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왜 일을 하고 있나요?”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저는 잠시 머뭇거리다 이렇게 답할 것 같습니다.
“일을 해야 살 수 있으니까요.”
오! 실제로 그렇습니다. 전세 이자금, 차량 할부금, 보험료, 통신비, 식비 교통비 기타 등등.
형편에 맞게 늘려나가던 지출은 어느덧 역으로 제 목을 조르고 있었으니까요.
이제 저는 돈을 벌어 그것을 메우기도 급급합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도 저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삶을 유지하기 위해 일합니다.
그 와중에 내 월급은 그대로인데 물가는 살인적으로 오르고, 집값은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한때 노동은 신성한 가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의 가치가 곧 인간으로서의 존엄으로 여겨질 때도 있었습니다. 일은 인간을 세상과 연결시키는 창이었고, 노동을 통해 인간은 자신을 증명했으니까요.
하지만 오늘날 노동의 가치는 생존을 위한 최소 장치로 축소되었습니다.
“일한다”는 말이 고상한 가치를 가진 철학이 아니라 당장 오늘 저녁 밥 그릇 안에 들어있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OECD(2024)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1,901시간. 독일(1,349시간)보다 약 550시간이 깁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다른 나라보다 거의 한 달을 더 일하는 셈입니다.
더 일한 만큼 돈이라도 많이 벌어야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려야하지 않나요?
그러나 실상 더 행복하지도, 더 풍요롭지도 않습니다. 여전히 노동은 자아실현의 욕구는 커녕 안전, 생존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버거운 것으로 전락한 상태입니다.
A씨는 최근 팀에서 퇴사자가 늘어난 탓에 업무 쏠림 현상을 겪고 있습니다.
인력이 충원되야 하는 상황인데, 회사는 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채용을 미룹니다.
그 탓에 A씨는 매일 숨 쉴 틈도 없이 일하고 있습니다.
점심을 놓치는 날이 많았고, 야근을 밥먹듯이 하는지라 퇴근 후에 집에 도착하고 나면 도무지 다른걸 할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쏟아지는 졸음에 몸을 맡기며 누워있노라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내일은 좀 다를까? 아니면 모레는?”
A씨는 문득, 일주일, 한 달, 일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자신의 삶이 그려집니다.
아니, 더 나아지지 않을 미래가 뻔히 보입니다.
아마 매일 일어나서 출근하고, 일하고, 집에 돌아와 잠들고, 다시 일어나 출근할 것입니다.
"과연 이게 살아있는 걸까"
스스로 되묻습니다. 이쯤 되면, 삶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작동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세팅된 대로 흘러가는 하루
그 속에서 부속품처럼 움직이며, 오늘 번 돈으로 내일을 연장하는 삶.
이것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삶을 연명하는 것에 불과한 것 아닐까요.
노동에 쏟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당연하게도 우리가 인간으로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듭니다.
가족, 친구, 연인, 심지어 자기 자신과의 대화까지 사라지는 것이죠. 한 때 “워라밸(Work–Life Balance)”이라는 말은 유행처럼 소비되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실현 불가능한 구호에 불과합니다.
이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문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1% 아래에서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사랑과 관계의 시간이 노동에 의해 대체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삶 하나 돌보기도 빠듯한 시간 속에서 연애는 사치, 결혼은 부담이 되었습니다. 가족은 이제 ‘시간이 남을 때 만나는 존재’가 입니다.
2024년 기준, 한국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28.3명으로 2013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출처: Korea Herald)
저는 이 중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노동 구조의 피로가 사회의 전반에 스며든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를 지탱해주며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곁을 빼앗고, 고립시킵니다.
가정에는 가족의 부재가
삶에는 사랑의 부재가
노동에 의해 마모된 사람들에게선 서로에 대한 관심의 부재가
스스로가 스스로를 고립시키도록 부추기고 있습니다.
‘일’이 이제 인간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소모시키고 끝끝내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셈입니다.
노동은 원래 인간이 세계와 공명(resonance) 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하르트무트 로사에 따르면, 진정한 행복은 속도가 아니라 세계와의 관계에서 ‘울림’을 느끼는 순간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서 울림과 행복이 없는 것은 오직 효율, 속도만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현대에 변화된 노동에 가치에 대해 비판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만,
역설적이게도 저는 우리가 다시 인간다워질 수 있는 가능성 또한 노동 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의 가치가 단순히 ‘생존의 수단’이 아닌 ‘세계와 나를 잇는 사유의 시간’으로 회복될 때, 우리는 다시 살아 있는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끊임없이 적정한 노동이란 무엇이며, 누군가는 비판할 지언 정 '워킹과 라이프 밸런스'에 대해 고민하고 사유해 봐야할 것입니다. 선후 관계가 뒤바뀌어버린 탓에 등한시된 관계에 집중해야 하며, 이를 위해 때론 과감하게 평소라면 해보지 않을 선택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죽은 상태에서 살아있는 것으로 거듭나기 위한 방법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