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지하철에서 꽃을 무릎에 둔 남자를 봤다. 지하철에 빼곡한 사람들을 구경하던 내 눈에 마음에 드는 흰 꽃이 눈에 걸렸다. 과연 저 남자는 공격수일까 수비수일까?
아 난 꽃을 주고받는 이들을 보고 공격수와 수비수라고 칭한다. 왜인지 모르게 꽃을 줄 때 어떤 의미를 담고서 상대에게 건네는 그 모습이 마치 공격하는 것처럼 보인다. 절대나쁜 의미는 아니고 그 건네는 모습이 용기 있고 과감해 보이기 때문이다. 또 받는 사람은 공격하는 사람이 무안하지 않게 잘 수비해야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좌우지간 그 남자의 표정은 뭐랄까 아무리 봐도 공격수에 가까웠다 피곤해 보였고 생각이 많아 보였다. 공격 전 긴장을 하는 거라 생각했다. 뻔한 스토리는 싫었던 난 그 남자가 수비수라고 생각하기로 했다.(무슨 권리인지는 모르지만 이건 3인칭 시점의 특권임.) 꽃을 받아본 적 없는 내가 그 공수 관계에서 나오는 부러움, 필요도 없는 그 부러움이 가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 멋대로 믿기로 했다.
그 남자는 꽃을 받은 사람치고는 그리 좋은 표정을 가지고있지 않았다. 그때 “혹시 저 사람도?” 왜 그런 날 있지 않나뭐하나 풀리는 것도, 마음에 드는 것도 없는 날 말이다. 날씨부터, 오늘 말린 머리, 낮잠의 퀄리티라던가, 릴스의 알고리즘, 예고도 없던 교통체증, 하물며 신호 대기하는 차들만 봐도 마음에 안 드는 그런 날들 말이다. 난 그런 날마다 최대한 티를 안 내는 편이다. 그런 날 우리의 기분을 망가트리는 건 뜻밖의 것이기에, 그런 뜻밖의 것들에게 긁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토해내는 사람은 나 스스로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난 그런 날 과자 부스러기처럼 긁혀 떨어지는 감정을 숨기고 치우는데 집중한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표정이나 말투에서 툭툭 묻어 나올 때가 있다. 표정은 아마도 숨기는데 너무 신경 써서 짜증스러운 표정이기보다는 지친 표정에 가까울 거다. 말투에서 티나 날 땐 내가 아직 좋은 사람이 되지 못했다는 증거인 것 같다. (아직 사회화도 덜 되었단 증거겠지.) 또 말투에 대한건 주로 가족을 상대로 툭툭 튀어나오니 그럴 때마다 독백을 뒤집어쓰곤 한다.
난 상상했다. 만약 이런 날 꽃을 받으면 어떡해야 할까?
공격수도 나름 수많은 연습과 시뮬레이션 끝에 용기를 담아 공격할 건데, 거짓말처럼 맞아떨어진 타이밍에 감정을 숨기느라 바쁜 내가 상대가 실망하고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어떤 수비를 해야 될까? ‘좋은 사람’에 충실하게 조금의 반응도 안 한다면 공격수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을까? 또 고맙다는 감정을 조금 흘려보냈다가 긁혀 떨어져 나온 감정이 나도 모른 체 묻어 나오면 어떡하는가? 나도 사람인데 말이다. 그건 또 그거대로 좋은 사람에서 멀어지게 된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의 생각들을 반추하며 안절부절못하다 결국에는 지하철을 그 남자보다 먼저 내리게 되었다. 여전히 어떡할지 답을 찾지 못한 채. 언젠간 나도 그런 날 수비수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그 남자는 어떻게 그 상황을 잘 넘기고 그 이쁜 꽃을 무릎에 두었는지 모르지만. 내가 아직 어리다는 사실로 그 생각들을 덮어두기로 한다. 나만의 수비법을 찾을 진짜 좋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