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극장 기획공연 <적벽>
<적벽>의 또 다른 미덕은 이분법적 구분을 경계하고, 자유롭게 그 한계를 넘나든다는 것이다.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판소리와 뮤지컬, 배우와 무용수… 작품은 우리 사회가 그어놓은 구분선 위에서 재주 많은 광대처럼 줄타기를 시도한다.
<적벽가>는 고어가 많고 변화무쌍한 내용인 데다, 다른 소리와 달리 중국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판소리 다섯 바탕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소리로 꼽힌다. 그렇기에 수 세기 전 등장한 중국의 이야기로 한국 관객을 어떻게 설득시킬 것인지, 궁금하면서도 염려가 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적벽>은 적벽대전의 이야기를 한국인이 공감 가능한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시청각적으로 오늘의 관객이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는 요소를 곳곳에 배치했다.
작품의 음악적 바탕은 판소리에 기반을 둔 소리가 주를 이룬다. 하지만 부분적으로 뮤지컬 넘버와 랩이 섞여 있어 이질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북 장단과 서양 타악이 어우러지는 가운데 고아하게 등장하는 아쟁과 대금의 음색은, 전통과 현대가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 어떤 독특한 울림을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작품의 배경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소품이나 무대 세트를 들여오기보다는 소리꾼의 필수품이라 할 수 있는 부채와 영상을 활용해 무대를 채웠다. 전통의 가치를 품고 있되 동시대와 호흡하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느껴진다.
또한, 작품은 동양의 이야기를 서양 공연 양식으로 다채롭게 구현했다. <적벽가>와 <삼국지연의>를 토대로 다시 쓴 대본은, 음악극임에도 불구하고 가사 전달력이 뛰어나다. 간결한 어휘와 또박또박한 발음은 판소리가 지닌 단점을 극복하기에 충분했다. 전체적인 구성은 판소리극이나 창극보다는 뮤지컬에 가까운데, 이는 오히려 다양한 장르의 관객을 흡수하는 매개체가 됐다. 전통예술 장르의 창작 공연이 국악·판소리·한국무용 등 유사 장르의 관객을 타깃으로 했다면, <적벽>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연극·뮤지컬 관객까지 객석으로 불러 모았으니 말이다.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에서 발간하는 웹진 [공진단] 2019년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