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제와 오렌지나무의 식구들
우리 농장에는 ‘은이’라는 닭이 있어요.
우리 집 식구들이 병아리를 부화시키고 싶다며 어렵게 구해온 백봉오골계 알에서 태어난,
아주 특별한 친구예요.
은이는 새하얀 깃털에 은은한 광택이 감도는, 마치 진주처럼 고운 닭이에요.
햇살이 깃털 위로 스며들 때면 반짝반짝 빛이 나서 저도 모르게 감탄하게 되더라고요.
얼굴 옆에 자리 잡은 파란빛 깃 장식은, 은이의 도도한 분위기를 한층 더해주고요.
그렇게 우아한 은이가 제가 부르면 저 멀리서도 달려와요.
그래서인지 농장 체험학습에 오는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마스코트가 되었어요.
하지만 은이에게도 안쓰러운 점이 있어요.
1년에 두 번씩 알을 품지만, 우리 농장에는 수탉이 없어서 유정란이 아니에요.
그런데도 본능인지 은이는 식음을 전폐하고 알을 품곤 해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짠했어요.
몇 달 전, 우리집 식구들은 은이가 혼자 있는게 외로워 보인다며,
그런 은이를 위해 병아리를 또 부화시키자고 했어요.
정성껏 두 알을 품어, 병아리 두 마리가 태어났어요.
이름은 ‘보리’와 ‘서리태’였고, 둘 다 수탉이었어요.
처음엔 은이가 병아리들을 보살펴줄까 기대했지만, 의외로 은이는 무심했어요.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서 서리태와 보리는 어느새 늠름한 수탉이 되었고,
그중 서리태는 한참 연상인 은이를 졸졸 따라다니며 구애를 하더라고요.
은이가 어디를 가든 따라 다니고, 가면 안 될 것 같은 곳은 날개로 막으며, 제지하기도 하더라고요.
제가 은이를 부르면 은이는 저에게 달려오는데, 이제는 서리태도 함께 달려와요.
그러면서 저를 라이벌로 여겼는지, 가끔은 살짝 대들기도 해요.
그 모습이 참 우습고도 본능이란게 신기 하다는 생각을 하며, 더 마음이 가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도도했던 은이의 꼬질꼬질한 모습이 오늘은 눈에 확 뛰더라고요.
그런데 은이와 서리태가 함께 있는 모습이 혼자 있을 때보다 더 아름다워 보이더라고요.
그 모습을 지켜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혼자 있을 때는 외모가 아름다웠는데, 지금은 안정되고, 속이 꽉찬 느낌이네?'
'이젠 너도 유정란을 품고, 조만간 가족이 생기겠구나.'
사람도 비슷한 것 같아요.
혼자일 때 우리는 나 자신을 가꾸기 위해 애쓰지만,
사랑하고 가족을 이루면 자연스럽게 누군가와 함께하는 법을 배워가게 된다는 걸요.
도도했던 은이도 서리태와 함께하면서 조금은 덜 단정해졌지만,
그 안에서 더 큰 행복을 찾아가는 것처럼 보였어요.
우리 삶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혼자일 때는 나를 위해 많은 에너지를 쏟지만,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우리는 관계 속에서 더 깊어지고 성숙해지죠.
겉모습은 조금 소홀해질 수도 있지만,
그 대신 내면에는 따뜻한 성장과 진정한 행복이 피어나는 것 같아요.
은이와 서리태를 통해 오늘도 내 마음이 넓어지는 것을 느꼈어요.
진정한 가치는 외적인 화려함이 아니라,
함께하는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것이라는 걸요.
그리고 그 안에, 우리가 진짜로 원하던 행복이 있다는 것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