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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원 Nov 11. 2018

<김사원 표류기>

#2. 과거의 나에게

  11월, 한 해가 저물어가는 경계에 서있다. 나는 이제 32살을 바라보고 있다.

가을이 되면 이상하리 만큼 나는 기분이 센티해진다. 계절이 주는 무드도 있겠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나이가 먹어감에 따른 내 감정 변화들이 나를 심란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가끔, 나는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의 추억과 기억들을 상기시키곤 한다.


'SNS'

매 시대마다 유행하던 SNS들이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중학생 때 내 또래 사이에서 '세이클럽'과'다모임'이라는 SNS가 유행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당시에 나는 복장 규율이 엄격했던 부산의 모 남중을 나왔는데, 교복이 와이셔츠+넥타이가 아닌 학교 이니셜이 들어간 목티를 입어야 했고, 머리는 삭발에 가까운 9mm를 규율로 삼았기에, 나는 멋을 내고 외모를 가꿔야겠다는 생각을 1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자연스럽게, 나는 SNS를 하지 않았다. 그때는 그냥 나랑 마음 맞는 오덕(五德) 친구들이랑 비디오 게임을 하거나 합이 잘 맞는 친구들이랑 볼을 차는 것이 내겐 큰 재미였다.

덕(德)분에 나는, 중학교 때 이렇다 할 흑역사를 만들지 않은 채, 무사히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중학교 때 쌓은 덕(德)을 바탕으로 내가 원하던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게 되는데, 돌이켜 보면 고등학생 시절은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찬란한 황금기이자 흑역사의 요람이었던 것 같다.

내가 나온 고등학교는 이전의 보수적이고 엄격했던 중학교(체벌도 너무 많았고, 악습도 많았다)와는 달리 너무도 개방적이고, 자율적이었으며, 학생 개인의 인권을 굉장히 존중해주는 학교였다.

또한 남녀공학이었으며, 기숙사 생활을 하고 두발의 자유가 어느 정도 보장이 되는 선진교육의 현장이었다.

고구마, 감자처럼 민둥머리로 보내온 중학교 3년과는 달리, 이성이 있었고, 머리도 기를 수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멋을 부리기 시작한 것 같다. 물론 고구마, 감자에 싹 하나 더 난다고 없던 멋이 나겠냐만은 그래도 대단한 장족의 발전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멋을 부리기 시작했으니 그다음 단계로 나는 무엇을 했겠는가?

그렇다. 이를 기념하기라도 하듯 사진을 인정사정없이 찍어버렸다. 내 인생의 찬란한 황금기이자 흑역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1학년 때는 닛폰 스타일이 유행했다. 샤기컷과 떡진 왁스 머리, 레이어드 된 형형색색의 티셔츠들과 에비수 바지를 입은 채 간지가 완성이 된 것처럼 포즈를 취하고 있는 나와 내 친구들이 이 무렵부터 내 싸이월드에 자리 잡게 되었다.

그때는 그것이 멋이라고 생각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사진의 제목이며, 남들이 궁금해하지도 않을 사진의 배경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싸이월드에 올렸다. 게다가 힙한 BGM 선택과 스킨 설정 그리고 홈피 상단의 제목 등 힙스터가 되기 위해 몸부림을 쳤었던 것 같다.

2학년 때는 힙합 스타일이 유행했고,  3학년이 돼서는 스트릿 패션이 붐을 일으켰기에 나의 싸이월드 똥칠 행위는 고등학교 3년 내내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물론 많이 지우기도 했다) 


대학생이 돼서도 이런 몹쓸 병은 치유되지 않았다. 

작은 변화가 있었다면 내가 군대를 전역하고 복학하는 시점에 싸이월드가 저물고, 페이스북이 대세 SNS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그 외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SNS가 바뀌어도 병맛의 본질에는 변화가 없었다.

마치 대대로 50~60년 전통을 이어오는 원조 맛집처럼 나의 병맛은 장인정신을 발휘해서 여전히 그 맛을 이어갔다.  


그래서 이런 과거의 내 모습을 보고 있는 지금 나는 한숨이 나온다. 부끄러워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고, 내 손발이 사라질 것만 같다.

'마! 니 거기서 뭐하노?'

도통 무슨 생각으로 이 따위 사진을 찍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나는, 과거의 나를 보고 있자니 한없이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머리스타일이며, 포즈와 제스처 등 사진 속 이상한 과거의 내 모습과 그렇지 않은 지금의 내가 오버랩돼서 한 없이 부끄러워진다. 그 간극이 너무 부끄럽다.


이런 생각이 들다가도 한편으로는 과거의 패기가 부럽고, 그 시간을 공유했던 내 친구들이 생각난다.

과거의 내 모습이 애잔하고 이게 향수인가 싶기도 하다.

이 글도 시간이 흘러, 지금보다 좀 더 나이를 먹은 내가 다시 보게 된다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을 넘어서 절단을 하고 싶어 지는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미래의 나 또한 11월 이 무렵이 되면 다시 센티해질 것이고, 다시 나이가 먹어감에 따른 내 감정 변화들 때문에 심란해할 거니 미래의 나에게도 과거의 흑역사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대학생 때 대세였던 페이스북의 인기도 이제는 시들해졌다.

쿨한 SNS의 대명사 인스타그램의 시대가 도래했다. 

미래의 나는 현재의 나에게 거는 기대감이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며, 나는 그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허튼소리 넘치는 글을 쓰는 데 주저함이 없고, 31살과 32살에 경계에 서있는 현재에도 여전히 SNS를 한다. 

또한 사명감과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14년 동안 행하던 나의 병맛 전통을 이어갈 생각이다.


심란해져 있을 미래의 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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