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그리셀다의 예지몽
“믿기 어려운데.”
“틀림없어. 내 이 머리통에 내려 꽂히는 듯한 예지몽으로 계시를 받은 거라고!”
그리셀다가 호통을 쳤다. 덕분에 좁은 오두막이 순간 흔들렸다. 요아힘은 눈앞의 노인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한마디 덧붙였다.
“굳이 지난 일을 떠올리고 싶지는 않지만...”
요아힘은 오두막의 천장 쪽으로 눈동자를 올렸다가, 약간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노파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 예전에도 만드라고라 뿌리라면서 나한테 팔려고 했던 그 빼빼 마른 약재, 알고 봤더니 모양만 만드라고라와 비슷한 그냥 잡초 뿌리였잖아.”
“어험, 험!! 이 나이를 먹으면 누구나 실수를 하게 돼!”
“그리고 일전에도 그리폰의 발톱이라면서 또 팔아달라고 했지만 자세히 봤더니 그냥 모양이 괴상한 조약돌이었고.”
“어허! 할망구라 눈이 어두워서 헷갈려서 그래!! 자네는 이 나이쯤 되면 안 그럴 거 같아?!”
“아, 그리고 또 벨라돈나를 잘못 섞어서 나한테 주는 바람에 그걸 먹고 죽을 뻔했던 일도...”
“아 거 참, 이제 다 지난 일 갖고 뭘 그렇게 주절주절 물어뜯고 난리야?!!”
그리셀다가 다시 호통을 쳤다. 좁은 오두막이 다시 흔들거렸다. 요아힘은 어깨를 약간 움츠리고, 백발이 성성한 노인에게 눈길을 주었다. 나이를 먹으면 성품이 둥글해진다. 어디선가 그런 얘기를 들은 것 같은데, 뭐 이 할망구는 예외인 듯하군... 아니 오히려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까칠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요아힘은 그리셀다가 좀 전에 한 말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그리셀다의 확신에 찬 눈빛, 그걸로 보건대 왠지 거짓말이 아닌 것 같다.
요아힘은 잠시 틈을 두었다가 그리셀다에게 다시 물었다.
“유니콘의 뿔을 손에 넣을 수 있다니... 그것도 마차로 하루만 가면 닿을 곳에 그런 귀중한 물건이 있다니... 솔직히, 믿기 어려워. 나도 온갖 곳을 돌아다니면서 수많은 약재들을 사고팔고 했지만, 유니콘의 뿔은 말로만 들었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금붙이에 진주 가루, 은덩어리, 그리고 그 뭐더라 아다마스 원석까지도 봤지만, 유니콘의 뿔은 한 번도... 그거, 실재하는 거 맞아?”
“자, 다시 한번 얘기해 주지! 이 그리셀다 님의 어젯밤 꿈에...”
유니콘이 숲으로 내려오는 모습을 보았다. 아주 눈부신, 하얀 유니콘이었다.
그 유니콘이 눈물을 흘리며 뿔을 떨어트리는 광경이 보였다.
“그 꿈을 꾸고서, 진땀을 뻘뻘 흘리면서 깨어났어.”
예지몽을 꾼 뒤에 깰 때면 반드시 그렇다고 했다. 그리고 잠이 깨었을 때, 자신도 모르게 입으로 이런 말을 중얼거렸다고 했다.
“마차로 하루 걸리는 거리... 무서운 호수... 다음 달 보름에... 뿔을 손에 넣을 수...”
요아힘은 그리셀다가 한 말 중에 이 말에 집중했다.
‘마차로 하루 걸리는 거리... 무서운 호수...’
요아힘이 미심쩍어하면서도, 그리셀다의 말을 계속 들어주고 있는 것은 흑단 호수 숲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요아힘은 다시 시선을 천장으로 올리며 입을 열었다.
“여기서 그 정도 거리에 있는 호수라면... 거기라면, 확실히 유니콘의 뿔이 있을 법도 해.”
“그렇지, 내 말이 일리가 있지. 응?!”
그리셀다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요아힘은 약재상이었다. 행상과 겸업으로 하는 일인데, 그는 이 일대에서 제법 유명했다. 믿을만한 상인이라는 평판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는 남다른 특기가 있었다. 바로 약재가 진짜인지 판별할 수 있다는 거였다.
그는 코가 유달리 예민했고, 혀와 손끝의 감각도 매우 섬세했다. 그 때문에 한번 맛을 본 약재의 맛이나 냄새, 질감 등을 모두 기억했고, 비슷한 모양과 질감을 가진 약재들 중에서 진짜 약재를 골라낼 수 있었다. 가짜 약재를 가루로 빻고, 말리고 또 모양새를 바꾸어도 요아힘의 감각은 속일 수 없었다.
가짜 약재가 유통되기 쉬운 시대에 요아힘의 이런 능력은 아주 유용했다. 그리고 요아힘은 꽤 고지식한 인물이어서, 값을 후려치거나 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정직하게 장사를 하는 것인데, 그 덕분에 약재상으로써 사람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정직한 약재상, 요아힘은 그리셀다를 처음 본 때를 떠올렸다.
아마도 두 해 전인 듯했다.
요아힘은 그날도 마차를 타고 먼 길을 다니며 행상을 하던 중이었다. 그러다 어느 마을에 들렀는데, 때마침 폭풍우가 몰아쳐 그곳에서 발이 묶였다.
밤이 되어서도 폭풍우가 계속됐기 때문에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러는 중에 요아힘은 약재가 상하지 않을까 신경이 쓰여서, 비가 몰아치는 와중에 여관 밖으로 나와 근처에 세워둔 자신의 마차로 갔다.
그런데, 마차에 예상치 못한 ‘손님’이 와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도둑이라고 해야 할까.
몸집이 조그만, 노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짐칸의 문을 열어젖히고 안쪽을 신나게 뒤지고 있었다. 요아힘은 이런 ‘손님’들을 많이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전혀 당황하지 않고 일단 근처에서 몽둥이로 쓸만한 나무토막을 찾아냈다. 그런 다음, 아주 조용히 ‘손님’의 뒤로 다가가 힘껏 뒤통수를 내려쳤다!
요아힘의 공격은 정확했지만, ‘손님’의 반사적인 움직임이 아주 빨랐다. 요아힘의 몽둥이는 재빨리 고개를 꺾은 손님의 머리통을 간발의 차이로 빗나갔다.
투덜거리는 요아힘의 눈에, 휙 고개를 돌린 손님의 얼굴이 들어왔다. 어두운 상태에서도,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얼굴에 자글자글한 주름이 가득한, 너저분한 차림새의 할멈.
요아힘은 혀를 찼다.
“나 이거야 원... 살 날도 별로 안 남은 주제에, 그나마 재촉하고 싶은 건가, 할망구?!”
“네 이놈!! 감히 누구한테 그런 말투를!!”
부정한 ‘손님’은 얼굴도 두꺼운 듯했다. 아주 당당하게 요아힘에게 소리쳤다.
“이 일대 제일가는 고위급 위칸인, 나 그리셀다에게 머리부터 조아려라!!”
“고위급 위칸...? 그리... 셀다...?”
요아힘은 상인이라 사방을 돌아다니는 만큼, 알고 있는 정보도 매우 많았다. 고위급 위칸이라면 그도 몇몇 유명한 이름을 들어본 바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위칸이 있다는 얘기는 처음 들어! 그냥 대충 주워섬겨서 뻥 치는 거 아냐, 할망구?!”
“뭐, 뭐가 어째?!”
그리셀다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슬쩍 보면서, 요아힘은 들고 있던 몽둥이를 노파에게 향하며 으름장을 놓았다.
“나도 뭐 죽을 날 받아놓은 할망구한테 험하게 굴고 싶지 않으니까, 그 손에 든 약제 내려놓으시지. 도시에서 그거 기다리는 손님들 있다고.”
그리셀다가 훔친 것은 니베움이라는 풀을 말린 후 약으로 만든 것으로, 흑단 숲 근처 마을에서만 가져올 수 있는 희귀한 약제였다. 지금 마차에 실린 것 중에 가장 비싸게 팔 수 있는 물건이었다.
물론, 그리셀다는 약제를 내놓지 않았다. 그녀는 요아힘에게 내뱉듯이 말했다.
“이거랑 바꾸는 거 어때... 고위급 위칸의 마력이 깃든 물건 하고?”
“뭐?”
“안개를 몰고 다니고 노랫소리로 유령을 사라지게 만들 수 있는, 위대한 위칸 나 그리셀다 님의 마법 도구를 내어주지!”
그리셀다는 하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비바람 속에서도 그녀의 웃음소리는 쩌렁쩌렁 울렸다.
물론 이 말이 거짓말이라는 건 금방 탄로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