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인정과 위로

아버지의 관계 속에서 얻은 깨달음

by 태공

손이 부족해 아버지께 농사일을 도와달라며 함께 살 것을 부탁드렸습니다.

그렇게 고향 인천에서 내려오신 아버지는 제 굼벵이 농사를 도와주셨습니다.

약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버지는 제 농장의 한 일원이셨고
그 안에서 참 많은 갈등이 있었습니다.

제가 굼벵이 사육을 처음 시작했던 사람으로,
강의도 하고 컨설팅도 하며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을 때였죠.
하지만 아버지는 늘 당신만의 방식을 고수하셨습니다.


“이건 이렇게 해야지.”
“그렇게 해선 안 되지.”


농사일이 반복될수록 서로의 방식은 부딪혔고,
점점 갈등의 골은 깊어졌습니다.

사소한 부탁도 아버지는 자신의 방식으로 처리하셨고,
그럴 때마다 저는 마음속으로 소리쳤습니다.


“내가 이 분야 전문가고,
이 농장은 내가 책임지는 곳인데
왜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시나요?”


말하지는 않았지만, 목 끝까지 차오를 때가 많았습니다.

결국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일을 하게 되었고,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건 아버지가 알아서 하세요.”

라는 말이 오가며 거리는 멀어져만 갔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 흐르고,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져만 갔습니다.

그러나 평생 사실 것 같던 아버지는

암 판정을 받으셨고,
농사일을 내려놓은 채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셔야 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막 지나던 다음 날,

의사 선생님은

“이틀을 넘기시기 어려울 것 같아요.”

라고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을 찾았습니다.
항암치료로 앙상해진 아버지의 모습, 빠진 머리카락

하지만 계속 살겠다는 강한 눈빛…


‘참 세상을 이기려 어렵게 사시는구나.’


그 순간,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습니다.




어릴 적, 술에 취해 다정하지 못했던 아버지.
하지만 손자들을 사랑하려 애쓰셨고,
담배와 술도 끊으려 노력하셨던 지난 몇 해의 모습들.


그리고 내 아들과 내 모습이 겹쳐졌습니다.
그 당시 아직 초등학교 1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아빠를 이기려 안간힘을 쓰는 그 모습,
그리고 그런 아들의 모습을 보며
지기 싫어했던 제 모습까지.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아버지도, 나도
결국 '인정'받고 싶었던 거구나.
위로받고 싶었던 거구나.


누군가가 따뜻하게 안아주고
“당신, 잘 살아오셨어요.”
라고 말해주기를 바랐던 것.


그 위로를 받지 못하니
우리는 더 잘 하려 애썼고,
누군가의 인정을 얻으려 몸부림쳤던 거죠.


그래서 마지막 순간,
저는 아버지께 말씀드렸습니다.


“아버지, 세상 사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때론 우리에게 모질게 대하셨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아버지는 아버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오셨다는 걸 알겠어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고생하셨어요.”


그제야 아버지의 눈빛은
긴장을 내려놓고,
자애롭게 바뀌었습니다.


“그래? 고맙다.”


이 한 마디에 아버지가 쥐고 있던

모든 감정이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요.


'고생했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이말을 듣고 싶어 이렇게 애쓰셨다는

알게 되었어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아버지는 손주들에게 축복을 남기고
이틀 뒤 조용히 떠나셨습니다.




지금도 저는 그때 그 장면을 자주 떠올립니다.


우리는 ‘존재 자체’로 위로받고,
그 위로를 통해 사랑받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사랑을 받기 위해 ‘인정받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너도 나도
타인을 인정하지 못한 채
스스로 인정받고자 애쓰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관계는 늘 부딪히고,
마음은 지쳐갑니다.


하지만 대표적으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항상 말씀하셨더군요.


“너는 네 모습 그대로 보배롭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사람에게 받지 못했던 인정과 위로를
하나님은 우리의 존재만으로
이미 주고 계셨고 그렇게 살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이제는 들립니다.


아내의 투정 속,
“나 위로가 필요해.”


지인의 열심 속,
“나 인정받고 싶어.”


그리고 내 마음속 소리,
“누군가 나를 그냥 안아줬으면…”


그래서 오늘도 저는
내 곁의 사람을 향해 말합니다.


“당신,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고맙습니다.”



keyword
토요일 연재
이전 03화[묵상] 眞空妙有(진공묘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