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5. 사기와 배신

귀농. 돌아보니, 내 마음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by 태공

하우스의 형태가 점점 잡혀가고 있었어요.

텅 빈 땅에 하나둘 무언가가 세워지니,

비로소 ‘시작’이라는 말에 설램이 가득했죠.


'이제 굼벵이를 구하면 되겠다.'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 적당한 분을 찾게 되었고, 조언도 얻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컨설팅 비용으로 천만 원을 부르시더라고요.

그래도 ‘누군가의 노하우를 사는 일’이라 생각하면 투자할 만하다고 여겼어요.

처음 시작하는 입장에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니까요.

생산시설부터 종자 보급, 사육 방법, 건조, 판매 방법까지 전수받기로 약속했어요.

하지만 결과는 달랐어요.


'천만원이란 컨설팅 비용을 냈는데, 종이 한 장에 몇 글자 적은게 다라고?'

우리 농장에는 한 번도 찾아오지 않으셨고, 종자 10kg만 전해주고 끝이었어요.

너무 화가 났죠.

그 시절엔 굼벵이 사육 농가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런 식의 사기가 종종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중 한 명이 되었고요.


사육장마다 방식이 다르고 디테일도 다른데,

마치 모든 걸 아는 것처럼 행동하며

일반적인 내용을 노하우인 양 말했고,

그걸로 천만원을 받아간거예요.

정말 괘씸하고 불쾌했어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자꾸 오기가 생기고,

역경은 이겨내는 맛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사람보다 더 잘 키워야지.’

이런 마음있잖아요.


다행히 채 1년이 지나지 않아

농촌진흥청 등에서 사육 방법을 하나둘 공개하기 시작했고,

이런 무분별한 컨설팅 사기도 자취를 감추며 후배 농가들은 안정적으로 사육방법을 배울 수 있게 되었어요.




그즈음, 회사에 있을 때 가장 가까웠던 실장님에게 다시 연락을 드렸어요.


“이제 회사에서 나오셔도 되겠어요.”


그 실장님은 저와 정말 가까운 사이였어요.

퇴직하기 전에 실장님에게

“굼벵이 같이 키워봐요.”

라고 이야기 하고, 같이 나오기로 한 그 실장님이요.


술자리에서 형, 동생처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회사보다 농사에 더 관심이 많다며 함께하자는 다짐도 나눴던 분이에요.

저는 모든 투자비를 감당하며 준비했고,

굼벵이 종자를 받고, 농장을 세팅하고,

마침내 그분을 초대했어요.


“실장님, 이제 준비 다 되었어요. 우리 같이 키워요.”

“어~ 그래. 만나서 이야기하자.”

농장에서 함께 이것저것 살펴보며 이야기하던 중,

그분이 조심스럽게 말씀하셨어요.


“나 회사 못 그만두겠어… 사장님한테 너무 미안해.”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같이 하자고 약속했잖아요.

실장님이 사육하시고 제가 판로를 개척하면 충분히 가능해요.

조금만 버티면, 회사보다 더 안정적으로 벌 수 있을 거예요.”

“미안해. 사장님한테 너무 미안해서…”

“……알겠어요.”


그날 이후, 모든 기대와 계획이 무너졌어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쓴 감정이 올라왔고,

그게 바로 ‘배신감’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만큼 믿었기에,

그만큼 더 아팠던 거겠죠.


저는 원래 금방 잊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성격이에요.

그런데도 이 일은 쉽게 잊히질 않더라고요.

그 이후로 그 분 연락을 한번도 받은 적이 없어요.

시간이 지나며 감정은 많이 누그러졌지만,

어딘가엔 아직 그 상처가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사기’와 ‘배신’은

내가 간절할 때,

누군가를 깊이 믿을 때 일어나곤 하는 것 같아요.


처음 시작하는 이 때, 아무것도 모르고, 막무가내로 시작한 이 때

마음이 들뜨고, 어지러운 이 때...


저에게도 마음에 상처 받는 일이 일어났죠.

그리고 그런 경험은 상처이면서도 가르침이 되어

마음이 조금은 단련되었지요.


그 시절의 저는 단단하지 못했기에

조금만 흔들려도 쉽게 무너졌어요.

하지만 지금의 저는 이런 많은 상황과 경험을 통해

더 유연하고, 더 단단해진 것 같아요.


사람이 나쁜 게 아니라,

각자의 현실과 여건, 그리고 마음의 여유가 다를 뿐이니까요.

틀린게 아니라 모두가 자기 방식대로

조금이라도 나아지기 위해 다른 방식으로 애쓰는 중이겠죠.

그래서 이제는

상처받지 않으려 애쓰기보다,

조금 물러서며 조절하는 지혜를 배우고 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농사가 아닌, 계속 연구생활을 하면서 이런 상황들이 생겼다면

'마음이 더 강팍해지고, 딱딱해지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자연을 보면서, 각양각색의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도 별볼일 없는 사람이고, 내가 애쓴다고 다 잘 되는 것은 아니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니깐, 마음이 오히려 넓어지더라고요.


단지 선한 방향으로 더불어 모두 잘 살고 싶을 뿐이예요.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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