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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희 Sep 04. 2018

국립창극단 최호성

예술가의 초상


“뒤돌아보면 참 뿌듯해요.”


2013년에 입단했으니 꼭 5년이 지났다. 누군가는 짧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그 시간 동안 거쳐온 배역만 꼽아도 열 손가락을 채우고 남는다. 그와의 대화에는 “참 감사한 일이죠”라는 말이 자주 따라붙었다. “주인공이든, 그저 잠깐 나와서 ‘예이~’ 하고 들어가는 역할이든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면 그만”이라며. 배역에 연연하지 않는 그의 덤덤하고 느긋한 말씨가 ‘옹녀’를 언급하자 이내 달라진다.


“‘변강쇠 점 찍고 옹녀’는 매년 새로워요. 2014년 초연 때 처음 읽은 대본과 2015년에 읽은 대본의 느낌이 다르고, 작년엔 또 다르더라고요. 작년에 읽은 ‘옹녀’는 좀 슬펐어요. 워낙 유쾌하고 동적인 작품이다 보니 이전까지는 ‘얼씨구’ 하며 신나게 해왔죠. 그런데 작년엔 옹녀의 대사가 좀 안쓰럽게 느껴지더라고요. 그 대목이었어요. ‘그래도 좋네. 저기 가는 사내 뒤태가 나는 좋아. 술 좋아라 투전질 좋아라 해도 날 사랑하시니 그거면 됐네. 노지에서 하늘을 이불 삼아 잔다 해도 날 사랑하는 그대가 있으니 그걸로 나는 됐네.’ 옹녀가 상부살이 낀 탓에 만나는 남자마다 죽어 나가잖아요. 이 남자만은 내 옆에서 버텨줬으면 하는 감정이 절절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겉보기엔 신나게 흘러가는 작품인 것 같아도, 그 껍데기를 걷어내고 조금만 들여다보면 작품에 새겨진 옹녀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져요. 한 여성이 살아온 일련의 과정을 찬찬히 바라보게 되죠. 올해 대본을 다시 읽으면 또 다르지 않을까요.”


2018-2019 시즌, 국립창극단은 ‘변강쇠 점 찍고 옹녀’(10월 18~21일)로 문을 활짝 연다. 여름휴가에서 돌아와 연습을 막 시작한 최호성을 만났다. 햇수로 다섯 번째 공연이다. 이번 시즌엔 달오름극장이 아닌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한다. 그야말로 ‘롱런’, 뮤지컬에나 붙던 수식어가 창극에서도 가능함을 보여준 작품이다.


“고선웅 연출님은 장난스러운 겉모습 안에 진지함과 철학을 지닌 분이에요. 대사를 ‘툭툭’ 던지는데 돌아서서 생각해보면 ‘아’ 하는 울림을 주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외설적인 내용을 무대에 올린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잖아요. 그런데 창극이 이렇게 매년, 때에 따라 다르긴 해도 10회 이상 공연한다는 게… 그 자체로 무척 놀랍죠.”


많은 관객이 최호성을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의 변강쇠로 기억한다. 2014년 초연부터 캐스팅돼 매년 무대에 섰으니 그럴 법도 하다. 가장 많이 공연했고 가장 성공한 작품은 ‘옹녀’지만, 자신이 애착을 갖는 작품은 따로 있다고 말한다.


“기억에 남는 작품은 ‘아비. 방연’이에요. ‘흥보씨’ ‘옹녀’처럼 대부분 작품이 밝은 분위기인데, ‘아비. 방연’은 비극성이 강한 작품이라 더 그런 것 같아요. 혼자 끙끙 앓기도 많이 앓았죠. 연습 과정에서 8킬로그램이나 빠질 정도로 힘들었지만 잊을 수 없는 작품이에요.”


‘아비. 방연’은 2015년 한아름이 대본을 맡고 서재형이 연출한 작품이다. 계유정난 당시 단종과 관련한 역사에 기록돼 있는 왕방연의 삶을 새롭게 풀어냈다. 난세에 영웅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버리고 아버지로서의 길을 택한 왕방연. 최호성은 이 작품의 주인공으로 나서 절절한 부성애를 보여줬다.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스물아홉이었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조카들을 자주 떠올렸어요. 흔히들 그런 얘기 많이 하잖아요. 내 아이가 두 팔 벌리고 ‘아빠~’ 하면서 달려와 안길 때의 감동. 몰랐죠. 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조카가 생기고 나니까 정말 제 주머니에 있는 걸 다 꺼내 주고 싶은 마음이더라고요. 저는 아직 결혼도 안 했고 아이도 없지만 부성애란 그런 느낌이 아닐까 싶어요. 상대 배우인 김금미 선생님이 워낙 카리스마가 있어서 힘을 받은 것도 있어요. 소사 역의 지현이도 저만 보면 눈물을 뚝뚝 흘리는데 그 덕도 많이 봤죠.”


쾌남 변강쇠에서 아비 방연으로, 서로 다른 톤의 작품을 통해 그의 연기 스펙트럼도 훌쩍 넓어졌을 터. 그러나 이어진 작품도 쉽지는 않았다. 옹켕센 연출의 ‘트로이의 여인들’(2016)에서 최호성은 스파르타의 왕이자 헬레네의 남편인 메넬라오스를 맡았다. 그리고 그와 호흡을 맞춘 세기의 미녀는 입단 동기인 ‘남자’ 배우 김준수였으니….


“(김)준수와는 편한 형·동생 사이인데, 남녀 관계를 연기하려고 하니 감정 이입하기가 너무 어렵더라고요. 그런데 관객들이 바라보는 무대에 오르니까 연습 때 안 되던 것도 돼요. 그게 바로 무대의 힘이 아닌가 싶어요. 준수와는 유독 배역 운이 좋아요. ‘코카서스의 백묵원’에서 바보 형제 라브 렌티로 등장했고, ‘트로이의 여인들’에선 부부로, ‘흥보씨’에선 형제로 만났거든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 사람들이 저희 둘 호흡이 잘 맞는다고 그러더라고요.(웃음)” 



창극배우와 소리꾼 사이
전라남도 광주 출신 최호성은 유년 시절 지극히 평범한 소년이었다. 그러던 그의 눈을 번쩍 뜨게 한 건, 고故 박동진 명창의 무대였다. 우연히 어머니의 손을 잡고 광주 MBC에서 열린 명사 초청 특강에 갔다가 그를 만났다. 청중을 쥐락펴락하는 재담으로 무대를 휘어잡던 박동진 명창. 작은 체구에서 뿜어내는 기운으로 관객을 웃기고 울리는 모습을 보며 ‘나도 소리 해보고 싶다’ 한 것이 시작이었다. 생전 무언가 스스로 하고 싶다고 말해본 적 없는 아들의 의욕에 어머니는 늘 그랬듯 ‘석 달을 못 넘길 것’이라 생각하며 학원에 보내줬고, 그곳에서 첫 스승인 윤진철을 만났다.


“안숙선·윤진철·염경애·채수정 선생님께 배웠는데, 제게 ‘아’부터 가르쳐주신 분은 윤진철 선생님이에요. 여덟 살 때 선생님을 만났고, 제가 지금 서른두 살이니 인생의 4분의 3을 선생님과 지냈네요. 제 부모님이나 다름없는 분이시죠.”


이후 그는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현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를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했다. 대학교 3학년이던 2008년엔 국립극장 차세대 명창으로 선발돼 국립창극단 특별 무대에도 오르기도 했다고. 그러나 대학 시절을 떠올리면 창극만은 하고 싶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원래 저는 창극은 절대 안 하고 싶었어요. 학교에서 창극을 할 때면 스트레스를 무척 많이 받았거든요. 소리는 혼자만의 싸움이잖아요. 그런데 창극에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죠. 내가 몇 걸음 갈 테니 너는 얼마만큼 와서 돌고, 눈 한번 마주치고 대사 한번 치고. 그런 촘촘한 약속을 해내는 과정에서 사람들과 어긋나는 게 싫었어요. 그런데 객원으로 ‘십오세나 십육세 처녀’ ‘청’ 등 국립창극단 무대에 서고, 좋은 공연을 많이 보면서 생각이 점차 바뀐 것 같아요. 물론 소리도 좋지만, 창극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소재 면에서도 전통 소리와 다르게 창극은 ‘극’이라는 형식을 사용하니까 현시대의 이야기도 담아낼 수 있고, 관객과 더욱 밀접하게 소통할 수 있죠. 그렇게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니 창극이 재밌더라고요. 창극 작품이 정말 잘 만들어지면 다른 건 비교하지도 못할 만큼 좋거든요.”


2012년 말, 그는 길지 않은 인턴단원 생활을 마치고 입단 시험을 치러 정단원이 됐다. 10년 만의 단원 선발로 화제를 모은 때다. 김준수·민은경·이광복·이소연 등 현재 국립창극단의 허리를 이루는 젊은 단원들이 그와 입단 동기다. 이야기보다는 소리로 승부를 보고 싶었던 학생 시절부터 국립창극단의 일원으로 크고 작은 작품에서 주·조역을 맡기까지. 창극을 바라보는 자신의 관점이 변해왔듯이, 오늘날의 창극도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 작품을 선보이는 과정에서 이게 창극이냐, 하는 논란이 있던 것도 사실이죠. 다양한 작품이 있었기에 지금의 창극이라는 형태가 갖춰졌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옛날에 존재하던 창극을 그대로 공연한다면 오늘날 관객들은 어렵게 느낄 것 같거든요. 초기에 창극은 판소리를 분창하는 개념에 가까웠어요. 너름새 좀 섞어가면서. 당시에는 그게 전형적인 창극이었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창극도 변화했죠. 수많은 과정을 거치며 좋은 건 살리고, 아닌 건 잘라내면서…. 더 좋은 것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지금의 창극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도전과 과정의 한가운데에 있는 거죠.”


요즈음 그는 ‘국립창극단 최호성’이 아닌 ‘소리꾼 최호성’에 대해 생각이 많다. 단원으로서의 활동이 단연 1순위지만 소리꾼으로서 한 단계 올라서고 싶은 것 역시 당연한 욕심이다. 그러한 생각은 완창판소리에 닿아 있다. 완창이란 보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힘든 과정이라 생각하다가도, 소리꾼이라면 그 산을 넘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마음을 굳혔다. 자신의 공력을 가늠하기 위해 스스로를 시험대에 올리는 일, 늦지 않게 그 준비를 시작하는 중이다. 어떤 예술가가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진짜 소리 잘하는 소리꾼”이라던 그가 조만간 들려줄 소리가 궁금하다. 


글 김태희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무용이론을 공부하고 있다. 월간 ‘객석’과 서울문화재단·국립극장에서 잡지를 만들었으며,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제12회 젊은 비평가상을 수상했다.

사진 전강인


*국립극장 월간 「미르」 2018년 9월호 ‘예술가의 초상’에 실린 글입니다.

국립극장 홈페이지에서 원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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