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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희 Aug 06. 2018

국립무용단 박혜지

예술가의 초상


춤을 추기 시작하면 크고 또렷한 눈망울이 더욱 반짝인다. 무대 위 스스로를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자신을 보고 있는 관객을 잡아먹기라도 할 기세로. 인터뷰를 위해 사진 촬영에 나선 날에도 그랬다. 몸 선을 따라 유려하게 떨어지는 슈트를 입고 등장한 그녀는 순백의 배경지 앞에서 옷깃이 살결을 스칠 듯 말 듯 작게 움직였다. 화려한 동작이나 너른 춤사위는 없었다. 이따금씩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는 것이 전부였다. 사진작가에 의해 포착된 모니터 속 여인은 춤이 아닌 몸으로 오롯이 자신을 입증하고 있었다.


무대를 압도하는 단단한 춤. 박혜지의 움직임을 보며 떠올린 감상이다. 수려한 마스크와 시공을 가르는 눈빛, 그리고 어깨에서 시작되는 두 팔의 강한 움직임은 뿌리로부터 끌어올리는 우리 춤이 가진 힘을 상기시킨다.


지금이야 국립무용단의 크고 작은 작품에서 얼굴을 비추고 있지만 박혜지가 정단원이 된 지는 꼭 4년밖에 되지 않는다. 2011년 인턴단원으로 입단해 첫 두 해 동안은 동기들과 매달 ‘정오의 춤’ 무대를 꾸렸다. 그리고 공연으로만 보던 선배들을 실제로 마주한 날, 연예인을 만나기라도 한 듯 설레면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던 그날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매년 시험을 치러야 했던 치열한 인턴 생활을 마치고 2014년 5월, 정단원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가 국립무용단의 무용수로서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킨 건 그보다 앞선 때였다. 인턴단원으로 유례없이 신작 ‘회오리’(2014)에 주역으로 캐스팅됐다는 소식은 세간의 화제였다. 핀란드 안무가 테로 사리넨과 국립무용단이 협업한 ‘회오리’는 한국 춤사위와 안무가 특유의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움직임이 만나 시너지를 발휘한 작품이다. 국립무용단 창단 이래 해외 안무가와 처음 추진한 프로젝트에서 까마득한 선배들과 함께 가장 앞줄에 선 박혜지는 이내 국립무용단의 슈퍼루키로 떠올랐다.


“해외 안무가는 처음인 데다 정단원·인턴단원 구분 없이 모두 워크숍에 참여하라고 해서 무척 기대됐어요. 학교에서 수업하듯이 자유분방한 분위기에서 새로운 걸 배우니 너무 재밌더라고요. 이런 기회가 많지 않으니 그저 열심히 했죠. 그사이에 테로 사리넨은 무용수 한 명 한 명을 꼼꼼히 체크하더라고요. 캐스팅이 나왔는데 저뿐만 아니라 인턴단원이 몇몇 포함돼 있었어요. 처음부터 주역 캐스팅이 정해져 있던 건 아니었고요. 워크숍처럼 안무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특정 부분에 제가 등장해야 한다고 안무가가 이야기하더군요. ‘이게 뭐지?’ 싶었어요. 하다 보니 김미애 선생님, 이정윤 선생님, 최진욱 선생님과 함께 춤을 추고 있더라고요. 너무 떨렸죠. 주눅 들기도, 한편으론 기대되기도 했어요. 안무가가 외국인이라 그런지 분위기도 자연스럽고 선생님들께서 편하게 해주셔서 작품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회오리’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 중 하나로 꼽히는 블랙과 화이트의 4인무, 선배 최진욱과 호흡을 맞춘 박혜지는 특유의 굳건한 표정으로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기민하게 움직인다. 김미애와 이정윤의 블랙이 작품 전체의 기운을 감지하고 이끌어간다면, 최진욱과 박혜지의 화이트는 그에 비해 인간적인 춤사위를 선보인다. 리프팅과 파트너십이 많은 탓에 헐떡이면서도 두 사람은 무언가에 홀린 듯 숨 한 번 고르지 않고 춤을 이어나간다.


“첫 공연 무대에 올랐는데 해오름극장 그 큰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춤을 춰야 한다는 부담감이 엄청나더라고요. 작품에 누가 되선 안 되겠다는, 일종의 사명감이 컸던 것 같아요. 공연을 마치고 나서 이제 끝인 줄 알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나요. 이렇게 계속 재공연하게 될 줄 몰랐거든요. 제게는 애증이 담긴 작품이죠.” 



기본에 뿌리내린 단단한 춤
시작은 발레였다. 안짱다리를 교정하기 위해 부모님은 무용학원을 권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시작한 발레, 예쁜 동작과 예쁜 의상에 반해 금세 흥미를 붙였다. 하지만 골반이 닫혀 있어 턴아웃(turn-out)에 그리 좋은 신체 조건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고, 한국무용으로 전향하게 됐다. 그러나 장르를 구별하지 않고 춤추는 건 뭐든 좋아하고 즐거워했다고, 그녀는 학창 시절을 회고한다.


예원학교와 서울예술고등학교, 그리고 한국예술종합학교까지 눈앞에 주어진 것을 열심히 해온 그녀의 성장기에 국립무용단이란 존재가 서서히 다가왔다. “혜지야. 너는 커서 꼭 국립무용단 들어가라.” 주변에선 늘 그렇게 말했다. 국립무용단 공연이라면 꼬박꼬박 챙겨 봤고, 자연스레 관심도 높아졌다. 졸업 후 목표는 어느새 국립무용단 입단이 돼 있었다. 박혜지는 금세 그 목표를 이루고, 이제는 부수석 단원으로 자리매김했다.


국립극장이 시즌제를 도입한 이래 국립무용단은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을 개발하고 있다. 장르의 경계 밖에 있는 안무가나 연출가를 끌어오는 일도 서슴지 않으며, 레퍼토리의 스펙트럼은 점차 다채로워지고 있다. 박혜지는 지난 1년 동안 ‘리진’의 도화 역을 시작으로 ‘춘상’ ‘시간의 나이’ ‘가무악칠채’ ‘맨 메이드’ ‘향연’으로 이어지는 숨 가쁜 여정을 소화했다. 그사이 2월엔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무대에 올라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서로 다른 질감의 춤, 무대를 소화하기 위해 자신을 몇 번이나 탈바꿈시켜야 했을까.


“무용수라면 안무가가 원하는 대로 이렇게 저렇게 자신을 바꿀 수 있어야 하죠. 굳이 ‘한국(무용) 무용수’라는 틀에 갇히기보다는 ‘무용수’라고 불리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워낙 광범위한 작품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콘셉트와 움직임을 모두 표현할 수 있어야 진정한 무용수 아닐까요.”


그렇게 무용수들은 자신의 색깔을 끊임없이 변화시키며 새로운 무대에 올라야 한다. 전통복식을 갖춘 채 한 손엔 꽹과리를 들고 나설 때, 새빨간 슈트를 차려입고 머리를 포니테일로 질끈 묶고 나설 때… 때마다 심정이 같다면 오히려 이상할 터다.


“어릴 때는 그런 게 있었어요. 나는 한국무용 하는 사람인데 현대무용을 하면 현대무용 전공자를 따라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그들은 내 춤을 어떻게 생각할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장르를 허무는 게 옳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춤이 맞다, 저 춤이 맞다, 정해진 건 없잖아요. 그래서 공연할 때면 많은 생각을 하기보다는 내 움직임에만 집중해요. 동작, 콘셉트, 감정을 차근차근 잘 수행해내면 그 결과가 나의 몸으로, 춤으로 관객에게 전달될 것이라 믿거든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연습실에서 지켜본 박혜지를 그저 춤 잘 추는 무용수로 정의하고 싶진 않다. 어떤 색을 칠하든 아름답게 발현할 준비를 마친 하얀 도화지. 새로운 예술가와 창작 작업을 시작할 때, 그녀는 누구보다 좋은 캔버스가 된다.


“다른 건 잘 모르겠지만 기본기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김연아 선수의 경기를 볼 때 ‘교과서적이다’라는 말을 자주 하잖아요. 굉장히 중요한 지점인 것 같아요. 저는 무언가에 국한하기보다는 이것도, 저것도 잘 해내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직업무용단에서 워낙 다양한 작품을 하다 보니까 기본기가 바로 잡혀 있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릴 때 발레를 해서인지, 혹은 제가 고지식한 성격이라 그런지 몰라도 내 것을 정확하게 해내야 한다는 일종의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것 같아요. 내 것을 정직하게 해낼 때 그 안에서 더욱 다양한 색깔을 펼칠 수 있겠죠. 그래서 기본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기본.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 그 기본은 어떻게 지켜나갈 수 있을까.


“정답은 없죠. 그러나 저 나름대로 이건 맞고, 저건 틀리다는 기준은 있어요. 저만의 방식, 뚝심이랄까요.”


동시대성을 따르는 한국춤과 한국성을 좇는 컨템퍼러리 댄스는 어떻게 다른가. 그 가운데 국립무용단은 어떤 춤을 추구하고 있는가. 변화하는 한국춤 현장, 그 중심에 서 있는 젊은 무용수들은 이러한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까.


“출발점이 다르잖아요. 거기서 확연한 차이가 있을 거라고 봐요. 국립무용단이 한국춤을 뿌리에 두고 발전해온 창작춤을 하는 것과, 기존에 현대무용 하는 무용가들이 한국적인 것을 찾는 건 완전히 다른 것 같아요. 한국적인 동작을 한들 저희가 갖고 있는 정서를 100퍼센트 공유할 수 없잖아요. 시작 지점이 다르기 때문에 도달하는 지점도 다를 거라 생각해요. 무엇보다 전통이란 빠른 시일 내에 해낼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대가에 이른 선생님들도 계속해서 갈고닦잖아요. 그렇게 끊임없이 수련한 끝에 나오는 것이 한국춤인데, 소재만 갖고 와서 동작으로 엮는 것과 같을 수 있을까요.” 


박혜지가 말하는 ‘기본’, 그 안에 깊게 뿌리내린 전통. 그녀가 그토록 단단한 춤을 출 수 있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관객에게 그녀는 어떤 무용수이고 싶을까.


“공연을 보고 나면 전체적인 연출이나 안무가 좋았다고 느끼는 분이 많은데, 저는 ‘어느 누가 눈에 들어오더라’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 참 좋더라고요. 관객이 무용수를 눈에 담아 간다는 건, 기억해주겠다는 거니까요. 무용수로서 그보다 감사한 일이 있을까요. 극장을 나설 때 당신의 모습이 기억에 남더라는 한 마디만 들어도 무용수로서 성공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무대에 서고 춤을 추는 한 언제까지고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글 김태희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무용이론을 공부하고 있다. 월간 ‘객석’과 서울문화재단·국립극장에서 잡지를 만들었으며,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제12회 젊은 비평가상을 수상했다.

사진 전강인


*국립극장 월간 「미르」 2018년 8월호 ‘예술가의 초상’에 실린 글입니다.

국립극장 홈페이지에서 원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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