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하 Dec 07. 2019

당신의 모든 슬픔이 바다가 되었다.

표류 중입니다.

 출처 Unsplash @timmarshall


속절없이 찾아오는 당신의 기일은 실로 오랜만에 그대를 떠올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시간 앞에 놓인 추억은 금세 쓰러져 모래알로 돌아가고 맙니다. 그대와 함께한 추억이 빈곤하기 때문에 언제나 손안에 꼬옥 쥐어야 한다고 마음먹은 조약돌이었는데 문뜩 펼쳐 본 손바닥에는 모래 알갱이만 남아서 시간이라는 바람 앞에 무력하게 부서져 날려갑니다. 흩어져 버린 추억의 알갱이들이 마치 무심해져 가는 제 마음을 닮은 듯하여 울적했습니다.


아마 그 울적함이 당신의 기일 며칠 전 꿈에 그대를 소환한 걸까요? 그대는 깊은 바다 속에 잠겨 울고 있었습니다. 울음소리도 눈물도 느낄 수 없었지만, 그대를 삼켜버린 거대한 물 덩어리가 모든 그대의 울음, 슬픔, 그리고 그리움인 것만 같아서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멍하니 앉아 그대와 유독 닮은 제 얼굴을 더듬었는데 그곳에 그대가 있는 것 같아 어디서부터 현실이고 꿈인지 혼란스러웠습니다. 손바닥을 펼쳐보니 흐려져 가는 그대의 울음이 묻어 있었습니다. 달빛도 들지 않는 방구석에서 겨우 자라난 가여운 그림자에 떠밀려 칠흑 같은 바닷속의 깊은 고요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았습니다.


매일 얼큰히 취한 당신을 등에 업은 소년은 누구보다 빨리 어른이 되는 혹독한 성장통을 겪었지만, 당신의 상실 앞에선 세상에 버려져 하염없이 울고 있는 아이 같은 연약한 존재가 되는 아이러니가 아버지와 아들의 덧없는 숙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작은 등으로 전해진 쓰러진 그대의 볼품없는 온기가 마치 빵 한덩이에서 떨어져 나간 보잘것없는 부스러기 같았는데 이제는 그리운 한 조각의 갈망입니다.

그동안 그대의 상실을 회상한다는 것은 엄한 형벌이었고 고칠 수 없는 투명한 병처럼 느껴졌지만 이제 상처도 조금 아물었습니다. 하지만 성장이라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 사랑했던 존재와 멀어지는 일이라는 게 씁쓸해서 언제고 그대의 비루한 몸이 품은 온기를 향해 달려가는 소년으로 남고 싶은 마음입니다. 왜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쓰디쓴 약을 먹어야 하는 걸까요? 어릴 적 아픈 저에게 위로의 미소를 지어준 것 마냥 달콤하면 좋으련만.


그렇게 삼킨 쓰디쓴 한 뼘의 성장을 위해 당신이 허무하게 떠나간 것이 아닐까 하는 미련한 후회를 하며 사는 것이 여전히 저에게 남겨진 숙제입니다. 언젠가 당신이 살아간 날만큼의 저의 그림자가 길어진다면 그때는 꼭 답을 찾기를 기대해봅니다.


당신의 바다는 모든 슬픔이었고,

저는 오늘도 세상에 한 뼘의 그림자를 덧없이 그리고 살아갑니다.



2019년 2월 1일에 쓴 글

또 다가올 기일을 기약하며...

작가의 이전글 모호라는 이름의 불치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