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가 시간을 좀 먹는 조건

by 익준

지평선 너머로 어둠을 밀어내고 떠오른 햇빛이 세상을 비춥니다. 하루가 시작된 된겁니다.

어느날 부터 작은 불빛 하나도 거슬려 잠을 설치곤 했기에, 제 방에는 두꺼운 암막커튼이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그걸로 창문을 가리고 있노라면 그 밑으로 야트막하게 딸려오는 작은 빛만이 밖에 상황을 유추할 수 있게 해줍니다.


저는 알람소리와 함께, 그 빛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아침이 왔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잠깐 동안 부정하고 싶은 그 사실을 애써 받아들입니다.

잠깐의 시간을 가지고, 몸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제일 하는 행동은 먼저 머리 맡에 있는 휴대폰을 집어드는 일입니다.


달칵-


전원 버튼을 한 번 누르자,

화면이 켜지면서 작은 기기는 강렬한 푸른 빛을 토해냅니다.

액정 안에는 세상을 비추는 햇빛 보다 먼저 밀려들어온게 있습니다.

휴대폰에 가득 쌓인 알림들입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한 밤 중에 일어났던 소식을 바쁘게 날랐습니다. 그걸 들여다보면,

'어제 밤 네가 자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줄 알아?'

라고 떠들어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과연, 확인해보니 호들갑을 떨어대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제가 자는 동안 친구들은 어찌나 재밌고 보람찬 저녁을 보냈는지 알림, 숏츠, 피드가 이미 한가득입니다.

"얘네들 나 빼고 만났나보네"

자기네들끼리 우정을 과시하는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저는 그들로부터 얼마나 멀리 밀려나있는지 가늠하게 됩니다. 그렇게 자신을 되돌아보며, 근심 하나를 더해놓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내가 요새 연락이 뜸했었나?'


설사 내가 연락을 잘 못했다 하더라도, 나를 빼고 친구들끼리 만났다는 사실이 못내 서운합니다.

물론 친구들이 잔뜩 흥분한 기색으로 나를 불러냈다면 어떻게 했을까 상상해보면

어제 밤은 몹시 피곤했으므로, 불러도 안나갔겠싶습니다.


'그래도 서운할 걸 어떡해!'


피드를 더 내리다 보면, 뒷골이 짜릿해지는 정보들도 간간히 발견됩니다.

"와, 얘랑, 얘 사귄다고?'

"미친, 이런걸 게시글에 올려도 되는거야?"

과연 역사는 밤에 이뤄진다고 했던가. 우리가 자고 있던 그 순간에도 무수한 역사가 꽃을 피고, 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비몽사몽한 와중에 집어들었던 휴대폰. 빨리 끝나면 이빨을 닦는 동안 끝나겠지만, 오래 걸릴 때면 버스나 지하철에 몸을 싣고 가는 동안에도 '밤에 생긴 일'을 확인하는 작업은 계속될 때도 있습니다.


이렇듯 하루가 시작 되기전에 SNS를 통한 정보의 파도가 밀려 옵니다.


그런데 우리가 확인하고 있는 SNS 정보는 조금 냉정히 말하면 제 삶과 하등 관계 없는 것들입니다.

타인의 일상과 관련된 이야기들입니다. 누구에게 어떤 일이 있었고, 최근에 뭘 했고, 앞으로 이런 걸 할꺼다.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 심지어 SNS의 속성으로 봐서는 의도적으로 좋은 면만 부각해서 올렸을테니 절반 정도만 믿을 수 있는 게시물일 것입니다.


시간 내서 들여다볼 이유도, 명분도, 가치도 없는 정보. 하지만 우리는 기어코 스크롤을 끝까지 내리는데 기꺼이 시간을 씁니다.


그렇게해서 친구들과 연결된 감정을 느낍니다. 아니 그것이 연결이라 착각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외로움과 결핍을 느끼는 사람일수록 SNS 중독에 빠질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Wu et al. (2024, Frontiers in Psychology)은 중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외로움과 무분별한 SNS 사용이 서로를 강화한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외로움은 SNS 의존을 높이고, SNS 의존은 다시 외로움을 심화시키는 것이죠.

이 악순환은 개인의 ‘시간 감각’을 파괴합니다. 시간은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라, 타인의 일상을 소비하는 화면 속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입니다.


독일 사회학자 하르트무트 로사는『가속사회』(Rosa, 2013)에서 이렇게 지적합니다.


현대 사회의 가속은 인간이 자신의 삶의 속도를 통제하지 못하는 상태를 낳는다. 이는 곧 세계와의 공명(Resonanz)을 잃는 것이다.

우리가 SNS 속에서 스크롤을 내리는 행위는 그 ‘가속’의 극단적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멈출 틈도, 생각할 여유도 없이 타인의 시간을 소비하는 동안 자신의 시간은 사라집니다.


모든 SNS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현실에서 채워야 할 감정적 교류를 SNS가 대체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것은 갈증에 바닷물을 들이키는 일과 같다. 잠시 입은 축이지만, 결국 더 큰 결핍이 남을 뿐입니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1927)에서

“인간의 존재는 ‘시간성(Temporalität)’ 그 자체”라 이야기합니다.

즉, 시간을 어떻게 ‘경험하느냐’가 곧 ‘존재의 방식’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타인의 시간에 침식된 채 자기 시간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한병철은 『피로사회』(2012)에서 성과를 추구하는 현대인은 타자와 싸우는 대신 자신을 착취하는 ‘성과 주체’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SNS의 자기 노출과 끊임없는 비교는 그 착취와 다를바 없습니다. 다만 그 형태가 일상적 모습으로 둔갑하고 있을 뿐입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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