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영력을 높이는 의식
금빛 털 늑대는 소리가 들린 쪽을 보았다. 높고도 절박한 비명에 가까운 소리여서, 금빛 털 늑대는 귀를 찌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소리를 지른 것은 그 인간 여자였다.
그 여자가 누워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두 마리 늑대를 주시하고 있었다. 주위가 어두컴컴했지만, 금빛 털 늑대의 눈에는 여자의 눈동자가 뭔가 강렬한 감정을 품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여자가 말을 이었다.
“말아주세요, 그에게, 손대지.”
“... 뭐야, 고작 인간 주제에 감히 누구에게 명령을...”
“규칙을, 늑대 왕의, 지금, 어기게, 이 공격으로, 되는 것, 이 됩니다.”
... 거 말투 한 번 독특하군. 그런데 신기하게도,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금빛 털 늑대는 마레네가 아버지를 언급하자 기세가 약간 꺾였다. 마레네의 말이 맞았다. 결투 의식을 치르기 전까지는 형제들끼리 서로 공격하지 않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었다. 아버지는 이 암묵적인 룰을 일일이 언급하거나 하지 않지만, 그렇다 해도 만약 이 룰을 어긴다면 가차 없이 응보를 내리실 것이다.
하지만 저 은빛 털 늑대가 자신의 심기를 건드린 것도 사실이었다. 금빛 털 늑대는 이 노여운 마음을 지금 어떻게 다스려야 하나 잠시 생각했다.
그런 그의 심기를 읽은 듯, 마레네가 말했다.
“마법을, 당신은, 형제들, 구사할 수 있는, 중에서, 분이죠.”
호오? 금빛 털 늑대는 약간 놀랐다. 저 인간이 어떻게 그걸 알았지?
“있습니다, 방법을, 영력을, 당신의, 마력을, 높이는, 알려드릴 수.”
...!! 정말인가? 금빛 털 늑대는 황금 빛깔의 눈동자를 크게 떴다. 무시무시한 결투 의식을 앞두고 있다. 물론 자신은 이미 강인하기는 하지만 어떤 변수가 생겨 의식에서 패배할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굉장한 스트레스였다. 그런데, 그런 자신의 영력을 높여줄 수 있다고?
결투 의식은 체력도 중요하지만, 사실 높은 영력이 승부의 결정타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변수는 바로 마법. 형제들 중에 마법을 쓸 수 있는 늑대는 금빛 털 늑대를 포함해 4마리뿐이었다.
-지금은 여덟째 늑대가 루이에게 패했기 때문에 3마리가 된 상태였다.-
이 마법 능력도 승부에 중요하게 작용하는 변수였다.
그런데 그 두 가지 힘을 높여줄 수 있단 말인가. 마레네의 말에, 금빛 털 늑대는 이 말에 노여움이 약간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저 인간 여자가 왜 저런 제안을 하는 거지? 금빛 털 늑대는 뚫어져라 그녀에게 시선을 주었다. 넌, 뭘 원하는 거냐?
마레네가 대답했다.
“대신에... 말아주세요, 공격하지, 전에는, 그를, 시작하기, 의식을.”
... 무슨 소리야? 금빛 털 늑대는 마레네의 말이 다소 어이가 없었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마레네와 막내 동생에게 다시 한번 시선을 주었다.
그런 그의 눈에 마레네의 애타는 눈빛과, 공포에 질렸으면서도 공격 자세를 한 채로 자신과 마레네 사이에 버티고 선 막내 동생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제서야, 금빛 털 늑대는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아하, 그래. 그런 거로군.
금빛 털 늑대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가, 마레네에게 말했다.
“좋다... 그 제안, 받아들이겠어. 의식 전에는 저 녀석의 털 한 가닥 건드리지 않겠다. 늑대 왕의 아들로서 맹세하지. 대신에 그 영력을, 마력을 높이는 방법, 가르쳐줘 당장.”
마레네는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서서 발을 옮기면서 금빛 털 늑대에게 기다려달라고 말을 덧붙였다.
“다소, 시간이, 준비하는 데, 걸립니다.”
“기다려주지.”
마레네가 숲의 나무들 사이로 사라졌다. 금빛 털 늑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다가, 동생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은빛 털 늑대가 뚫어져라 마레네를 주시하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금빛 털 늑대는 새삼스럽게 막내 동생도 이제는 어엿한 성년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 하지만 막내는 올해가 가기 전에 죽을 게 확실하잖아.
금빛 털 늑대는 희미한 동정심이 생겼다. 저 여자, 막내에게 얼마나 감정이 깊은지는 모르겠지만, 그 감정의 깊이만큼 무너져 내리게 될 텐데.
불꽃이 타올랐다.
이곳은 흑단 호수 바로 옆. 나무들이 자라지 않은 풀밭이었다.
마레네는 동그랗게 작은 돌들을 늘어놓고 그 안에 마른 나뭇가지들을 쌓아 올렸다. 그리고 어디서 발견했는지 부싯돌을 품에서 꺼내더니 능숙한 손길로 불씨를 만들어 나뭇가지에 떨어트렸다.
건조한 나뭇가지들은 금방 불이 붙었다. 불씨는 삽시간에 커지더니 금세 붉은빛을 번뜩이면서 주위를 환하게 밝혔다.
주변의 공기도 다소 따뜻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금빛 털 늑대와 루이는 마레네에게서 약간 거리를 두고 앉아, 마레네가 바닥에 늘어놓은 여러 종류의 풀더미에서 빠른 손길로 한 줌씩 풀을 집어 올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아주 능숙한 솜씨였다. 인간들이 축제 때 마을을 찾아온 슈필만의 뛰어난 노래를 넋을 잃고 감상하듯이, 두 늑대도 마레네의 움직임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위칸이 이 숲에 들어온 것은 검은 털 늑대가 태어난 이후에 처음이었으므로, 두 늑대에게 마레네는 생전 처음 보는 위칸이었다. 물론 위칸의 주술 의식을 보는 것도 이것이 처음이었다.
마레네는 풀더미에서 집어 올린 풀들을 조금씩 천천히 불 속으로 떨어트렸다. 그렇게 떨어트리는 데도 순서가 있는 듯했다. 손에 든 풀들을 유심히 살핀 다음 그중에 하나를 골라 떨어트리고, 그 후에 다시 손에 든 풀을 살펴서 골라내어 떨어트렸다. 그러면서 동시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두 마리 늑대 모두 귀를 쫑긋 세우고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처음 듣는 언어였다.
알 수 없는 언어로 모닥불 주위를 천천히 돌던 마레네가 문득 멈추어 서더니, 양팔을 아래로 내린 채 모닥불을 주시했다. 뚫어져라 모닥불을 주시하던 그녀는 어느 순간, 두 팔을 아주 천천히 위로 올리기 시작했다.
마레네의 두 팔이 수직으로 하늘을 향한 순간, 모닥불에서 펑하는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가 기둥처럼 솟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