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것은 악한 것이다

by 익준

1장에서는 일상 속에서 인식하지 못한 사이 우리 시간을 갉아먹는 것들에 대해 다뤘습니다. 2장에서는 조금 더 '시간'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 혹은 본받을 수 있는 사례들을 위주로 다루고자 합니다.


나는 바쁠 때 왜 더 악해지는가


최근에 갓 돌이 지난 아이를 보살피고 있는 여씨는 최근 들어 부쩍 화가 늘었습니다.

"마마! 마마!"

돌이 지난 이후 자기표현이 늘어남에 따라 고집을 피우기 일쑤였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기저귀를 갈아입히려는 그녀의 손길을 피해, 그녀의 아들은, 서툰 뜀박질로, 달아나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등원도 시켜야 하고, 출근도 해야 하는데 협조해주지 않는 아들이 원망스럽습니다.

시간을 보니 벌써 8시가 넘어가고 있습니다. 마음이 조급해진 여씨는 결국 오늘 아침에도 아기에게 소리를 지르고 맙니다.

"엄마가 가만있으라고 했지!"

놀라 벌어진 눈.

이윽고 터지는 울음.

하지만 그 덕에 기저귀를 갈아입히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등원을 시켜준 이후 그녀의 마음에 무거운 죄책감이 내려앉습니다.

'나는 나쁜 엄마인 걸까?'


비단 가정에서만 생겨나는 문제는 아닙니다.

주간 회의를 앞둔 최 씨는 후임과 함께 회의 발표 자료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준비 다 했죠?"

자신의 것을 챙기기도 바쁜 탓에 후임이 준비하는 자료를 체크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손발을 맞춘 지 몇 개월이 지났고, 그가 알고 있는 것들을 전부 인수인계해 줬기 때문에 오늘만큼은 믿고 맡기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회의 직전, 우연히 파일을 체크하다가 자신의 후임이 수정 파일 대신, 초기 버전 파일로 준비를 끝마쳤다는 걸 우연히 발견하게 됩니다.


우연히 발견했기에 망정이지, 만약 아무 생각 없이 회의를 시작했다면, 본부장님께 무슨 소리를 들을지 미래가 훤히 그려졌습니다.


시간은 이미 10분도 남지 않았고, 회의실로 사람들이 하나둘씩 입장하고 있었습니다.

최 씨는 다급히 그의 후임을 불렀습니다.

"파일 제대로 체크 안 해요?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제가 믿고 일을 맡길 수 있겠어요?

얼른 파일 다시 업로드해 오세요. 빨리요!"

어쩔 수 없이 목소리에 감정이 섞여 든다. 후임도 놀란 듯 안색이 파랗게 질렸지만, 최 씨는 그 모습조차 꼴 보기 싫었다.

"빨리요! 빨리!"

그래서 한 번 더 채근하는 것으로 그를 자신의 눈앞에서 치워버렸다.


그렇게 어찌어찌 회의를 잘 끝마치고 난 뒤였다.

"고생했어요."

"... 네"

유독 의기소침해진 후임의 뒷모습을 보며 최 씨는 생각했다.

'내가 너무 예민했던 걸까?'


분명 여유롭게 넘어갈 만한 일인데도, 급한 일을 직면한 상태에서 평정심을 찾기란 어렵습니다. 다시 말해ㅐ 우리는 시간적 압박을 받을 때 더 쉽게 화를 내게 되는 셈입니다.


실제로 Darley & Batson(1973)의 ‘착한 사마리아인 실험’을 보면, 시간 압박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Darley와 Batson는 신학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습니다. 그들은 학생들이 설교하러 가는 길에 쓰러진 사람을 배치하고 시간적 여유가 있는 그룹과 없는 그룹의 행동 차이를 확인했죠.


결과는 시간적 여유가 없는 신학대 학생들 대부분은 쓰러진 사람을 돕지 않았습니다. 신학대를 다닌다고 더 높은 도덕적 잣대를 요구하진 않겠지만,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제1순위 교리를 설파하는 사람들이 쓰러진 이웃을 바쁘다는 이유로 외면하는 일은 인상적입니다. 시간 압박이 공감과 도덕적 행동을 억제한 것이죠.


2010 ROSA 박사는 시간의 가속이 타인과의 공명을 차단한다라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와 비슷한 주제로 Shah & Shafir(2012)는 시간 부족은 인지적 협소화를 일으켜, 타인의 관점으로 생각해 볼 여유를 없앤다는 사실을 연구를 통해 밝혔습니다.


이러한 연구들을 바탕으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바쁜 상태에 우리는 도덕적으로 둔감해지고, 이기적이게 변한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시간적 여유가 없는 당신은 그렇지 않을 때 보다 더 악한 상태입니다.


문제는 그런 바쁜 삶이 일상이 될 때 발생합니다.

'아, 내가 왜 그랬지?'

오늘도 바쁜 시간에 쫓겨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날. 집에 돌아와 자신의 행동을 뒤돌아보며 후회하고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아니 남은 삶 대부분을 그렇게 산다면?


그건 '나답지 않은'게 아니라 그런 모습이 '내'가 돼버리는 과정일 것입니다. 고로 바쁘게 산다는 건 나라는 존재를 잃어가는 것이지 않을까요.


그러니 일정과 일로 가득 찬 당신은 스스로를 더 악한 인간으로 내몰고 있는 행동일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시간적 여유를 되찾는 행위는 더 의미를 가집니다.


일상에서 시간적 여유를 가진다는 건 '쉬는 시간을 확보'하는 행위에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스스로를 도덕적 인간으로, 나를 나답게 회복해 가는 과정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일정 중에 숨 쉴 수 있는 여유시간을 확보하세요. 그것이 선함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선을 세우는 일입니다.


여유를 확보한 인물들의 루틴


투자가이자 기업인 워런버핏과 찰리 멍거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게이츠까지

세 사람의 공통점은 하루에 의도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배치한다는 점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투자자 워런 버핏은 하루 스케줄 대부분을 비워둡니다. 생각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하루 대부분을 스케줄로 인해 바쁘게 움직이는 것보다, 잘 생각하는 게 자신을 부자로 만들어준다고 믿었고, 그것을 증명해 냈습니다.


찰리 멍거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야 말로 온전히 자신으로 존재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루에 10시간 이상 책을 읽고, 최대한 외부 자극을 줄인 상태에서, 스스로 깊은 사고를 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 덕에 그는 워런 버핏의 든든한 파트너로 버크셔 헤서웨이를 재설계하는데 기여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로 막대한 부를 이룬 빌 게이츠는 매 년 두 번, 사유 주간을 가지는데 이때는 외부 연락을 완전히 차단한 상태에서 오직 독서와 메모만 하며 의도적으로 사색의 시간을 가진다고 합니다.


이들의 루틴을 돌아보면 상대적으로 큰 부를 이룬 자산가들이니 시간이 넘쳐날 것이고, 하루에 몇 시간쯤 비우는 일이야 쉽겠지!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바쁜 사람이라도 하루에 1분 혹은 10분도 시간내기 힘들까요?

그 정도야 쉽지!라고 하겠지만 막상 외부 자극 없이 온전히 깊은 사고를 위해 투자하는 시간이 10분이라도 있느냐고 묻는다면 선뜻 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는 외부 자극에 의해 반응하다가 하루가 끝이 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잠깐의 쉬는 시간에도 여지없이 휴대폰을 들어, 숏츠 영상 하나를 보고야 맙니다.


이런 시대 속 일 수록 자신의 리듬을 회복하기 위한 자신만의 루틴을 추가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습관이 삶의 리듬을 되찾아 주고, 더 깊은 사고, 더 올바른 생각을 할 수 있게 도와줄 것입니다.

수요일 연재
이전 06화버는만큼 잃는 노동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