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흑단 호수 숲의 늑대 왕

13화 마레네, 루이에게 안기다

by 태수련

“어머...니가 안온하게 계신다고...?”

루이는 생각하지도 못한 마레네의 말에, 너무 놀라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그는 푸르스름한 시안 색깔 눈동자를 커다랗게 뜨고, 마레네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마레네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루이는 순간 애타는 심정으로 두 팔을 뻗어 그녀의 팔을 붙들고 흔들었다.

“어디에...? 지금 어디에 계신대? 어, 어머니는 지금 지옥에 있는 거... 아니었어?”

루이는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했다. 결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무시무시한 광경이었지만, 그는 마음속 깊은 곳에 꽁꽁 묶어두었던 그 기억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 루이의 어머니는 모두 체념한 것처럼 보였다. 아니 그것보다는, 운명을 받아들였다고 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늑대 왕의 신부가 되면, 그때부터 신부는 이 숲에서 풍요롭게 살게 된다. 먹을 것과 생존에 대한 걱정은 모두 사라진다. 그리고 누구 하나 신부의 털끝도 건드릴 수가 없다. 늑대 왕의 신부를 해치려 한다면, 늑대 왕이 직접 가혹한 벌을 내린다.

거기에 유령들의 융숭한 시중을 받고, 평범한 인간들은 상상도 못 해본 호화로운 옷에 장신구도 받을 수 있다. 한마디로, 글자 그대로 여왕처럼 살게 된다. 하지만...

늑대 왕의 신부는 낳은 아이가 17살 생일을 맞이하기 전에 반드시 죽임을 당한다.

그것도 결코 곱게 죽지 않는다. 늑대 왕은 이 숲에 허락 없이 발을 들이는 외지의 존재들을 거의 죽여버린다. 그런 죽음과 똑같은 방식으로 신부들도 죽음을 맞이한다.

‘손’.

커다란... 손... 시커먼 손이...

루이는 순간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머니가 ‘지옥으로 끌려들어 가는 순간’을 기억해 내는 것은 루이에게 가혹한 일이었다. 그가 무너지는 정신을 어찌할 줄 몰라하는 순간에, 마레네가 말을 던졌다.

“계속, 아니야, 지옥에, 내려가서, 있는 게.”

... 뭐라고? 루이는 흩어지는 듯한 정신을 붙들었다. 아니라고? 어머니가 계속 지옥에 있는 게 아니라고?

마레네는 그녀 특유의 말투로 얘기를 이어갔다.

“늘, 계셨기 때문에, 하고, 각오를, 네 어머니는, 마음에.”

마레네는 루이와 눈을 마주쳤다.

“생각하는, 고통스럽지는, 네가, 만큼, 않으셨어.”

... 루이는 무언가, 마음에 잔뜩 맺혀있던 덩어리 하나가 내려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루이는 17살 생일을 지나면서 성년이 되었지만, 마음의 성숙함을 가지려면 아직 좀 더 시간과 경험이 필요했다. 그런 그에게, 어머니의 갑작스럽고 무서운 죽음의 광경을 목격하는 것은 엄청난 상처였다. 그런데 그 상처를...

몇 마디 말로, 눈앞의 소녀가 회복시켜 준 것이다. 완전히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상당히.

루이는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의 눈앞에 선 소녀를 다시 바라보았다. 마레네와 눈이 마주치자 눈을 돌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그러지 않고 그녀와 얼굴을 마주했다.

이번 달 보름에 마레네를 처음 만났고, 그 후에 계속 그녀와 부딪치게 되었지만 이렇게 찬찬히 얼굴을 들여다보는 건 사실 처음이었다.

갸름하면서 하얀 얼굴. 지금은 그 얼굴의 뺨 부분이 살짝 붉게 물들어있고, 흑진주처럼 새카만 눈동자는 무언가를 원하면서 루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름다워.

루이는 이 소녀를 볼 때마다 마음속에서 맴돌던 말을 드디어 떠올렸다. 그녀를 보거나 가까이할 때마다 당황했던 건, 그녀의 아름다움 때문이었다. 저 아름다운 몸을, 꼭 끌어안아보고 싶다, 저 잘록한 허리에 내 팔을 감아보고 싶다, 그리고 저 미려한 얼굴에...

루이는 지금까지 애써 그 마음을 외면했지만, 이제 더 외면할 수가 없게 되었다.

마레네가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그녀의 풀 향기가 더욱 진해졌다. 코가 마비될 듯했다. 루이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런 루이에게 바싹 다가온 마레네는 양손을 루이의 가슴에 댔다. 꽃 이파리에 내려앉는 나비의 움직임처럼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러운 손길로.

루이가 거부하지 않자, 이제 마레네는 자신의 얼굴을 천천히 그의 얼굴에 가까이 가져갔다. 루이는 가슴이 천둥처럼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쿵쾅대는 소리가 양쪽 귀를 울리면서, 숲의 다른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 지경이 되었다.

그렇게 루이에게 바싹 다가온 마레네는, 이번에도 아주 천천히 얼굴을 그에게 가까이 가져갔다. 그렇게 바로 코앞에 그녀의 얼굴이 다가오자 루이는 순간 눈을 감았다. 하지만 마레네가 얼굴을 가까이하는 것을 막지는 않았다. 그렇게 루이에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간 마레네는 입술을...

루이의 왼쪽 뺨에 가져다 댔다.

루이는 번쩍 눈을 떴다. 마레네는 아주 잠깐 루이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그런 후에 살짝 뒤로 물러선 그녀는, 루이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재빨리 얼굴을 그에게 가까이 대면서 이번에는 루이의 오른쪽 볼에 입을 맞추었다.

루이는 멍했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어, 그런데 가슴이 너무 두근거려... 터질 것 같다!

그런 루이의 가슴에 마레네가 몸을 기대는 것이 느껴졌다. 루이는 무의식적으로 팔을 들어 올린 다음, 그녀의 등으로 둘러 그녀를 품에 안았다.

엉겁결에 한 포옹이었지만, 루이는 어머니가 죽은 이후 처음으로 이 말을 떠올렸다.

포근해.

작고, 따뜻하고, 그리고 아름다운, 숨을 쉬는 생명체 하나가 지금 자신의 품 안에 안겨있다. 이것이 결투 의식 때문에 칼날처럼 날카롭게 곤두서 있던 루이의 신경을 가라앉히고 잠깐이지만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루이는 좀 더 세게 마레네를 끌어안았다. 마레네는 루이의 가슴에 얼굴을 대고 루이의 가슴에 매달리듯이 안겨있었다.

... 이대로 숲 밖으로 도망치고 싶다. 그 무서운 결투 의식을 다 포기하고. 숲의 왕 같은 거 되지 않아도 좋으니까 이 여자를 데리고 어디 먼 곳으로...

그런 생각이 든 루이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루이는 마레네의 몸을 안고 있던 팔을 천천히 내렸다. 마레네가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루이는 내렸던 팔로 마레네의 양팔을 붙든 다음 천천히 그녀의 몸을 자신에게서 떨어트렸다. 그러면서 마레네와 눈이 마주치자, 루이는 아주 진지하게 물었다.

“너... 창녀는 아니라고 했었지?”

마레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루이는 다시 물었다.

“그럼... 왜 이러는 건데?”

마레네는 말없이 루이의 눈을 바라보았다. 루이는 다시 질문했다.

“내 어머니가 그러셨거든. 돈을 받고 몸을 내주는 여자가 아니라면, 여자들은 관심 없는 남자한테 입을 맞추거나 하지 않는다고 했어.”

마레네는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는 얘기인가...? 그러나 루이는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 저번에도 물었던 것 같지만... 늑대 왕의 신부가 되고 싶어서 이러는 거야?”

마레네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라고? 루이가 마레네를 뚫어져라 보는데, 마레네가 입을 열었다.

“않아, 되지, 난, 신부가, 늑대 왕의.”

루이는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런 루이에게 마레네가 다시 말했다.

“네가, 루이, 불렀잖아, 나를.”

... 이게 무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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