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흑단 호수 숲의 늑대 왕

14화 위험한 유령들과의 조우

by 태수련

흑단 호수 숲에는 동물들만 사는 것이 아니었다. 이 숲에는 여러 초자연적인 존재들도 살았는데 유령들도 이 숲에 머무르고 있었다.

숲의 바깥에서 유령들은 그리 힘을 쓰지 못했다.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고, 인간 종족들이 활력을 뿜어내는 대낮에는 유령들은 거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고, 고작해야 해가 저버린 밤이 되어서야 모습을 살짝 드러낼 수 있었다. 그것도 영적인 세계에서 멀어진 어른들의 눈에는 거의 띄지 않았고, 어린아이들 눈에나 목격되는 정도였다.

덧붙여 유령들은 물리적인 힘을 쓸 수도 없었다. 굳이 그런 힘을 쓰려고 한다면, 영력이 아주 약한 인간의 꿈에 침입해 그 인간을 조종하는 정도가 유령들이 물리력을 쓰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런 방법도 역사에 남을 정도의 강렬한 원한을 품고 죽은 유령 정도나 가능하지, 대부분의 유령들에게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흑단 숲에서는 얘기가 달랐다. 이곳은 어마어마한 영성이 폭포수처럼 요동치는 피안과 차안의 경계였기 때문에, 유령들도 마음껏 모습을 드러냈고, 때로는 강한 물리력도 행사할 수 있었다.

유령들의 눈에 마레네가 들어온 것은 검은 털 늑대가 결투 의식에서 이긴 다음 날 밤이었다. 공중을 휘돌던 유령의 무리 중 하나가 숲 속을 움직이는 안개의 덩어리를 보았다.

“저...건...뭐...지...?”

세 명의 유령들 중 하나가 안개를 향해 시선을 주었다. 숲 속에 자연스럽게 생기는 안개가 아니었다. 뭔가 의지를 가진 존재가 주술을 써서 만든 안개였다.

“위...칸...”

두 번째 유령이 말했다. 안개를 향해 뚫어져라 시선을 주던 두 번째 유령은 느릿하게 말을 이어갔다.

“위...칸...의... 힘이...야... 상당...한...고위...급의...”

두 번째 유령은 음울한 눈동자를 위로 올려 살아있을 때 알았던 지식을 떠올리려 애썼다.

“안개...를...자신...의 수족처럼...부릴...수...있는...상위...위칸이로...군.”

숲에는 수많은 존재들이 살고 있지만, 위칸이 들어온 것은 유령들의 기억으로는 처음이었다. 아마 대충 계산해도, 수백 년 만에 처음으로 이 숲에 들어온 위칸이 아닐까.

그런데 위칸이 이 숲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세 명의 유령들에게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우리들의 사무친 원한을 풀어야겠어, 저 위칸을 이용해서.

지금 마레네를 노리는 세 명의 유령들은, 살아있을 때 아주 위험한 인물들이었다.

유령들은 해파리처럼 흐느적거리면서 안개의 덩어리를 향해 날아갔다. 셋 모두 상반신은 살아있을 때의 모습을 흐릿하게나마 갖추고 있었지만, 명치 아래쪽부터는 달랐다. 아주 오래된 종이를 떠올려보기 바란다. 그런 종이들은 형태를 유지하는 듯 보이지만 손으로 살짝만 건드려도 부스러진다. 이 유령들이 딱 그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 명치 아래쪽은 계속해서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모습이 재생되고, 그런 후에는 다시 부서져 내리고...

이런 모습은 생전에 잔혹하게 죽임을 당한 유령들의 특징이었다.

유령들은 안개의 중심부에서 기도하는 듯한 자세를 하고 있는 위칸을 찾아냈다. 검고 긴 머리에 맨발, 그리고 젊은 나이의 여자 위칸이었다.

첫 번째 유령이 그 위칸에게 쏜살같이 날아가면서 외쳤다.

“제...물...이...”

두 번째 유령도 위칸을 향해 돌진하면서 외쳤다.

“우리...의...원한을 풀어...줄...제물이...되어라...”

여기에 세 번째 유령도 합세해, 위험한 3명의 유령은 안갯속의 위칸에게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들었다!

텅!!

그러나 위칸의 몸속으로 빙의하려던 세 명의 유령은 그녀를 둘러싼 안개에 닿은 순간, 바위 절벽에 부딪친 듯한 충격에 모두 튕겨나갔다.

어마어마한 충격이었다. 한순간이었지만,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피안 세계로 사라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강한 충격이었다. 세 명의 유령 모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자신들을 밀어낸 하얀 안개의 덩어리를 보았다.

이 안개, 그저 위칸의 명령에 움직이는 것만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영적인 공격도 막아낼 수 있는 모양이었다. 이런 건 처음 본다.

하지만 음험한 감정으로 똘똘 뭉친 유령들은 눈앞의 먹이에 대한 탐욕을 놓지 못했다.

튕겨나간 세 유령들은 허공을 맴돌다가, 다시 한번 위칸에게 덤벼들었다.

날아오는 유령들의 눈앞에서, 이번에는 안개가 스르륵 흩어졌다. 이거 기회로군! 유령들은 흩어져 생겨난 안개의 틈으로 흐느적거리는 몸뚱이를 던져 넣었다.

그러나 그건 함정이었다. 안개의 틈으로 들어간 순간에, 안개는 모습이 급변해 펼쳐진 그물 같은 모양이 되었다.

밀도도 아주 단단한, 강철 그물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모습이었다. 강철 그물 모양의 안개는 힘차게 펄럭이더니 세 명의 유령들을 삽시간에 옭아맸다!

숲 속을 자유롭게 떠다니던 유령들의 영체는 쇠사슬에 붙들린 것처럼 구속당했다. 세 명의 유령은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에게 위칸, 마레네가 비로소 시선을 주었다. 그녀는 입을 열었다.

“살인자, 였어, 너희들은, 무서운, 생전에.”

발버둥 치는 유령들을 향해 마레네는 말을 계속했다.

“풀어줄 수는, 그런, 내가, 원한을, 너희들의, 없어.”

... 뭐야, 저 위칸 여자에게 빙의해서, 우리 셋이 죽임 당할 때 가진 원한을 풀 수는 없다는 건가?

싫어, 우리는 이 무거운 원한을 발산시켜야겠어. 숲에 인간이 들어오는 건 아주 드문 일이야. 고위급 위칸이 들어오는 일은 더더욱 드물지.

그러니까 눈앞의 저 인간을 지배해야겠어!!

약이 오른 세 명의 유령은 다시 마레네에게 날아가려고 했다. 그때였다.

“비켜라!!”

일대를 뒤흔드는 듯한 포효가 터졌다. 지진이 일어나거나, 아니면 용암이 땅 밑에서 터져 나올 때 들을 법한 위력의 소리였다.

세 유령들은 화들짝 놀랐다. 그들은 흐느적거리는 몸을 일그러뜨리고 일제히 소리가 나는 방향을 돌아보았다.

시커멓고, 거대한 생명체 하나가 기척도 없이 다가와 있었다. 인간 종족들이 거주하는 집 두 채만 한 몸뚱이, 그 몸뚱이는 밤하늘처럼 새카만 깃털로 뒤덮여 있었고, 등에는 커다란 날개 하나가 곧추세워져 있는 것이 유령들의 눈에 들어왔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지만, 그가 누군지 유령들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거, 검은 털 늑대...”

늑대 왕의 큰 아들이 다가온 거였다. 몸집이 커다란 이상으로, 주위를 찍어 누르는 듯한 박력은 무시무시했다. 유령들은 위압감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고, 몸뚱이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세 명의 유령은 생전에 하던 대로 행동했다. 강한 자에게는 약하게 군다.

세 유령은 흐느적거리는 몸뚱이를 움직여 검은 털 늑대의 반대편을 향해 멀리 날아갔다.

유령들이 모습을 감추자, 지금은 까마귀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검은 털 늑대는 고개를 살짝 내려 눈앞의 소녀를 바라보았다.

소녀 역시 검은 털 늑대와 눈을 마주쳤다.

검은 털 늑대는 그녀의 머리 뒤쪽을 바라보고, 단번에 알아차렸다.

‘이 여자... 인간 중에서 드물게 /통로/에 서 있는 존재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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