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남색 털 늑대, 마레네를 습격하다
남색 털 늑대는 흑단 숲으로 돌아왔다.
남색 털 늑대는 ‘무언가’를 입에 문 채로 약간 뛰는 듯한 걸음걸이로 숲으로 들어섰다. 그가 입에 물고 있는 것은 상당한 무게였지만, 남색 털 늑대에게는 별 문제가 아니었다.
숲에 발을 들이는 순간에, 남색 털 늑대는 이제부터는 자신의 의지로 모습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남색 털 늑대는 입에 문 무언가를 내려놓은 뒤, 인간 모습으로 변신했다.
루이와 마찬가지였다. 남색 털 늑대는 인간 모습으로 변했어도 머리카락 색깔은 늑대일 때의 털 색깔과 똑같았다. 남색 털 늑대는 약간 숨이 차서, 풀밭에 앉았다.
... 지금 가지고 온 ‘이것’은 아버지조차 알 수가 없다고 그놈이 말했어. 그러니까 이것을 잘 사용하면... 결투 의식에서 살아남는 마지막 한 명이 될 수 있을 거야. 틀림없어.
난 살 수 있어.
남색 털 늑대는 나뭇가지와 이파리들로 빽빽하게 시야를 가린 광경을 올려다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나저나, 요즘 숲의 분위기가 너무 이상해. 아무리 결투 의식이 진행 중이라고는 해도... 일단, 산 아래쪽 인간 마을에서 인간들의 기척을 전혀 읽을 수가 없어.
냄새도 움직임도, 그 외에 어떤 기척도 느낄 수가 없어.
남색 털 늑대는 이런 상황은 생전 처음 경험했다. 의식을 앞두고 인간을 잡아먹어 영력을 높이려던 남색 털 늑대의 계획은 빗나갔다.
그리고 그즈음에, 숲 속에 무언가 낯선 존재가 끼어들었다. 남색 털 늑대는 생전 처음 맡아보는 향기를 맡았다. 이슬이 맺혀있는 깨끗한 풀을 연상시키는 향기였다. 그리고 무언가 부자연스러운 느낌의 안개가 여기저기 나타나는 것도 보았다. 그 뒤에 조그만 여자 인간의 발소리도 들었다.
인간 여자가 이 숲에 들어온 건가?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 걸까. 아버지가 뭔가 마법을 부리신 걸까? 그게 아니면 결투 의식을 치를 때마다 이런 기이한 일이 반드시 생기는 거였나?
머릿속이 너무나 혼란했다. 그때였다.
남색 털 늑대는 냄새를 맡았다. 이른 새벽의 풀을 떠올리게 하는 냄새...
아, 이 숲에 들어온 그 인간 여자로군.
인간 여자는 천천히 걸어서 이동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주위에, 이전에도 보았던 이질적인 안개가 엷게 깔려 그녀의 뒤를 따라가고 있다는 것을 남색 털 늑대는 냄새를 맡아서 지각했다. 몇 클라프터 되지 않는 지척이었다.
남색 털 늑대는 문득, 자신이 인간을 잡아먹으려고 했었다는 걸 떠올렸다.
그런데 지금 마침 인간이 나타났잖아. 그렇다면...
남색 털 늑대는 늑대 모습으로 변신한 뒤, 튕겨 일어나 풀 향기를 내는 인간 여자를 찾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찾아냈다. 여자는 거대한 고목 아래쪽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어 뭐지? 기도하는 중인가?
그렇게 생각한 남색 털 늑대의 눈에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 펼쳐졌다.
인간 여자가 고목 앞에서 팔을 아주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러자...
여자의 주위에 옅게 깔려있던 안개가 푸르스름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은은하게 빛이 났지만, 점차 그 빛이 강해지며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의 사방 네 클라프터 가량을 대낮처럼 밝힐 정도로 환하게 광선을 뿜었다.
너울거리는 빛의 안개에 둘러싸인 눈부신 숲의 광경이 남색 털 늑대의 몸과 마음을 압도해 버렸다.
... 그때 돌아보지도 않은 채로, 소녀가 등 뒤의 남색 털 늑대에게 말했다.
“안 돼. 쓰면, 그것을.”
... 뭐?!
화들짝 놀란 남색 털 늑대에게 소녀가 말을 계속했다.
“어기는, 그것은, 왕의, 늑대, 늑대 왕의, 규칙을.”
...!!! 뭐지, 저 인간 계집. 설마 내 ‘계획’을 눈치챈 건가?
남색 털 늑대는 자신의 비밀스러운 음모가 탄로 났다는 것을 알고 심장이 내려앉는 걸 느꼈다. 아니 저 인간 계집이 어떻게 알아차린 거지?
큰일 났다. 아, 저 계집이 쫑알쫑알 떠들면 곤란하다.
죽여야겠다.
남색 털 늑대는 그대로 이를 드러내고 여자에게 달려들었다.
그때, 무언가 하얀 것이 남색 털 늑대의 눈앞으로 뛰어들었다. 남색 털 늑대는 여자에게 신경을 집중하던 중이어서, 주변에 다른 늑대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하얀, 아니 은빛 털의 늑대는 여자와 남색 털 늑대의 가운데에 몸을 던진 후 빠른 속도로 앞발을 들어 올려 거세게 남색 털 늑대의 주둥이를 후려쳤다.
퍽! 강렬한 타격에 남색 털 늑대는 바닥에 쓰러지듯이 하며 뒤로 튕겨 나갔다. 아주 제대로 된 일격이었다. 남색 털 늑대는 머리가 뒤흔들리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그렇게 뒤로 물러난 남색 털 늑대는 충격이 가라앉자마자 바로 몸을 곧추세우며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그는 이제 눈앞에 자신의 막내 동생이 온몸의 털을 세우고 사납게 으르렁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남색 털 늑대가 루이에게 물었다.
“... 뭐냐, 은빛 털. 왜 방해하는 거야?”
“당장 꺼져! 이 인간은 내 사냥감이니까!!”
“그런 게 어디 있어. 사냥감은 먼저 잡는 쪽이 먹게 되어 있어. 그게 숲의 규칙이잖아.”
“그러니까 이 인간은 내가 먼저 잡은 거라고! 넌 빠지란 말이야!! 너도 조만간 결투 의식이 있잖아, 어디 한 군데 찢어진 채로 의식을 치르고 싶어?!”
“이 건방진 놈이 날 지금 협박하는 거냐?!”
“아니면 아버지한테 말할까? 네가 지금 인간들하고 만나고 온 거라는 걸?!”
루이의 그 말은 남색 털 늑대의 말문을 막아버렸다. 남색 털 늑대의 눈이 커다래지는 걸 보면서, 루이는 비웃듯이 말을 이었다.
“네가 뭔가 술수를 써서 ‘그것’의 기척은 아버지한테서 지운 것 같군. 하지만... 네 털에는 인간 냄새와 녹은 쇠붙이 냄새가 잔뜩 배어 있어.”
아차!! 남색 털 늑대는 식은땀을 흘렸다.
루이가 말을 계속했다.
“인간들하고 만나서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가 그걸 아시고 노여움을 품으면 어떻게 될까... 너도 그건 원하지 않겠지?”
늑대 왕의 무시무시한 모습을 떠올리며 남색 털 늑대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버지는 평소에는 거의 미동도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분노를 품으면...
남색 털 늑대는 인간 여자를 잡아먹는 걸 포기했다. 그는 루이에게 사나운 눈빛을 보낸 뒤에, 그대로 뒤로 돌아서 뛰어올라 숲 저편 자신의 영역으로 사라졌다.
남색 털 늑대의 냄새가 충분히 멀어졌다고 판단되자, 루이는 인간 모습으로 변신한 뒤 돌아서서 마레네에게 소리쳤다.
“너, 그렇게 죽고 싶어?!”
마레네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루이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의 눈을 바라보자, 루이는 왠지 긴장됐지만 말을 계속했다.
“내가 없었으면, 넌 비명도 못 지르고 저놈 뱃속으로 사라졌을걸.”
“보고, 있었잖아. 곁에서, 나를, 너.”
... 이 계집애, 늑대 왕 아들들 이상의 인지력이 있는가 보군. 내가 곁에서 얼쩡거리는 걸 알고 있었군...
루이가 쑥스러운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마레네가 소리 없이 다가왔다. 그러자 루이는 얼른 돌아서서 그녀에게서 멀어지려고 했다. 그때 마레네의 목소리가 들렸다.
“루이, 지금, 안온하셔. 아주, 네 어머니는.”
...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