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달빛 아래 금빛 털 늑대가 오다
달의 크기가 많이 줄어들어 있었다.
그 때문인지, 오늘 밤의 흑단 호수 숲은 평소보다 더 어두운 듯했다.
그 어두운 밤하늘 아래에, 굵은 노거수 뿌리 부분에 한 소녀가 잠들어 있었다. 소녀는 아주 깊이 잠든 상태였다. 그런 그녀의 가슴 부분이 살짝 들썩이고 있었다.
그 근방, 대략 3 클라프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은빛 털을 가진 늑대도 잠들어 있었다. 은빛 털 늑대는 풀숲에 누워 자신의 오른 앞발에 고개를 올려놓은 채로 숙면에 빠져있었다.
이 평화로운 광경을, 불현듯 어떤 짐승이 깨트렸다.
귀가 밝은 루이가 먼저 이변을 알아챘다. 깊이 잠들어 있던 루이는 심상찮은 소리를 감지하고 번쩍 눈을 떴다.
전혀 큰 소리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풀 잎사귀에 매달린 귀뚜라미가 낼 법한 아주 작고도 희미한 소리였다. 루이 정도의 청력을 가지지 못한 다른 생물은 듣지도 못했을 그런 소리였다.
그러나 그 작은 소리에서 느껴지는 어딘지 꺼림칙한 느낌에 루이는 곧장 정신을 차리고 살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루이는 소리가 난 방향을 주시했다. 역시 다른 생물들이라면 눈치채지 못했을, 아주 미묘한 움직임이 빼곡한 나무들 사이에서 느껴졌다.
그리고 찰나이지만, 루이의 눈에 은은하게 빛나는 금 빛깔이 보였다.
...!! 루이는 긴장했다. 이 숲에서, 금빛을 내는 생물은 단 한 명뿐이다.
생물이 조금 더 가까이 오자, 이제는 냄새와 기척도 느낄 수 있었다. 루이는 알아차렸다.
‘둘째 형이 왔어...’
금빛 털 늑대는 소리 없이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
오두막 2채 정도 크기의 몸집, 그러면서도 네 발과 몸뚱이는 가느다랬다. 거기에 온몸을 뒤덮은 금빛으로 빛나는 털, 똑같은 금빛의 눈동자.
늑대 왕의 아들들 중 둘째인 금빛 털 늑대였다. 그는 이번 결투 의식에서 다른 형제들을 쓰러트리고 왕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 2명 중 하나였다.
그런 그가, 요 근래 숲에 들어온 이질적인 존재를 찾아온 거였다.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냄새야.’
금빛 털 늑대는 걸으면서 생각했다.
‘틀림없는 인간 여자인데, 숲 속에 어떻게 들어와서 어떻게 아직 안 죽고 멀쩡하게 돌아다니는 건지 알아야겠어.’
그렇게 마레네 가까이 다가온 금빛 털 늑대는, 3 클라프터 정도 떨어져서 잠들어 있는 그녀를 지긋이 관찰했다.
뭐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여자였다. 인간과 초자연적 존재 사이에서 태어난 희귀한 혼혈인가 했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고, 날개도 뿔도 없이 외모도 그저 인간 모습이었다. 어떻게 이런 인간이 숲에 들어온 걸까. 왜 아버지는 이 여자를 내쫓지도 않고 죽이지도 않으신 거지?
그 부분이 다소 궁금했으나, 알 길은 없었다. 어쨌든 금빛 털 늑대는 눈앞의 여자에게 특이한 점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저 여자가 무언가 특별하다는 걸 다른 방법으로 확인하기로 했다. 그는 마레네를 잡아먹기로 했다.
금빛 털 늑대는 온몸을 긴장시킨 후 땅바닥에 납작 엎드린 다음, 인간 여자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 상태로 잠깐 멈췄다가 다음 순간,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그렇게 공중에 붕 뜬 순간과 동시에, 무언가가 자신의 눈앞으로 훅 뛰어드는 것이 보였다.
뭐지?! 금빛 털 늑대는 주변에 눈앞의 여자 말고 다른 누군가가 있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순간 당황하는데, 눈앞으로 뛰어든 그 짐승이 사정없이 자신의 코를 물어버렸다!!
“윽!!”
허를 찔린 금빛 털 늑대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큰 몸집이 땅과 부딪치면서 쾅! 소리를 냈다. 순간 땅이 흔들리고 주변의 나무들이 우수수 흔들렸다.
금빛 털 늑대는 잠시 정신이 혼란했지만, 금방 튕겨 일어났다. 그는 일어나자마자 공격 자세를 취하고, 으르렁대며 눈앞의 기척에 집중했다.
자신을 공격한 것은 막내 동생이었다. 은빛 털 늑대가 자신의 맞은편, 아까 그 인간 여자와 자신 사이에 서서 역시 공격 자세를 한 채 온몸의 털을 곤두세우고 무섭게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금빛 털 늑대는 약간 화가 올라오는 것과 별개로, 막내 동생이 어떻게 이렇게 기척을 잘 감추고 있었는지 마음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기척을 잘 감출수록 신체 능력이 뛰어난 것이다. 막내 동생은 형제들 중 가장 약하다는 말을 항상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형제들 중 두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강한 늑대인 자신에게서 완벽하게 자취를 감추고 있다가 공격했다.
이 녀석이 언제 이렇게 강해진 거지...?
이 부분도 궁금했지만, 그보다 더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뭐냐, 은빛 털. 왜 막아서는 거지?”
“저 여자는 내 사냥감이야, 손대지 마!”
“... 무슨 잠꼬대냐. 다른 녀석이 손대는 게 싫었으면 진작에 먹어치웠으면 됐잖아.”
“... 이 여자는, 살려뒀다가 따로 쓸데가 있어.”
“... 큭! 헛소리 마라. 너도 잘 알겠지만 이 숲에서는...”
갑자기, 금빛 털 늑대의 털이 환하게 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루이는 순간 얼어붙어버렸다.
금빛 털 늑대는 일대가 흔들릴 정도의 소리로 포효했다.
“사냥감은, 죽여서 먹어치우지 않는다면 살려둬서는 안 돼!!!”
벼락이 내려치는 듯한 큰 소리였다. 땅이 웅웅 흔들리고, 그 위력에 나뭇가지 사이에서 새들 여러 마리가 날아 도망가는 소리가 들렸다. 루이는 금빛 털 늑대의 모습에 다리를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루이의 신체 능력은 마레네가 내어준 그 핏빛 구슬로 엄청나게 높아진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형들이 내뿜는 위압감과 박력에 느끼는 두려움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다.
금빛 털 늑대는 으르렁거리며 말을 계속했다.
“그게 아버님이 정하신 규칙이다... 너도 잘 알 텐데.”
“... 어쨌든... 안돼... 안된다고...”
금빛 털 늑대는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네가 잡아먹지 않겠다면, 저 여자는 내가 숨통을 끊어주지!
그리고 그전에 네놈부터 처리하고!!”
루이는 흠칫 놀랐다. 금빛 털 늑대는 그런 그에게 달려들 자세를 취했다.
그 순간, 여자의 외마디 소리가 금빛 털 늑대의 귀에 꽂혔다.
“마세요, 그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