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황금꽃
그리셀다는 품속을 뒤지더니, 갓난아기 주먹만 한 무언가를 꺼내 요아힘에게 들이밀었다.
“자, 봐라!!”
요아힘은 노파가 내민 것이 뭐 별거 있겠나 생각하고 힐긋 눈길을 던졌다. 그러나,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처음에는 아다마스 원석인가 했다. 투명한 돌멩이 같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다마스와는 투명함의 정도가 완전히 달랐다. 아다마스가 다소 뿌옇고 불투명하다면, 노파가 내민 돌멩이는 ‘완전히 투명했다’.
겨울에만 볼 수 있는, 불순물이 전혀 없는 이슬만 모아놓은 물을 얼린 아주 깨끗한 얼음덩어리 같았다. 그리고 사람 손에서도 전혀 녹지 않는 얼음덩어리.
이미 여기서부터 요아힘을 놀라게 만들었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얼음덩어리 속에는 꽃이 들어 있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비바람이 몰아치는 밤중이라, 요아힘은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닌가 하고 눈을 비빈 다음 다시 한번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잘못 본 게 아니었다. 노파의 손에 든 티끌 하나 없이 투명한 보석 안에 황금빛 꽃이 들어 있었다.
그것도 결코 대충 만든 것이 아니었다. 요아힘은 장인들과도 여러 번 만난 적이 있고 그들의 공예품도 자주 보았다. 그런 요아힘이 보기에 이 보석 속에 들어간 꽃은 슬쩍 보아도 일류 장인의 솜씨였다.
놀랄 상황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요아힘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이 보석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그런 그를 보고 히죽 미소를 지은 그리셀다는 낮게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그러자...
얼음 보석 속의 황금꽃이 파르르 떨더니,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역시 잘못 본 게 아니었다. 보석 속에 고정되어 있는 조각인가 싶었던 황금꽃이, 그리셀다의 휘파람 소리에 반응해 빙그르르 돌아가고 있었다. 황금빛의 꽃잎이 살짝 펼쳐지는 것도 요아힘의 시야에 들어왔다.
요아힘은 입을 떡 벌리고 얼음 보석을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이런 종류의 공예품은 요아힘도 난생처음 보는 거였다. 세상에는 손재주가 좋은 사람들이 많기는 하다. 하지만 요아힘이 아는 한, 이렇게 투명한 물질 안에 황금으로 꽃을 조각해 넣을 수 있는 장인은 없었다. 아니, 애초에 무슨 재료로 만들었는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거기에 주위 소리에 맞춰 움직이기까지 하다니, 이건 주술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넋 나간 표정으로 ‘얼음 보석’을 들여다보는 요아힘에게, 그리셀다는 그것 봐라 하는 태도로 의기양양하게 요아힘에게 말했다.
“이깟 약제 하나로 퉁치기에는 아깝기는 하다만... 뭐, 너그럽게 내어주지.”
요아힘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그리셀다를 잠시 관찰했다. 그리셀다는 득의양양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요아힘은 잠깐의 관찰 끝에,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이 얼음 보석... 당신이 조각한 건 아니지?”
“오, 그건 아니야.”
그리셀다가 냉큼 대답했다. 요아힘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리셀다가 말을 이었다.
“이걸 어디서 얻었느냐 하면...”
말을 마칠 수는 없었다. 요아힘이 손에 든 몽둥이로 그리셀다를 냅다 내려쳤기 때문이다.
그리셀다는 비명도 못 지르고 바닥에 쓰러졌다. 불시의 일격이어서 피하지 못했다.
요아힘은 쓰러진 그리셀다의 손에서 재빨리 얼음 보석을 낚아챘다. 그리고 그녀의 옷가지도 뒤져보았다. 달리 더 값나가는 것은 없는 듯했다. 요아힘은 얼음 보석을 품에 집어넣은 다음, 기절한 그리셀다의 팔을 잡고 질질 끌고 가 근처에 있는 개울에 대충 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틴 시時가 되자, 폭풍우가 거짓말처럼 그쳤다. 요아힘은 자신이 한 짓이 들통날 것도 두렵고 해서, 비바람이 잦아드는 것이 보이자마자 냉큼 마차를 몰아 도시로 달려갔다.
요아힘이 도시로 가져온 ‘얼음 보석’은, 글자 그대로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도시 거주민들과 장사를 위해 모여든 상인들이 몰려들어 ‘얼음 보석’을 구경하겠다고 난리를 쳤다. 요아힘은 이 물건의 소문이 도시 전체에 퍼진 듯하자, 광대를 고용해 손님을 끌어온 다음, 구경하겠다는 사람들에게 입장료를 받았다. 그렇게 모은 손님들 앞에서 광대가 보석을 옆에 두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그 노랫소리에 맞춰, 얼음 보석 안의 금빛 꽃이 빙글빙글 도는 모습에,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공연’을 마친 저녁이 되자, 요아힘의 주머니는 두둑해졌다. 요아힘은 고생한 광대에게도 두둑이 금화와 원석 등을 챙겨주고 돌려보낸 다음, 마차의 짐칸 안에 들어와 앉아 손에 넣은 귀한 ‘얼음 보석’을 들여다보았다. 이야, 이번 장사는 운이 좋네.
째지는 기분으로 보석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마차의 천장에서 뭔가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요아힘은 보석을 품속에 집어넣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천장 위에 무언가가 있었다.
‘무언가’는 빠른 속도로 움직여 짐칸의 문 쪽으로 오더니, 거기서 대뜸 바닥으로 뛰어내렸다가 튕겨 일어나며 문 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으아아아악!!”
요아힘은 비명을 질렀다. 짐칸의 문으로 고개를 들이민 천장 위에 있던 사람은 그리셀다였다!
그리셀다는 처음 만났을 때보다 지금 모습이 더 흉물스러웠다. 머리는 산발이었고, 온몸에 구정물을 뒤집어쓴 상태였다.
그리셀다가 어떻게 자신의 눈앞에 있는 건지, 요아힘은 알 길이 없었다. 그런 그에게 그리셀다가 한 마디 내뱉었다.
“네놈이 마차를 출발시킬 때부터, 천장 위에 매달려 있었다!!”
... 겉모습은 죽을 날 받아놓은 할망구인데, 알맹이는 차력사였구먼. 요아힘은 얼굴에 핏기가 가시는 것을 느꼈다.
그런 요아힘에게 그리셀다가 몸을 날렸다! 요아힘은 자신에게 덤벼든 그리셀다를 잽싸게 피해 짐칸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러나 그리셀다가 조금 더 빨랐다. 그리셀다는 요아힘의 등에 올라타더니 그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켁! 이거 못 놔?!”
“황금꽃하고 돈을 내놔!!”
“... 무슨 돈...?”
“내 황금꽃으로 네가 벌어들인 돈 말이야!! 절반은 내 몫이야!!”
“... 말도 안 돼... 그게 왜 네 돈이...”
“내가 마법을 구사해서 만들어낸 황금꽃이야!! 그걸로 번 돈이니까 절반은 내 돈이라고!!”
“... 거짓말하지 마!!”
요아힘은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던 그리셀다의 팔을 잡아채어, 있는 힘껏 내동댕이쳤다. 그리셀다는 던져지면서 짐칸의 벽에 부딪쳤다. 쿵! 몹시 아픈 모양으로, 그리셀다는 눈을 질끈 감으면서 신음소리를 냈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요아힘이 소리쳤다.
“넌 위칸이 아니야! 위칸들은 머리 뒤쪽에 광륜을 갖고 계신다고!!”
그리셀다는 눈을 번쩍 뜨고, 요아힘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리셀다는 놀란 눈으로 요아힘과 시선을 마주쳤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그리셀다가 말했다.
“너도 설마... 마레네 님과 만나본 적이 있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