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탈진한 마레네
마레네는 아까 금빛 털 늑대가 그랬던 것처럼 공중을 쉭 하면서 날아왔다. 금빛 털 늑대 가까이 다가온 그녀는 금빛 털 늑대가 물고 있는 유령에게 다가와 주문을 읊기 시작했다.
이전에 검은 털 늑대도 보았던, 영혼의 응어리를 풀고 피안 세계로 보내주는 주문이었다. 금빛 털 늑대는 그녀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지만, 이번에도 무슨 말인지는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소 낮은 목소리로 끊임없이 외우는 주문은 듣는 것만으로도 기이한 감정이 들게 만들었다. 마음에 긴장을 가져오고, 감각을 집중하게 만드는 그런 언어였다.
파테르노스터 세 번을 읊을 만큼의 시간 동안 주문을 외운 것 같았다. 금빛 털 늑대가 입에 문 유령에게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유령의 시커멓고 쪼글쪼글한 피부가 색깔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그 어두컴컴한 색이 회색으로 변하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더 밝게 변해갔다.
그렇게 변해가던 피부는 어느새 상아색으로 바뀌었다. 불에 타버린 듯한 느낌으로 쭈글쭈글하던 모양새도 변했다. 평범한 인간들에게서 볼 수 있는 피부의 모양으로 바뀌어갔다.
그러면서 유령의 모습은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두꺼운 모직 직물처럼 무게감을 가진 모습에서 얇은 리넨처럼 얇고 하늘거리는 모습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변하던 유령은 어느 순간, 완전히 투명해지더니 공중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이제 금빛 털 늑대의 이빨에는 아무런 덩어리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흉측한 모습의 유령은, 금빛 털 늑대와 마레네의 힘으로 피안 세계로 사라진 것이다.
“... 이제, 다 된 건가?”
금빛 털 늑대가 물었다. 마레네는 고개를 살짝 끄덕인 다음, 금빛 털 늑대의 몸뚱이를 가리켰다.
“자, 보세요.”
금빛 털 늑대의 털이 빛을 내기 시작했다. 원래도 은은한 빛을 발하던 금빛이었지만, 그 광채가 점점 강해지더니 마치 황금의 불꽃처럼 환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
금빛 털 늑대의 영력이 높아진 것이다. 금빛 털 늑대는 놀란 눈으로 자신의 모습을 이리저리 살폈다.
금빛 털 늑대가 뿜어내는 황금빛은 점점 더 강해지더니, 이제 주변을 환하게 밝힐 정도가 되었다.
황금빛은 금빛 털 늑대의 시야도 가렸다. 금빛 털 늑대는 눈앞이 아뜩해지더니, 주변을 인지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금빛 털 늑대는 눈을 떴다.
익숙한 숲이 보였다. 가까이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시각은 새벽인 듯했다. 먼동이 희뿌옇게 밝아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흑단 호수였다. 금빛 털 늑대는 자신이 /통로/에서 돌아온 것을 알았다.
금빛 털 늑대는 잠시 정신을 추스른 다음, 몸을 일으켰다.
금빛 털 늑대는 지금 온몸에서 힘이 넘쳐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털의 황금빛이, 지금은 마법을 쓰지 않고 있는데도 평소보다 더 환하게 빛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마레네의 말대로, 영력이 한 단계 높아진 것이다.
이거 놀랍군. 금빛 털 늑대는 인간 여러 명을 잡아먹거나 초자연적인 존재와 싸우지 않고도 영력을 이렇게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효과도 아주 제대로였다. 이 모든 게 저 인간 계집 덕분이었다.
저 계집, 살려두면 앞으로 쓸모가 많겠군. 그렇게 생각한 금빛 털 늑대는 마레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때, 마레네가 풀밭에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뭐지? 금빛 털 늑대는 눈을 크게 뜨고 마레네를 쳐다보았다. /통로/에서 보여주었던 모습과는 아주 딴판이었다. 기력을 다한 듯이 바닥에 쓰러져 아주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런 마레네를 쳐다보던 금빛 털 늑대는 이번에는 몇 클라프터 떨어진 곳에 있는 막내 동생을 보았다.
루이 역시 뭔가 상태가 이상했다. 정혼 의식을 진행한 것은 마레네인데, 루이는 사냥감을 뒤쫓다가 놓쳤을 때의 모습으로 거칠게 숨을 헐떡이면서 비틀거리고 있었다.
뭐야, 이 녀석들?
금빛 털 늑대는 두 사람을 뚫어져라 관찰했다. 그러는 중에, 가쁜 숨을 내쉬던 마레네가 어느 순간 숨이 멎는 것이 눈에 보였다.
금빛 털 늑대는 깜짝 놀랐다. 저 계집, 왜 저러는 거지? ...이 ‘의식’이 그렇게 힘든 거였나? 그래서 지금 숨이 끊어진 건가?
금빛 털 늑대는 당황스러운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기껏 쓸만한 무언가를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한 번’ 써먹었더니 숨이 끊어져버리다니.
금빛 털 늑대는 혀를 차고, 저 여자에게 더 볼 일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근처에서 비틀거리고 있는 막내 동생을 힐긋 본 후에, 등을 돌려 호숫가를 떠나 자기 영역으로 돌아갔다.
금빛 털 늑대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게 된 순간에, 숲에 해가 떴다.
눈부신 햇살이 호수 근방을 환하게 밝히기 시작했다. 호수 주변을 둘러싼 숲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루이는 늑대 모습을 한 상태였다. 루이는 계속 비틀거리다가, 더 버틸 수가 없어 결국 풀밭에 쓰러졌다.
쓰러진 루이는 사방이 빙빙 도는 느낌에 시달렸다. 그런 와중에, 루이는 마레네가 이전에 한 말을 다시 떠올렸다.
‘연결되어 있어...’
이때 루이는 이 ‘정혼 의식’이라는 것에 대해 조금이지만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차안 세계에서 진행하는 정혼 의식보다 /통로/에서 진행하는 정혼 의식이 훨씬 더 기력을 잡아먹는다는 것을.
그 힘겨운 의식을 금빛 털 늑대의 노여움을 달래려고 진행한 건가? 이거 정말...
루이는 머리가 어질어질했지만, 그나마 기력을 쥐어짜서 마레네에게 다가갔다.
마레네는 풀밭에 누워 있었다. 그런데 숨을 쉬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 놀란 루이는 자신도 모르게 빠르게 발을 놀려 마레네에게 다가갔다.
가까이에서 들여다본 마레네는 정말로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 루이는 인간 모습으로 변신한 다음, 그녀의 팔을 잡고 세차게 흔들기 시작했다.
“이봐... 정신 차려!”
이때 루이는 떠올리고 싶지 않았지만, 어머니가 지옥으로 끌려들어 가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루이는 그 광경을 떨쳐내기 위해 머리를 힘껏 흔든 후, 마레네를 더 세게 흔들기 시작했다.
“정신 차려... 이봐!!”
그때, 마레네의 가슴이 다시 들썩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숨을 들이쉰 마레네는 아주 천천히 다시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호흡을 몇 번 반복하더니, 그녀는 눈을 떴다.
햇빛에 눈이 부신 듯, 마레네는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눈썹을 살짝 찌푸리고 허공을 응시했다.
살아났구나... 루이는 그제야 안도했다.
안도하는 루이의 눈앞에서, 마레네는 다소 지친 기색으로 다시 눈을 감더니 잠들었다.
루이는 그런 그녀의 곁에 계속 앉아있었다. 귀를 비롯해서, 오감을 바싹 긴장시킨 상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