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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하 Nov 11. 2019

표류 중입니다.

명상 이야기

상편. 하루의 블랙홀


아침부터 시끄럽게 자명종이 울리면 온몸의 신경이 곤두선다. 일어나라 명령하는 머리와 아직 깨지 못한 무거운 몸이 서로 충돌하며 피로가 체 가시지도 않은 지친 어제의 나를 억지로 오늘로 일으켜 세운다. 한치의 자비도 없다. 먹고사는 문제는 가혹한 일이다. 하루의 시작부터 나는 나와 그렇게 싸운다.


정신없이 씻고 급하게 채비를 하고 직장으로 달려간다. 빠른 걸음으로 익숙한 거리를 지나 계단을 오르내리고 지하철에 올라 사람들과 아등바등 서로의 영역을 차지하기 위한 잔치를 벌인다. 흔들리는 지하철은 신명 나게 분위기를 돋우지만 웃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날카로운 작두 위에 모두의 감정이 아슬아슬하게 올라타 있다. 1 센티미터보다 가까운 거리에 사람들과 뒤섞여 있지만 귀신같은 작은 세상 속에 홀려있다. 다들 작은 화면 속에 표정을 숨기고 있어서 서로에게 기대어 있는지, 버티고 있는지, 밀어내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표정 없는 커다란 하나의 덩어리가 되었지만 이내 뿔뿔이 작은 파편으로 흩어진다. 잠깐 숨을 고르려고 하는 찰나에 우르르 빠져나가는 무관심 연대의 단기 계약 관계자들의 휘모리장단에 박자를 빼앗겨 버린다.


아침마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반복에 가슴이 막막하다.


숨을 강탈당하고 터덜터덜 도착한 회사에서는 더 정신이 없다. 계획하고, 타협하고, 설득하고, 조율하고, 작업하고, 지시하고, 보고하고, 이것 하고, 저것 하고, 무엇하고... 해야 할 '하고'가 너무 많다. 평생의 bucket list를 가슴에 품었지만, 이번주 to-do list만 해결하다 삶이 끝날까 두렵다. 여기서는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마치 재롱잔치 부리는 것 같다. 모든 일은 타인과 연결되어 있어서 눈치 보고 신경 써야 할 일은 몇 배수로 증가한다. 스트레스는 탄력적으로 J커브를 그리며 순항한다. 나를 둘러싼 모든 시선과 감정들이 저울 위에 올라가 있다. 평가하고 평가받는 일이 본업이 된다. 결국 모두가 가면 뒤에 숨는다. 오리무중에 빠진다.


어쩔 때는 마치 장날 모습 같다. 손해는 모두 원하지 않기 때문에 거래에 흥정이 오고 간다. 각자의 손에 계산기가 들려있다. 때로는 전쟁통 같다.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 나 있다. 모두들 등 뒤에 총포를 감추고 있다. 회사는 어쩌면 회사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시끄럽고 정신없다. 고요가 존재할 틈은 없다.


하루의 마무리마다 머리가 핑 돈다. 아찔하게 어지럽다. 이 전쟁에서 쟁취할 수 있는 것은 조금 가까운 내일을 보장하는 또다시 반복되는 다음날이라는 전리품이다.


짧은 여정에 녹초가 된다. 빙글빙글 도는 머리속에 질문도 같이 맴돈다. 오늘을 돌이켜 보면 나는 온전한 나로 과연 존재한 것일까? 내 삶이 어쩌면 어디론가 휩쓸려 가고 있는 건 아닌가? 나는 나에게 얼마나 귀 기울이고 있는가? 온통 헝클어진 하루를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까? 온갖 질문들이 뒤죽박죽 된 머릿속을 다시금 반죽한다. 이런 저런 고민 끝에 하나의 고운 결론을 빚어낸다.


블랙홀에서 지친 나를 구제하기 위해 명상을 시작하기로 한다.



상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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