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고위급 위칸의 능력
세 유령들은 멀찌감치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귀찮은 세 놈들을 쫓아버린 후에, 검은 털 늑대는 자신의 큰 몸집을 천천히 움직여 눈앞의 인간 여자에게로 향했다.
검은 털 늑대는 지금은 늑대가 아닌 모습을 취하고 있었다. 커다란 몸집과 기둥처럼 튼튼한 네 다리, 그리고 강렬한 눈빛을 뿜는 눈과 늑대 특유의 두상頭相은 그대로였다. 그러나 그의 몸 전체를, 지금은 시커먼 깃털이 뒤덮고 있었다.
까마귀의 깃털과 똑같은 깃털이었다. 흑단 호수의 물 빛깔처럼 시커멓고, 그러면서도 빛이 닿는 부분은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깃털이었다.
그리고 검은 털 늑대의 등 왼편에는 날개가 돋아나 있었다. 역시 까마귀의 날갯죽지와 똑같은 모양새의 날개였다. 그저 등에 붙어있는 게 아니라 검은 털 늑대의 의지에 따라 손발처럼 움직일 수 있는, 엄연히 그의 신체 중 한 부분이었다. 다만 날개가 한 장뿐이었다.
검은 털 늑대는 13명의 형제들 중에서 드물게 마법도 쓸 수 있는 늑대였다. 물론 지금은 그가 이 마법을 다루는 게 미숙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의 마법이 앞으로 더 월등하게 성장할 것은 분명했다. 검은 털 늑대가 형제들 중에서 가장 강인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은 그의 큰 몸집과 더불어 바로 이 능력 때문이었다.
검은 털 늑대는 그런 자신의 능력으로 지금은 까마귀로 모습을 바꾼 거였다. 다만 아직 마법을 다루는 능력이 능숙하지 못해 날개는 한 장만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렇게 모습을 바꾼 검은 털 늑대는 눈앞의 인간 여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마레네 역시, 검은 털 늑대의 눈을 가만히 주시했다.
바로 눈앞에 집채만 한 몸집의, 까마귀와 늑대가 뒤섞인 듯한 모습의 기괴한 생물이 버티고 서있는 상황이었지만, 마레네는 그리 무섭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녀의 침착한 태도는 검은 털 늑대의 호기심을 건드렸다. 검은 털 늑대는 잠시 시간을 두고 마레네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처음에는 먹잇감 정도로 생각했지만, 다시 살펴보니 그냥 잡아먹기에는 다소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모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인간이었다. 그리고 외모도 상당히 괜찮고.
늑대 왕과 그 아들들은 어떤 종족이든 신부로 맞이할 수 있다.
지금 살려두었다가, 혹시 나중에 품에 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 검은 털 늑대는 침묵을 깨고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어떻게 이 숲에 들어온 거지?”
검은 털 늑대의 질문에, 마레네는 그녀 특유의 말투로 천천히 대답했다.
“허락을, 늑대 왕께, 받았습니다.”
“아버님이 그대가 이곳에 들어오는 걸 허락하셨다고?”
검은 털 늑대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다른 아들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아버지를 몹시 무서워했으며, 또한 늑대 왕이 인간 종족과 그들이 만든 잡동사니, 그리고 하찮은 지식으로 숲을 오염시키는 것에 가차 없이 가혹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아버지가, 이 기묘한 인간이 숲에 머무르는 것은 허락을 했다니.
이 여자는 인간 중에서 특별하다 이건가. 검은 털 늑대는 흑요석 같이 검은 눈동자를 움직여 마레네를 바라보다, 다시 물어보았다.
“그런데 어째서 이 위험한 숲에 온 거지? 그리고 보아하니 그대는...”
검은 털 늑대는 사실 가장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통로에 선 인간/ 같은데, 아닌가?”
그 말에 마레네가 고개를 돌려 검은 털 늑대와 눈을 마주쳤다. 이제까지의 침착한 태도와는 다르게 그녀의 눈에 놀라운 기색이 올라왔다. 그걸 어떻게 안 거지? 그런 기색이었다.
검은 털 늑대는 더욱 흥미가 생겼다. ‘통로에 선 인간’. 얘기만 들었었지,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니까.
이때 숲 멀리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검은 털 늑대는 이 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였다가, 마레네 쪽으로 얼굴을 돌려 말했다.
“이 소리, 그대에게도 들리는 건가?”
“들립니다, 네.”
“들을 수 있다면, 앞서의 유령 같은 녀석들이 계속 그대에게 모여들게 될 텐데. 이 숲에서라면 더욱. 그걸 감당할 수 있는 건가?”
“많습니다, 저는, 경험이.”
“... 경험이 많다고?”
“보여드리겠습니다, 바로, 지금.”
그렇게 말한 마레네는 바닥에 고쳐 앉고서 양손을 모아 무릎 위에 놓은 채로 눈을 감았다. 척추는 곧추세웠다. 아주 경건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입술이 달싹거리기 시작했다. 작고 핑크빛을 띠는 그녀의 입이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말을 하는 것은 분명했지만 거의 들을 수 없었다. 다만 검은 털 늑대는 청력이 아주 뛰어나기 때문에 듣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그도 그녀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무슨 말인지 알 수는 없었다. 적어도 인간 종족이 쓰는 언어는 아닌 게 확실했다. 처음 들어보는 언어였다.
검은 털 늑대가 들은 것은 고위 위칸들의 주문이었다.
그렇게 마레네가 ‘주문’을 외우자, 조금 시간이 지나더니 흑단 숲 위쪽 하늘에 너울거리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투명하고 얇은 천조각 같은 것들이 흐늘거리며 하늘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천조각들’은 순식간에 숫자가 불어나더니, 어느 순간 대략 10 개체 넘게 모습을 나타냈다. 크기도 모양도 다양한 천조각들이었지만 넘실대는 모양새는 거의 비슷했다.
그들은 흑단 호수 숲에 기거하는 유령들이었다.
유령들은 빠른 속도로 마레네에게 날아왔다. 불꽃을 향해 모여드는 나방과 같은 모습으로.
그렇게 날아든 유령들이 마레네의 주위를 에워쌌다. 10명이 넘는 유령들이 마레네의 곁을 둘러싸자, 검은 털 늑대는 지척에 있는데도 마레네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그때 유령들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유령들 각자가 서로 다른 소리를 냈다.
비명 같기도 하고, 신음 같기도 한 소리였다. 그렇게 10명이 넘는 유령들이 각자 소리를 내고 그 소리들이 서로 뒤섞이자, 듣기에 아주 불쾌한 소음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음들이 조화를 이루기 시작했다.
귀를 찌르는 소음 같던 유령들의 소리들이 서로 어우러지며 조율되더니, 한순간에 아름다운 곡조가 되었다.
검은 털 늑대는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다. 아니 지금은 소리가 아니라, 음악이었다.
아름다운 음악.
그렇게 멋지게 화음을 내던 유령의 무리들이 연기처럼 사라지기 시작했다.
투명한 얇은 천들이 점점 더 투명해지더니, 문득 사라졌다.
유령들은 모두 사라졌다.
검은 털 늑대는 난생처음 보는 신비로운 광경이었다. 그는 놀란 표정으로 유령들이 사라진 허공을 보고 있다가, 다시 마레네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그녀에게 물었다.
“그대가 방금 그 모든 유령들을... 피안 세계로 보내준 건가?”
마레네는 아주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 이거 굉장하군. 검은 털 늑대는 정말로 오랜만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검은 털 늑대는 이 순간에 마레네를 잡아먹지 않고, 계속 주의 깊게 살펴보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또 하나 검은 털 늑대가 관찰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은빛 털 늑대였다.
바로 지척에 숨어서 자신과 이 소녀를 뚫어져라 주시하고 있는 막내 동생의 모습도 흥미로웠다. 그는 자신이 은빛 털 늑대의 존재를 알아챘다는 것을 드러내지 않고, 대신에 계속 동생을 지켜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