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흑단 호수 숲의 늑대 왕

28화 정직한 장사꾼과 점쟁이 할멈

by 태수련

“마레네 님...? 그게 누군데?”

요아힘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그리셀다는 그의 이 반응으로 요아힘이 ‘마레네 님’을 모른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니, '광륜'은 아는데 ‘마레네 님’은 몰라...?

뭐 그렇다면 더 자세히 설명해 주지.

옷을 툭툭 털며 몸을 일으킨 그리셀다는 요아힘에게 말했다.

“마레네 님은... 내가 아는 한 가장 위대한 위칸이시다.”

“... 무슨 소리야? 언제 만나본 적이 있어?”

요아힘의 말에 그리셀다는 옛 추억을 떠올렸다.

아, 향기로운 풀 향기... 엘더 플라워가 만발한 초원...

언제 떠올려도 행복해지는 기억이었다. 그리셀다는 미소를 지으며 추억을 더듬다가, 문득 요아힘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말을 이었다.

“네놈이 훔쳐간 그 ‘황금꽃’, 그분의 인도로 내가 /통로/에서 찾아온 물건이야. 무지하게 귀한 거지.”

“/통로/라니...? 그 절벽 사이로 청록색 강이 흐르는 그곳 말하는 건가?”

요아힘의 이 말은 그리셀다에게 엄청난 충격을 준 듯했다. 그리셀다는 눈을 화등잔만 하게 뜨고, 요아힘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요아힘 역시 눈앞의 노파에게 뚫어질 듯한 시선을 주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장소. /통로/를 두 사람 다 알고 있다는 것은 특별한 유대감과, 그리고 신뢰를 주었다.

요아힘은 그리셀다가 어디서, 어떻게 ‘황금꽃’을 찾아냈는지 들어보기로 했다. 그녀의 얘기는 이랬다.

“어렸을 적에 죽을 뻔한 적이 있었지.”

그리셀다는 마차의 천장을 올려다보며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그리셀다는 그때 여덟 살 정도였다고 했다. 마차를 타고 가족들과 함께 길을 가던 중에, 운 나쁘게도 노상 강도단의 습격을 받았다고 했다.

“정말 무서웠어. 부모님은 모두 살해당하고...”

그리셀다와 두 명의 여동생들은 노상 강도단에게 묶여서 끌려가는 처지가 되었다. 아마도 도시 쪽으로 가서 팔아버릴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여동생들은 강도단에게 습격당할 때 입은 상처가 잘못되어, 끌려가던 도중 숨이 끊어졌다.

“나 혼자 남았다는 걸 알게 됐을 때, 어떻게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강도 놈들이 동생들의 시신을 살펴보러 다가왔을 때, 마차 문밖으로 도망쳤지.”

하지만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성인 남자들이 고작 여덟 살 꼬마를 못 잡을 리가 없으니까. 그리셀다는 무서운 강도들을 피해 죽도록 뛰다가, 그만 절벽에서 굴러 떨어졌다.

“이제 죽는구나 했어. 먼저 간 가족들을 따라가게 됐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생사를 헤매던 그리셀다의 눈앞에,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 펼쳐졌다고 한다.

깎아지른 절벽, 그리고 그 아래쪽으로 흐르는 에메랄드 빛깔 강.

“무슨 일인가 하고 있는데, ‘그분’이 나타나셨어.”

바람에 나부끼는 흰옷을 입고, 머리 뒤쪽에는 광륜이 떠 있는 여자가 그리셀다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리셀다는 처음에, 그녀가 천사라고 생각했다고.

“그리고서 며칠이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그곳에서 그분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 그분은 그곳을 /통로/라고 부르셨지.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이어주는 곳이래.”

그리셀다를 돌봐준 존재는 고위급 위칸이라고 했다.

그리셀다는 그렇게 그 위칸과 지내다가, ‘때가 되었다’는 그 위칸의 말에 따라 차안 세계인 이곳으로 되돌아왔다고 했다.

돌아오기 직전에, 그리셀다가 위칸에게 이름을 물었더니, 위칸은 ‘마레네’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 뒤로 난, 예지몽을 수시로 꾸고, 아주 가끔씩 /통로/로 갈 수 있는 틈이 생길 때마다 들어갔다 나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됐어.”

그리셀다가 그렇게 말을 이어갔다. 요아힘이 훔쳐간 ‘황금꽃’은, 그녀가 일전에 ‘입구’가 생겼을 때 들어가서 가져온 것이라고 했다.

“단언컨대, 어떤 장인도 만들 수 없는 물건일걸.”

그렇긴 하지. 요아힘도 말은 안 했지만 동의했다. 고개를 끄덕거리는 요아힘을 향해, 그리셀다가 말을 건넸다.

“내가 아니었으면 손에 넣을 수 없었던 물건 아니야... 아까 보니까 사람들 모아놓고 한몫 챙기는 거 같던데, 내가 아니면 가능했겠느냐고. 그러니까, 수입의 절반을 당장 내놓으시게.”

요아힘은 눈앞의 지저분한 노파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요아힘은 수익은 적절하게 분배하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그리셀다의 주장이 충분히 타당하기도 했고. 하지만 얻은 수익을 주기 싫은 것은, 일단 그리셀다란 사람 자체에 대한 반감이 크기 때문인 듯했다.

그러나 어쨌든 요아힘은 장사꾼이었으므로, 그리셀다의 말에서 돈이 될 만한 건더기를 찾을 수 있었다. 그는 그리셀다에게 제안했다.

“그럼 나하고 같이 일해보는 거 어때?”

“... 엥?”

“난 말이야, 보다시피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장사를 하는데, 제법 이름을 얻은 몸이야. 그리고 당신은 여기저기서 얼음 보석 같은 걸 가져올 수 있는 사람이고. 당신이 앞으로 그 /통로/에 가서 값진 걸 가져왔을 때 내가 그걸 판 다음 수익을 나눠주지. 어때?”

호오... 그리셀다가 눈을 반짝거렸다.

그리셀다는 이 마을 저 마을 떠돌아다니면서 꿈을 해몽해 주고 점을 쳐주면서 수익을 얻고 있었다. 그렇게 지내는 그녀에게 요아힘의 제안은 제법 괜찮은 거였다. 그리셀다는 요아힘과 동료가 되기로 했다.

“뭐 동료가 된 기념으로, 당신이 슬쩍해 간 니베움 약제는 안 돌려줘도 돼.”

요아힘이 말했다. 그리셀다는 눈을 둥그렇게 뜨더니, 히죽 미소를 지었다.

이후로, ‘정직한 장사꾼 요아힘과 점쟁이 할멈 그리셀다’는 동행하면서 지내게 되었다. 요아힘은 이 지저분한 할망구와 사실 함께 있는 게 싫었지만, 그녀가 /통로/에서 가져올 보물을 생각하면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요아힘이 생각하지 못한 게 있었다.

그리셀다는 /통로/에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녀가 /통로/에 갈 수 있는 때는 굉장히 드물었다. 그리고 /통로/로 가는 틈이 열린다 해도, 그녀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그렇게 들어갔다 온다고 반드시 이런 ‘황금꽃’ 같은 보물을 가지고 올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소설] 흑단 호수 숲의 늑대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