곳곳에 검은 무늬가 들어간 세 번째 늑대 역시 온몸에 상처가 가득했고, 그중에서는 뼈까지 닿을 듯이 깊은 상처도 눈에 보였다.

그러나 역시 가장 끔찍한 것은 세 번째 늑대의 오른 앞발이었다. 그는 결투 도중 검은 털 늑대에게 앞발을 물렸다. 아니, 물렸다기보다 검은 털 늑대가 세 번째 늑대의 오른쪽 앞발을 그냥 ‘씹어버렸다’.

피를 폭포수처럼 흘리며 바닥에 질질 끌고 있는 세 번째 늑대의 오른 앞발은 소생 불가능이라는 것이 확실했다. 가죽, 근육, 그리고 안쪽의 뼈도 검은 털 늑대의 이빨에 완전히 박살 난 모양이었다. 그렇게 다친 세 번째 늑대의 목덜미에서도 피가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끊임없이 뿜어대는 시뻘건 피의 양은 심상치 않았다. 그리고 이제 세 번째 늑대의 눈은 명백하게 생명의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비척대는 모습이, 이제 더 이상 움직일 힘도 없는 모양이었다. 세 번째 늑대는 자신이 이제 죽을 거라는 걸 어마어마한 고통 속에서 곱씹었다.

피할 방법이 없는 결말이 눈앞에 다가왔다.

그렇게 무시무시한 고통의 끝에, 세 번째 늑대는 옆으로 쓰러졌다.

워낙 커다랗고 육중한 몸집이어서, 쓰러지는 순간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주변이 울렸다.

그렇게 쓰러진 세 번째 늑대는 그 상태로 한동안 가뿐 숨을 몰아쉬다가, 그대로 숨이 끊어졌다.

세 번째 늑대가 죽은 것이 확실해 보이자, 그제야 검은 털 늑대는 몸의 긴장을 풀고 쓰러지듯이 바닥에 몸을 뉘었다. 물론 압도적인 승리였지만, 검은 털 늑대가 입은 상처와 부상도 상당했다.

검은 털 늑대는 자신의 몸 곳곳에 남은 상처를 들여다보았다. 고통이 어마어마했다. 흘린 피의 양도 굉장했다.

이거 얼른 호수로 가서 은총을 청해야겠는데. 검은 털 늑대는 그렇게 생각하고, 애써 힘을 주어 몸을 일으키고 호수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당연하지만 걷는다기보다는, 천천히 기어가는 것에 가까웠다.

그렇게 비척대며 호수로 찾아온 검은 털 늑대에게 은총이 내려졌다.

그 무시무시한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어 붙었다. 검은 털 늑대는 바로 조금 전까지 정신이 나갈 것 같은 통증을 주던 상처가 지금 아무런 흔적 없이 아물어 붙은 것이 너무나 신기했다. 부상을 당한 일 자체가 없었던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역시 놀라운 분이군, 달그림자 신은. 검은 털 늑대는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자신의 몸을 들여다보며 핥고 있었는데, 그런 그에게 까마귀가 날아왔다.

“역시 대단해! 굉장한 승부였어. 늑대 왕의 큰 아들이라는 게 부끄럽지 않은 훌륭한 결투였어!”

“... 이제 겨우 한 놈을 쓰러트렸을 뿐이야...”

“이대로 간다면 다음번 늑대 왕이 되는 건 문제가 없을 걸.”

“... 물론이지...”

검은 털 늑대는 이제 다소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까마귀에게 말했다.

“의식에 집중하느라 잠깐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숲에 뭔가 낯선 존재 하나가 끼어든 것 같던데.”

“맞아. 나도 느꼈어.”

“생전 처음 맡아보는 냄새였어. 풀 향기가 계속 나던데. 아니 그게 아니라 조그만 꽃 향기 같기도 하고... 그 존재가 기묘한 안개의 덩어리도 몰고 다녀. 뭐 하는 존재지? 기척으로 짐작하니 인간인 듯한데.”

“그건 모르겠어. 하지만 건너 들은 얘기로는, 늑대 왕께 숲에 머물러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더군.”

“... 그리고 언젠가부터 산 아래 마을 인간들의 기척과 냄새를 읽을 수가 없어.”

검은 털 늑대는 말을 이었다.

“의식을 치르기 전에 두어 놈 잡아먹을까 하고 냄새를 맡았는데, 아무런 냄새를 맡을 수가 없었어. 어디에 누가 있는지 기척도 전혀 읽을 수가 없고. 이런 일은 처음이야.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혹시 그 안개 덩어리의 인간과 관계가 있는 건가?”

까마귀는 모르겠다는 의사의 표시로, 천천히 고개를 가로져었다.

검은 털 늑대는 안개의 냄새를 맡았을 때를 떠올렸다. 깨끗하고 향기로운 냄새였다. 음, 다음번 결투 때까지 인간의 기척을 계속 느끼지 못한다면, 그 안개 덩어리 속의 인간을 먹어치우는 건 어떨까.

그렇게 검은 털 늑대가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는 근방에서, 루이는 인간 모습을 한 채 형을 지켜보고 있었다.

루이는 검은 털 늑대와 세 번째 늑대의 결투 의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보았다.

어찌나 무서운지, 지금도 그 광경, 소리를 떠올리면 내장이 오그라드는 듯한 공포심에 사로잡혔다. 역시 검은 털 늑대는 어마어마하게 강했다.

루이는 저 무서운 큰 형과 맞붙는 상황을 떠올렸다. 아아, 저렇게 강한 늑대를 과연 이길 수 있을까?

그때 문득, 루이는 마레네가 한 말이 떠올랐다.

‘늑대 왕은. 다음번. 가졌어. 검은 털.’

... 아니야.

... 이길 수 있어. 난 강해. 상대가 큰 형이라고 해도, 난 이길 수 있어. 죽지 않아.

루이는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듯이 이길 거라는 말을 머릿속으로 반복했다.

그때였다. 루이는 귓가를 스치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루이...’

여자 목소리. 마레네. 그 이상한 여자의 목소리다.

루이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루이는 산 아래 마을에 있을 때도 마음먹으면 흑단 호수의 물결 소리까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청력이 좋다. 하지만 루이는 방금 그 목소리가 귀에 들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머릿속에서 울린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상한 일이네. 그렇게 생각하는 루이의 귓가에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루이... ...로... 호수로 와...’

거역할 수 없는 명령을 들은 것처럼 루이는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늑대 모습으로 변신한 후에, 호수 쪽으로 내달렸다.

흑단 호수에 ‘그 안개’가 서려 있었다. 호수에는 마레네가 허리까지 몸을 담그고, 물속에 잠긴 자신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천천히 훑어내리고 있었다.

보름달이 뜬 밤, 남청색으로 일렁거리는 하늘. 그 아래 검은 물의 호수를 하얀 안개가 감싸고, 안개 너머에는 기묘한 소녀가 있었다.

루이는 그 광경에 압도당해, 긴장한 채로 마레네를 보고 있었다.

마레네는 루이 쪽을 바라보지는 않고, 계속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그에게 말했다.

“살아남고, 루이, 앞으로, 의식에서, 싶다면, 방법이, 있어.”

... 정말?! 무슨 방법인데? 그렇게 생각하는 루이에게, 마레네가 나직하게 말했다.

“안아,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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