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이른 초 여름이었다. 그날 난 늦잠을 잤다. 진작 엄마가 깨웠지만 잠이 많던 여느 초등학생들 같이 나는 자주 늦잠을 잤다.(그렇게 늦잠을 많이 잤는데 왜 키는 많이 안 자랐나 싶다.) 그날도 어김없이 늦잠을 자고 아침밥을 대신해 아마 엄마의 잔소리와 시리얼이나 냉동해 두었던 떡을 먹었을 것이다. 내가 다니던 그 사립 초등학교에는 셔틀이 다녔다. 그 셔틀의 기사님은 절대 기다려주지 않았다. 늦잠을 자주 잤지만 걱정이 없었다. 나의 달리기 실력을 누구보다 우월하다고 믿고 있고 실제로 또래에 비해 빨랐으니, 뛰어가서 셔틀을 잡으면 끝이었다. 허겁지겁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난 경마경기를 하는 경마 말처럼 뛰어나갔다. 내가 뛰어가는 모습 뒤로 여느 때와 같이 엄마는 내가 뛰어가는 모습이 보이는 창문을 열고 “조심히 뛰어가”라고 소리치셨다. (그때도 엄마는 내 걱정뿐이었다.)
그렇게 달려 셔틀을 타는 곳을 거의 다 와서 나무 밑의 종이 박스 하나를 보았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그 상자가 움직인 것을 보았다. 허깨비를 보았나 했지만 분명하고 확실하게 박스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겁은 많았지만 호기심 가득했던 난 박스에 가까워졌을 때 뜀박질을 멈췄고 조심스레 다가갔다. 끝내 난 잠이 덜 깨 퉁퉁 부어있는 눈으로 박스 안 그들이 무엇인지 알아보려 애썼다.
그들은 털 뭉치였다.
그들은 작았다.
그들은 움직였다.
그 둘은 작은 새끼 고양이었다.
초딩의 눈이 커졌다. 난 그들과 교감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초딩은 너무 작은 그들을 바라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내 주위를 둘러봤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기에, 이미 그 사람은 떠난 듯했다. 그러다 휴대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최후의 수단으로 맞춰둔 알람이었다. 나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뛰어갔다. 다행히 셔틀을 탔고 나는 3분체 되지 않는 그들과의 만남을 계속해서 돌려보았다. 등교를 하고도, 수업 시간에도 점심을 먹을 때도, 점심시간에 흙장난을 할 때도. 나는 하교하기만을 기다렸다. 그들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으면 했다. 셔틀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칼같이 시간을 지키시는 셔틀 기사님의 정겨운 인사를 무시한 체 그 나무 밑으로 뛰어갔다.
그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난 놀이터의 그네에 힘이 빠진 채로 앉았다.(본인은 놀이기구를 못 타기에 어려서부터 그네를 벤치로 사용해 왔다.) 이제 와서 보니 그게 나의 첫 이별이었던 것 같다. 하루 종일 온 신경은 그 고양이들이었고, 난 온 마음을 투자했다. 서둘러 돌아왔을 땐 이미 떠나고 없었다. 그건 이별이다. 어린 초딩의 심술이 전부였지만 그건 분명 내가 처음 겪어보는 이별이었다.
돌아보니 어린 초딩은 어른의 나보다 나은 사람이었다. 그 어린 초딩은 떠나간 것을 위할 줄 아는 아이였고, 떠나가는 모든 것들을 욕하고 불행을 바라는 나지만 어린 초딩은 달랐다.
그네에서 일어난 난 집으로 향했고 다시 한번 그 나무 밑을 돌아보며 생각했다.
“버려져있던 걔네가 행복하게 살아줬으면 좋겠다. 7시간을 못 기다리고 사라진 걔네가 밉긴 하지만….. 나보다 잘 챙겨줄 수 있는 주인을 만났으면 좋겠어”
그렇게 21살이 되어버린 초딩은 요즘도 지나가다 혼자 뜬금없는 곳에 버려져있는 박스가 보이면 그 박스를 확인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