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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태언의 테크앤로 Aug 15. 2016

원격의료 규제는 국내용, 해외기업엔 무방비

의료산업 주권 지키기 위해서는 원격의료 허용 서둘러야

http://techm.kr/bbs/board.php?bo_table=article&wr_id=842

원격의료 규제는 국내용, 해외기업엔 무방비

현행 의료법 제34조는 원격의료를 규정하면서도 의사와 의료인 사이의 원격의료만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정부는 2013년 10월 국민의 의료 서비스 이용에 대한 편의성 및 접근성 등을 개선하기 위해 원격의료를 의사와 환자 간으로 확대해 허용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의 입법예고를 공고했다. 이에 대해 의료계는 즉각 반발했다. 대면진료보다 오진 위험성이 높고 의료사고가 발생할 경우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또 우리와 같이 국토 면적이 좁은 나라에서는 필요성이 높지 않고, 민감한 의료정보의 해킹 등 개인정보 침해 우려가 많다는 것이 그 이유다. 보건복지부는 2013년 12월 이와 같은 의료계의 반발을 고려해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의 수정안을 내놨다.

의료시장 질서를 저해할 수 있는 원격의료 전문 의료기관 개설·운영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고, 원격의료가 대면진료의 보완수단으로 활용되도록 주기적인 대면진료 의무를 규정했으며, 대형병원 쏠림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수술·퇴원 후 관리가 필요한 재택환자’ 범위를 경과 관찰이 반드시 필요한 환자로 축소한다는 것이 요지다.

의료계는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의 수정안에 대해서도 대형병원이 원격의료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 자체가 문제고, 지방 병원과 동네의원이 몰락해 1차 의료의 기반이 붕괴돼 오히려 의료 접근성이 하락할 것이라고 하면서 법률안의 폐지를 주장했다. 약사들도 원격의료에 반대했다. 환자에 대한 진료가 원격으로 바뀌면 조제도 원격으로 바뀔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4월 이와 같은 주장을 어느 정도 반영해 수정한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원격의료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과 반대하는 입장의 첨예한 대립으로 개정법률안은 약 1년간 국회를 표류하고 있고, 6월 임시국회에서도 통과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전통산업에 대한 O2O의 공습

전통적인 산업에 IT를 이용한 원격 서비스가 도입될 경우, 전통산업 주체와 신흥 주체 간 충돌현상은 비단 의료산업 분야에서만 발생하는 현상이 아니다. 정보기술과 온라인 네트워크 환경의 발전이 가속화되면서 모든 산업 분야에서 발생하고 있는 현상이다. 특히 최근 모바일 기기의 보급으로 그 현상이 극대화되고 있다. 이를 두고 필자는 ‘O2O 산업의 전통산업 시장에 대한 공습’이라 표현한다.

O2O(Online to Offline)는 온라인 시장을 장악한 인터넷 서비스 기업과 정보기술로 무장한 기업들이 오프라인 시장의 온라인화를 주도하는 현상이다. 이미 음악, 출판, 언론, 게임, 방송 등의 분야를 장악해 나가고 있고, 이제 P2P(Peer to Peer) 대출 서비스 및 핀테크 금융 서비스는 전통적인 오프라인 금융시장, 법률 플랫폼 서비스는 전통적인 법조시장, 드론과 결합한 배송 서비스는 기존의 택배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원격의료를 포함해 O2O 현상을 법률로 규제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모바일 중심의 사용자 경험이 ‘내 손 안에서 서비스 받기를’ 원하는 추세가 물결치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기술로 무장한 O2O 산업은 강력한 모바일 사용자 경험을 장악한 플랫폼 산업이 돼 모바일과 동떨어진 전통산업 분야를 공략하며, 국경을 넘어 모바일 사용자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진출하고 있다. 의료산업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현행 의료법상 국내에서 환자는 의료인의 원격의료를 받을 수 없지만, 앞으로 미국의 IT기업 또는 원격의료 기업이 미국의 유명 병원과 우리나라 국민을 직접 연결해주는 원격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국내 병원들은 해외의 유명 병원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 분명하다.

대한민국 영토 내에서 원격의료를 제한한다고 해도 우리나라 법이 적용되지 않는 해외 원격의료 기업이 모바일 기기와 웨어러블 장치를 통해 국내 이용자를 끌어 모으는 현상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가까운 일본의 경우 이미 정보기술을 적극 활용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가가와대학 의학부 주도하에 일본 국립천문대 하와이 관측소 시설 내 무선전송 기능을 가진 보수계, 혈압계, 체중계를 설치하고, 의료 인터넷 익스체인지 서버와 연결해 직원들이 정기적으로 생체 데이터를 측정하면 이 데이터가 서버에 전송돼 가가와대학에서 이를 조회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뿐만 아니라 도쿠시마현 야마노병원과 후지필름 메디컬은 2013년부터 후지필름 메디컬의 ‘SYNAPSE ERm’을 기반으로 한 ‘K-Support’ 시스템을 도입해 병원에 있지 않은 외부 전문의라도 CT 이미지 등을 태블릿과 스마트폰으로 볼 수 있도록 했다. 그 외에도 팔찌형 웨어러블 기기와 그 애플리케이션 등을 이용해 독거노인의 건강을 관찰하기도 하고 임산부의 건강정보를 수집해 임산부와 태아의 건강을 관리하는 시스템이 있다.

싱가포르는 2008년 ‘1인당 1개 전자의무기록(Karte) 실현’을 목표로 의료 IT 전략을 수립하고, 의료기관 간의 환자 의료 데이터를 공유하고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독일 정부는 환자의 의료기록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개인 관리 파일을 통해 의료 서비스를 최적화하며 처방 오류 방지 및 의료비 절감 등을 위해 ‘전자의료카드(eGK)’ 발급 및 시스템 구축계획을 수립하기도 했다.

O2O 공습은 우리나라만의 현상도 아니고 의료산업만의 문제도 아니다.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의 보급이 확산될수록 소비자의 맞춤형 서비스 욕구가 높아질수록 전 세계적으로 급격히 확산되는 현상이다. 여기에 국내용 법률 규제의 한계가 있다. 원격의료 등 O2O 현상을 국내법적으로 규제해 전통적인 의료산업을 보호해도 국경을 넘어 원격의료 서비스의 확산을 궁극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오랫동안 대면진료로 고정돼 있는 의료산업의 기본 구조를 변경한다는 점에서 원격의료를 허용할 경우 의료업계에 혼란이 발생할 것은 명약관화하다. 또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산업의 특수성도 고려돼야 함은 분명하다.

하지만, 원격의료산업에 늦게 진출할 경우 사업경험과 연구개발을 통한 특허 확보가 전무하게 돼 궁극적으로 해외기업과 경쟁이 불가능한 원격의료 불임산업이 돼 버릴 것이다. 외국의 원격의료 동향을 보고 따라 하기에는 너무 늦을 수 있다. 의료계의 현명한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다.

<본 기사는 테크M 제26호(2015년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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