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크리에이터 라운지 ‘연남장’
맛집을 시작으로 독립서점, 코워킹 스페이스, 레트로 감성의 다양한 공간들이 들어서며 어느새 ‘핫플’이 되어버린 연남동과 연희동. 그 동네의 경계에 묵직하게 자리 잡은 연남장은 로컬 크리에이터의 콘텐츠가 사회와 만나 호흡할 수 있도록 응원하는 만남의 ‘장’(場)이다.
가장 ‘로컬한’ 공간
연희동과 연남동의 경계, 경의중앙선 철로 아래에 위치한 연남장은 무심결에 스치기 쉬운 곳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어딘가 익숙한 빨간 벽돌 건물이 제멋대로 자라난 풀과 나무, 낮은 키의 담벽과 한 몸처럼 어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핫플’이라기엔 너무도 담박한 겉모습이라 맞게 찾아온 것인지 의심이 들 정도다.
연남장은 스스로를 ‘지역 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로컬 크리에이터 라운지’라고 소개한다. 지하 1층, 지상 3층 건물에 카페, 레스토랑, 코워킹 스페이스, 스튜디오, 콘텐츠숍 등으로 구성된 복합문화공간이다. 이곳을 상징하는 로고는 공간을 의미하는 한자어 ‘장’(場)을 변형해 만들었다. 층고가 높고 시원시원한 크기의 유리창이 특징인 1층 공간과, 창작자를 위한 업무 공간인 2·3층이 로고에 나타난 형태와 꼭 닮았다. 연희동 일대에서 보기 드문 면적을 자랑하는 연남장은 40여 년간 유리 공장으로 사용되던 건물을 리모델링해 탄생했다. 어느 호텔 입구처럼 거대한 출입문과 시야를 확 트이게 하는 층고, 레스토랑과 카페가 자리한 1층 공간에 드리운 고풍스러운 샹들리에까지, 섬세하게 설계된 공간의 요소가 연남장의 분위기를 더욱 짙게 만든다.
연남장을 구성하는 각 공간을 묶는 키워드는 ‘로컬’이다. 로컬 경쟁력을 위해, 로컬 콘텐츠를 소개하는, 가장 로컬한 공간인 셈이다. 많은 이들에게 고풍스런 분위기와 독특한 메뉴로 잘 알려진 1층은 지역 기반의 식음료를 수집, 선별해 소개한다. 이곳에는 연남방앗간(카페)과 윤세영식당(레스토랑)이 입점해 있다. 연남방앗간은 카페 겸 식음료 커뮤니티 공간으로, 연남동에 위치한 본점이 이곳에 분점 형태로 들어왔다. 다른 카페와 달리 전국 각지에서 수확·생산한 농산물과 상품을 적극적으로 브랜딩해 선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제주영농조합과 연계한 새봄 녹차와 진피 홍차, 경북 태안에서 참기름과 미숫가루를 공수해 제조한 참깨라떼처럼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메뉴도 있다. 공간 한편에는 책, MD, 농수산품 등 연남장을 운영하는 어반플레이가 기획한 로컬 콘텐츠가 채워져 있다.
사실 이 공간은 예술이 더해질 때 진가를 발휘한다. 샹들리에에 반사돼 반짝이는 금빛 대형 테이블은 연남장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오브제이다. 평소 공간을 찾은 이들에겐 소통 공간으로, 창작자들에겐 콘센트가 넉넉한 업무 공간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공연이나 컨퍼런스 등 행사가 열릴 때면 예술가의 무대이자 강연자의 연단으로 변신한다. 이때 높은 층고는 풍성한 울림을 만들고, 고풍스러운 샹들리에는 조명으로 빛나며, (아는 사람만 아는) 복층 공간은 오페라 하우스의 발코니석이 된다. 실제로 축제 <연희 걷다>의 재즈 콘서트와 <도시살롱> 팟캐스트 공개 방송 등이 이곳에서 열렸다. 화이트 큐브 형태인 지하 1층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창작자들의 콘텐츠를 소개하는 공간으로, 기획에 따라 다채롭게 변모한다. 지난해 12월엔 장기하와 얼굴들의 마지막을 기념한 전시 <장기하와 얼굴들-마무리: 별일 없이 산다>가 열렸다.
지상 1층과 지하 1층이 로컬 콘텐츠가 사회와 접점을 이루는 공간이라면, 2층과 3층은 로컬 크리에이터를 위한 업무 공간이다. 2층은 최대 12명까지 입주 가능한 분리형 오피스와 오픈형 1인 업무 공간으로 구성되며, 3층은 주거 형태의 독립 스튜디오로 꾸려져 있다. 디자인, 식음료 개발,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등 이름만 들어도 흥미로운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이 이곳에 입주해 있다.
‘전통’과 ‘지역’의 가치 끌어올리기
어반플레이가 연남장이라는 공간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로컬 라이프스타일’에 방점이 찍혀 있다. 글로벌에 대항하는 로컬, 즉 ‘지역성’이야말로 오늘날 우리 사회를 윤택하게 할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전까지 국가와 공공의 지원으로 명맥을 이어온 ‘지역성’을 더 이상 공공의 역할로 방치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 사회가 전략적으로 취해야 함을 이야기한다. 너무 빠르게 미래만을 향해 달려온 한국 사회에서 ‘전통’과 ‘지역’이 가진 뭉근한 가치를 다시 끌어올리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를 위해 로컬 콘텐츠의 힘을 믿는 이들이 머리를 맞대 연남장이라는 공간을 탄생시켰다. 그 공간에 로컬 콘텐츠의 가치를 채워 넣는 것은 지향점을 공유하는 이들의 몫이다.
도시건축 전문 작가 음성원은 밀레니얼 세대의 등장으로 도심 속 공간이 일종의 팝업 스토어처럼 끊임없이 그 목적과 형태를 변화한다는 ‘팝업시티’ 개념을 이야기한 바 있다. 공유경제의 플랫폼은 장소를 기반으로 형성되며, 그러하기에 도시 공간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창작자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자 매력적인 로컬 콘텐츠가 도시와 호흡하는 만남의 장, 연남장을 찾는 이들 모두가 로컬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는 이유다.
글 김태희_자유기고가
사진 제공 어반플레이
*서울문화재단 월간 [문화+서울] 2019년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