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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희 Jan 03. 2016

치열해서 아름답다

유니버설발레단 백스테이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지난해는 잘 보내고, 새해는 행복하게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저의 2015년을 돌아보는 키워드 중 하나는 ‘글쓰기의 부활’이었는데요. 직장생활 가운데 ‘쓰기’의 열의를 불태우게 한 건 ‘브런치’가 있어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브런치북 프로젝트 수상소식에 덧붙여 부족함 많은 글을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텀이 생기긴 했지만, 더 좋은 글로 찾아오겠습니다! 오늘 소개할 내용은 ‘백스테이지(Backstage)’입니다. 객석에서 바라보는 무대 위 무용수들을 마치 하나의 완전체 같기만 한데요. 이렇게 보고, 저렇게 봐도 완벽한 이들의 무대 뒤는 어떤 모습일까요? 걸음걸이부터 남다른 무용수들의 뒤를 쫓았습니다.


유니버설발레단 <스페셜 갈라> (2014.2.21.~23.)


2014년, 창단 30주년을 맞은 유니버설발레단이 시즌 첫 공연으로 <스페셜 갈라>를 선보였다. 지난 2월 21일부터 23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올려진 이번 공연은 ‘스페셜’ ‘갈라’라는 공연 제목만큼이나 화려하고 성대했다. 클래식 발레부터 창작발레, 컨템퍼러리 댄스를 망라하는 다양한 작품으로 프로그램이 구성됐고, 유니버설발레단의 전 단원은 물론 아메리칸발레시어터의 수석무용수 서희,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수석무용수 강효정·알렉산더 존스, 마린스키발레단의 수석무용수 이고리 콜브를 비롯한 해외 무용스타들이 무대에 함께 했다.


<라 바야데르> 3막 장면 (사진 제공=유니버설발레단)


공연의 막을 연 첫 작품은 발레블랑(Ballet Blanc)의 진수를 엿볼 수 있는 고전발레 <라 바야데르>의 3막 군무. 32명의 무용수들이 새하얀 튀튀를 입고 천의무봉한 군무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발레단의 실력을 고스란히 평가할 수 있는 어려운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이뿐만 아니라 <잠자는 숲 속의 미녀> 중 로즈 아다지오, <돈키호테>의 3막 결혼식 파드되, <오네긴> 3막 회한의 파드되, <해적>의 파 드 트루아 등 핵심적인 작품들로 1부 공연이 채워졌다.   


창작발레 <춘향>으로 시작한 2부는 유니버설발레단이 그동안 ‘디스 이즈 모던’이라는 이름으로 선보였던 다양한 컨템퍼러리 작품들로 구성됐다. <인 더 미들(In the middle somewhat elevated)>, <블랙 케이크>, <마이너스 7>과 같은 세계적인 안무가들의 소품작과 한국 창작발레를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자리였다. 여기에 초청 무용수 서희가 선보인 <녹턴>, 이고리 콜브의 <솔로>, 강효정·알렉산더 존스의 <팡파르 LX>까지. 다양한 작품을 관객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무대는 더욱 분주하게 돌아갔다. 어느 공연보다도 쉴 새 없이 진행됐던 이번 무대의 백스테이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 어느 곳보다도 천장이 높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이지만 시선은 자연스레 무용수들의 발끝으로 향했다. 이들의 발은 부단하게 무대 바닥을 쓸고, 팔은 계속해서 같은 동작을 반복, 유지하고 있었으며 몸의 중심점을 찾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마냥 아름다울 것만 같았던 무용수들의 모습은 오히려 치열하게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는 운동선수 쪽에 가까웠다.     


아닐 리허설 첫 일정은 전 단원이 함께하는 무대 클래스로 시작됐다. 극장의 양쪽 막을 모두 올린 무대는 굉장히 넓었지만, 워낙 무용수들이 많아서인지 댄스 플로어에서 밀려나 아슬아슬하게나마 자리 잡은 이들도 적지않아 보였다. 조명 기둥이든 벽이든 무엇이든 잡을 수 있는 것들은 그들의 바(barre)가 됐다. 어느 정도 자리가 정돈되자, 단원 모두가 자신을 볼 수 있도록 무대 세트 위로 올라간 지도위원이 클래스의 시작을 알렸다. 그가 순서를 내주면 무대 한 편에 자리한 피아니스트는 아다지오부터 알레그로, 2박과 3박까지 어떤 음악이든 단숨에 연주해냈다. 그리고 음악이 연주되기 시작하면 모든 무용수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움직였고, 한 세트가 끝날 때마다 지도위원은 무용수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손끝 하나 발끝 하나에도 정성을 쏟는 무용수들의 진지한 모습에 무대가 금세 후끈해졌다.



바 워크가 끝나자 무용수들이 넓은 무대로 나와 점프나 턴과 같은 큰 동작을 연습했다. 앞선 연습과 달리 굉장히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몇몇 무용수들은 자신의 컨디션에 따라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몸이 어느 정도 풀린 남자들은 힘 있게 점프를 뛰며 기량을 점검했다. 쉬지 않고 뛰고 도는 무용수들을 보고 있자니 절로 현기증이 날 정도. 장난기 많은 남자 무용수들은 무대 뒤쪽에서 여자들의 동작을 따라하다 이내 힘든지, 허리를 쥐어 잡고 “대단하다”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클래스는 1시간이 조금 넘어서 마무리됐다.    



“코르드(Corp de Ballet, 군무진을 지칭) 모이세요!” 클래스를 마친 무용수들이 모여 지난 공연에 대한 문훈숙 단장의 평을 듣고 각 작품별로 연습 시간을 가진다. “음악에 귀를 열고 집중해야 돼. 멜로디가 들리기 시작하면 동시에 움직이는 거야.” 무용수들을 지시하는 문 단장의 눈길은 날카로웠고, 군무진들은 그녀의 말에 따라 동작마다 팔과 다리의 각도를 한 사람처럼 맞추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무대 위에서의 연습을 마친 무용수들이 각자의 분장실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들의 뒤를 쫓아 따라간 곳은 특이하게도 평범한 분장실의 모습이 아니었다. 입구에는 시간대별로 이름을 빼곡히 적어둔 종이가 붙어 있었다. 침대가 마련된 이곳은 마사지 룸. 리허설부터 공연시간 내내 물리치료사들이 대기하고 있어 무용수들이 언제든지 적절한 치료와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 곳이다. 발레단에 상주하고 있는 건강관리사에 따르면 “무대 위에서 안전장치 하나 없이 몸을 쓰는 무용수들은 스포츠 선수들만큼 부상률이 높아 마사지 룸을 자주 찾는다”고 전했다.


줄줄이 이어지는 스무 개 가량의 분장실에는 모두들 공연에 앞서 메이크업과 헤어를 만지느라 바빴다. “잠깐, 그거 내 것 아니야?” 의상이 공간의 반을 차지해버린 군무진의 분장실에서는 비슷비슷한 서로 의상을 바꿔 들고 가는 해프닝이 종종 생기기도 한다고.     



같은 시각, 무대에서는 <라 바야데르>의 거대한 세트 뒤로 공연을 위한 여러 종류의 막이 오르락내리락하며 무대 세팅이 한창이다. 댄스 플로어의 마킹 테이프를 새로 붙이고, 무용수들이 남긴 바닥의 자국을 닦아내는 한편, 공연에 사용되는 소품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무대에 나갈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공연 15분 전!” 정신없는 사이 스탠바이를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첫 무대를 장식할 무용수들이 의상까지 완벽하게 갖추고 거울 속 비친 자신의 모습을 쓱 살펴보더니 바쁘게 토슈즈를 들고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클래스부터 뜨거운 땀방울을 흘린 무용수들이 이제 관객들에게 그 치열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무대로 향하고 있었다.


* 사진_이규열(라이트하우스 픽처스)

* 본 글은 월간 객석 2014년 4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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