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보았을 때 놓친 것이 많을까 놓은 것이 많을까?

by 태은

놓친 것도, 놓은 것도 너무 많다. 그래서 이제는 ‘놓’라는 단어만 봐도 슬퍼질 지경이다. 그 둘을 저울질하기 위해서 둘의 차이점을 이해해 본다. 분명한 타의와 자의의 차이. 하지만 내게 어떤 것을 놓았는지 물어본다면 나는 “내가 놓은 건 하나도 없어, 상황이 그렇게 만든 거지”라고 대답한다. 그래 난 거의 모든 것을 놓쳤다.


어려서부터 운동을 했다. 이때부터 나는 놓친 게 많았다. 모두의 기대를 받고 무대에 섰던 성악을, 박수와 환호를 놓았다. (내 인생의 1차 전성기라 말할 수 있다.) 너무 어려서 놓았다는 개념조차 몰랐던 시절 나는 그때의 어린이가 왜 운동을 선택했는지 물어보고 싶다. 다시 돌아가서 나는 어려서부터 운동을 했다. 아마 모든 직업이 그렇겠지만 유독 운동선수는 놓아야 할 게 많았다. 늦잠을 놓아야 했고, 건강에 해로운 음식도 놓아야 했고, 친구와의 등하교도 놓아야 했고, 가족과의 시간도, 노는 것도, 만나는 것도, 나이대에 걸맞게 탈선하는 것 등 난 놓아야 할 게 많았다. 그것들을 포기해야지만 운동을 할 수 있었다. 엄마는 그런 걸 다 놓고 싶지 않다면 운동을 그만두라고 하셨다. 그럼에도 운동이 좋았다. 그래서 계속 운동을 했다. 커갈수록 또래 애들과 멀어져 가는 것을 느꼈다.(여기에는 내 찐따 같은 성격이 한 몫했을 수도) 실제로 멀어졌을 수도 있다. 놓은 것들에 대한 결핍이 강해졌다. 그래서 최대한 놓지 않으려 했다. 고생은 좀 했지만 잠도 주말이면 시체처럼 잤고, 건강에 안 좋은 음식도 틈틈이 먹고, 가족도 챙기고,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놀고, 약간의 탈선도 즐겼다. 그런데도 또래들과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허무했다.


고로 난 놓친 거다. 놓아야 했지만 놓지 않았고, 그럼에도 멀어짐을 느꼈다면 그건 놓친 것이 분명하다. 옛날에는 땔 수 없는 사이의 친구와 인연들이 자연스레 멀어질 때도 있었으며, “넌 운동해야 되니까..”라는 말을 운동화끈을 묶고 푸는 것보다 더 많이 들었다. 운동이 나를 삶에서 밀어낼 때면 그 어린이를 원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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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의 일을 겪고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는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입시에 겨우 대학에 입학했고, 지금은 음대에서 과탑을 먹고 있다고 했다. 스물을 즐겼냐고 물어봤다. 전공 연습하느라 못 즐겼다고 한다. 못 즐겼다는 건 놓았다는 거다. 같은 시간이 주어졌는데 그 친구는 목표를 위해 놓았다. 뭔가를 위해서는 놓아줄지도,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나도 그랬던 때가 있었는데..(그랬나 이제 긴가민가 하다.) 선택은 오로지 자신을 위한 것이다. 만약 나도 목표를 위해 단호히 모든 걸 놓았다면 오히려 내가 굳이 애쓰지 않아도 그 간극이 좁아지지는 않았을까?


세상에 놓고 싶은 것은 없다. 결국에는 모두 놓칠 뿐. 좌우지간 난 뒤돌아봤을 때 놓친 게 많다. 난 뭔가를 위해 놓을 수 있었던 수많은 기회 또한 놓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