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세룰리안블루와 빙백색
루이가 유니콘을 처음 본 것은 아주 어린 시절, 아마도 5살 정도 무렵이었다.
루이는 그 시절, 아주 호기심이 많았다. 귀에 들리는 것, 손에 만져지는 것, 그리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너무나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러다가 위험에 빠진 적이 많아 어머니에게 여러 번 야단을 맞았지만,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버지가 정해준 영역을 벗어나 수시로 숲으로 모험을 나섰다.
그날은 날씨가 아주 화창했다. 루이는 어머니의 눈을 피해 몰래 영역을 빠져나와 숲을 뛰기 시작했다. 한참 뛰어다니는데, 먼발치에서 환한 빛의 덩어리가 보였다.
땅 위로 해가 뜬 건가? 어린 루이는 그렇게 착각했다. 그러나 오해는 금방 풀렸는데, 그 빛의 덩어리가 천천히 움직이면서 루이 앞으로 걸어왔기 때문이었다. 루이의 앞에서 발을 멈추고 루이를 들여다보는 빛의 덩어리는 바로 유니콘이었다.
루이가 태어나서 숲에서 본 동물들 중에 가장 아름다운 동물이었다. 이렇게 우아하고 눈이 부시면서, 티끌 한 점 없는 신체를 가진 동물을 루이는 처음 만났다. 검댕이나 먼지덩어리 같은 것은 모두 이 동물을 비껴갈 것 같았다. 청결하고 수려한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 이마에 붙은 나선무늬가 들어간 뿔은 루이의 시선을 빼앗아갔다. 루이는 정신이 약간 나간 채로 유니콘을 올려다보았다.
그때 뒤에서 어떤 소리가 들렸다. 루이는 순식간에 온몸이 저절로 긴장되는 것을 느꼈다. 이때 루이는 5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오감은 이미 숲의 동물들 중에서 가장 날카로운 수준이었다. 루이는 소리와 기척, 그리고 냄새를 느끼고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다.
먼발치에 푸른 털 늑대가 와있었다. 루이의 열 번째 형이었다. 그가 눈에 들어온 순간, 루이는 겁을 먹고 온몸을 움츠렸다. 이때 이미 루이는 아버지와, 그리고 형들을 하나 같이 무서워했다. 5살의 그는 나이가 어려 상황을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지만, 어머니를 제외한 자신의 혈육들이 엄청난 힘을 갖고 있고, 마음만 먹으면 그 힘으로 얼마든지 자신을 부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루이가 겁을 먹은 것과 다르게, 푸른 털 늑대는 루이를 공격할 마음은 없는 듯했다. 그는 네 발로 선 채로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한 기색으로 서 있었다. 그런 푸른 털 늑대에게 유니콘이 사뿐사뿐 다가갔다. 그렇게 다가간 유니콘은 푸른 털 늑대와 눈으로 인사를 나누는 듯하더니, 어깨를 나란히 하고 숲 안쪽으로 함께 걸어갔다. 세룰리안블루의 푸른색, 그리고 빙백색의 신체를 가진 두 동물은 그렇게 함께 숲 안쪽으로 사라졌다.
두 동물의 뒷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는 루이에게 유령이 날아왔다. 위험한 유령이 아니라, 루이와 어머니의 시중을 들어주는 착한 유령이었다. 루이는 유령에게 이끌려 자신의 영역으로 돌아갔다.
영역에는 어머니가 약간 화가 난 얼굴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루이는 어머니에게 뿔 달린 하얀 말을 보았다고 얘기했다. 그 말이 열 번째 형이랑 같이 사라졌다고. 루이의 말을 들은 어머니는 잠깐 생각을 하더니, 루이에게 말했다.
“루이, 앞으로 그 두 존재를 보거든 따라가거나 하지 말거라.”
“어, 왜요?”
“둘만의 시간을 방해하면 안 되는 거야.”
그렇게 말한 어머니는 루이에게 한쪽 눈을 찡긋했다.
루이는 어머니의 말대로 했다.
루이가 이 존재를 볼 수 있었던 것은 다섯 살인 루이의 영감이 강한 덕분이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루이의 영감이 천천히 사그라졌고, 여기에 루이는 마법을 쓸 수 없는 늑대여서 그 뒤로 더 이상은 유니콘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늑대 왕의 아들들은 일단 한번 본 생물의 향기를 기억하기 때문에, 유니콘이 이 숲을 찾아오면 모습을 보지는 못해도 왔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그 뒤로 루이는 성년이 되기 전에 대략 2번 정도 더 유니콘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때마다 열 번째 형이 함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1년쯤 전에도 루이는 유니콘이 숲을 찾아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때도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향기와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그녀의 바로 곁에서 푸른 털 늑대의 기척도 느꼈다.
... 푸른 털 늑대가 나중에 늑대 왕이 된다면, 그때는 유니콘 신부를 맞이하게 되겠군.
루이는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가, 고개를 휘저어 부정했다. 푸른 털 늑대가 늑대 왕이 된다는 건, 루이가 죽는다는 얘기였다. 루이는 이렇게 암울한 미래가 떠오를 때마다 모두 부정해 버리기로 했다.
마레네가 자면서 내뱉은, 중얼거리는 듯한 말은 루이를 놀라게 만들었다. 루이는 바로 열 번째 형과 가끔 이 숲을 찾아오는 아름다운 생물을 떠올렸다. 그런데... 피안 세계가 뭐?
‘이거... 뭔가 다음번 결투 의식과 관계된 건가?’
그런 생각이 든 루이는 더 기다릴 수가 없었다. 루이는 사람 모습으로 변한 다음, 누워있는 마레네의 팔을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팔을 흔들지 않아도 될 거였다. 마레네가 눈을 떴기 때문이다. 정말 갑자기 번쩍 눈을 뜬 그녀는, 고개를 모로 돌려 루이와 눈을 마주쳤다. 루이의 눈을 바라보는 그녀는 입가에 빙긋 미소를 짓더니 입을 열었다.
“눈동자... 보석 같아...”
루이는 몸이 굳었다. 잠시 그런 채로 있는데, 얼굴에 열이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마레네는 그런 루이 앞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루이는 달아오른 얼굴을 진정시킨 후에, 옷에 붙은 이파리들을 털어내고 머리카락을 매만지는 마레네에게 물었다.
“너 아까 그거... 무슨 말이야?”
마레네는 힐긋 뒤를 돌아 루이와 눈을 마주쳤다. 무슨 소리지 하는 뜻이 담긴 눈빛이었다. 루이는 재차 물었다.
“뿔 달린 말이... 푸른 털 늑대를 데리러 온다고 했잖아? 피안 세계가 어쩌고 하면서.”
마레네는 잠시 침묵했다. 그녀는 눈동자를 살짝 위로 올리고, 루이의 말을 천천히 곱씹어 생각하는 듯했다.
겨우 찰나였지만, 그녀의 침묵이 루이의 애를 태웠다. 루이는 다시 물어보았다.
“무슨 말이냐고?!”
“... 남기고... 뿔을... 사라질 거야... 그 뿔을... 그러면...”
마레네는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이거 정말 갑갑하군. 루이는 울컥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루이의 모습을 보고도 마레네는 그리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낮게 중얼거렸다.
“올 거야, 날, 조만간에, 그녀가, 만나러.”
...? 유니콘이 마레네를 만나러 온다고? 어째서?
마레네의 낮게 중얼거리는 말은 계속됐다.
“하고 있어, 각오를, 푸른... 는.”
마레네의 말을 들은 루이는 직감적으로 알게 됐다.
다음번 결투 의식을 아들들 중 누가 치르게 될지 지금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의식을 치를 둘 중 하나는 분명히 푸른 털 늑대이며,
그리고 결과는 푸른 털 늑대의 패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